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57) 부르심을 받은 자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57) 부르심을 받은 자 <에베소서 4:1~10>

강화에 가면 강화교산교회라는 강화의 모교회가 있습니다. 1893년에 세워진, 지난 해 교회설립 130주년을 지낸 감리교회입니다. 이승환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게 바로 강화교산교회입니다. 


현재 강화는 전체 인구가 7만명이 채 안되는데, 130개의 감리교회가 있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게 아닙니다. 복음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이 모든 역사의 출발이 어디서부터인가?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와 비슷한 부르심의 역사가 반복됩니다. 오늘 에베소서를 기록한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삶의 변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주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세상을 바꿔갑니다. 


바울을 통해 부르심을 받은 또 다른 믿음의 일꾼들이 세워져 주의 사명을 감당합니다.든 하나님의 크신 역사, 그 이면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한 사람을 향한 부르심이 있었고, 부르심을 받은 자가 주님 뜻에 합한 모습으로 설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럼 그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역사가 가능했을까요?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설 때에, 그 모든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주의 사명을 감당해 나갈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바른 신앙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요 근래에는, 앞으로는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되지만, 어떤 분야에 있어서 실력만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하나를 더 봅니다. “그 사람 인성이 어떠냐?” 실력만 좋은 사람은 넘쳐나거든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특징적인 면이 하나 있습니다. 신앙이 뜨겁다는 거예요. 그렇기에 세계 선교 역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냅니다.  하지만 또 한 편 부족한 것이 신앙만 뜨거운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는 누구보다 열심인데, 이웃 사랑은 조금 약한 거예요. 말씀과 기도에는 열심인데, 내 성품적인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도 사랑합니다. 정말 믿음이 좋은 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습니다. 이게 믿음 좋은 사람의 모습이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른 신앙의 성품을 갖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 그 출발이 어디서부터인가요?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서로 용납함, 평안, 하나됨”을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은 보시다시피 성품적인 것들입니다.  오히려 신앙이 없는 사람이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 변화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갖는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고 해서, 자신의 타고난 성품을 하루 아침에 싹 바꿔가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신앙의 성장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성품의 변화인 것 같아요.  열심히 기도하는 것, 성경 많이 보는 것, 예배 잘 드리는 것 뿐만 아니라, 내 성품이 성화되어가는 것 그 자체가 신앙의 성숙이요 성장입니다. 이를 통해서 내가 신앙적으로도 주님을 닮아가고, 성품적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 그게 바로 바른 신앙의 성품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신앙적인 삶에 있어서도, 또한 내면의 성품적인 면에 있어서도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더불어 나와 함께 동역하는 모든 성도님들과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사랑 받고, 인정받고, 존중받고, 칭찬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성품적인 변화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됨에 대한 말씀입니다. 4절.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여기 보면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몸은 우리의 육체적인 몸을 뜻하는 게 아니라,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뜻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죠.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고 한다면, 더 이상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고, 한 새 사람,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었기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으로 서로 나누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한 몸을 이루어가야 함을 말씀합니다. 5절에도 계속 말씀합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세 가지입니다. “주도 한 분이시오.” 우리가 믿는 주님도 한 분이십니다. 

  

이어서 “믿음도 하나요.” 주를 향한 믿음의 고백도 하나입니다.  마지막 “세례도 하나요.” 우리가 받은 세례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같은 세례를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어서 6절에 하나됨의 결론을 말씀하죠.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여기 제일 강조하고 있는 단어가 무엇인가요? “만유”라는 말이죠. 만유는 질량이 있거나 없거나,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그저 머릿속으로 그리는 이상적인 것, 사랑이나 슬픔 등의 감정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떤 존재인가요? 그 모든 것 안에 있는 작은 점과 같은 존재입니다. 내 것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내 생각을 주장할 것도 없습니다.


미국에 테네시주에 가면 “오른발 침례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세족식 때 목사님이 항상 왼쪽발부터 씻기는 겁니다. 한 집사님이 예배 후에 말했습니다. “목사님! 왜 왼쪽발부터 씻기시나요? 목사님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음주에도 똑같이 왼쪽발부터 씻겨주었습니다. 그러자 집사가 격분하여 사람들을 선동하여 교회를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오른발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를 세웠다는 겁니다. 


하나됨이 힘든 게 이런 까닭입니다. 사람들은 다 “하나됨”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정치권을 비롯하여 세상 모든 공동체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나눠지기보다 하나되고자 합니다. 그런데 왜 안될까요? 내 방식의 하나됨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뉴질랜드광림교회라는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온 세계 열방의 모든 민족이 믿음의 형제자매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그 속에서 바른 신앙의 성품을 가지고,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도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잘 지켜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주어진 분량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셨다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구원을 위한 부르심이요, 또 하나는 사명을 맡기시기 위한 부르심입니다. 이를 가르켜 “소명과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여러차례 설명합니다. 은사에 있어서는 영적인 은사도 있고, 직임적인 은사도 있다. 병 고침이라던가, 방언이라던가, 예언 같은 은사는 영적인 은사입니다. 가르치는 일, 구제하는 일, 섬기는 일 등은 직임적인 은사입니다. 모든 은사를 주신 목적은 하나입니다. 모든 믿음의 백성들을 유익하게 하고, 교회를 세워가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에,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누션이라는 그룹을 아시나요? 이 중에서 션이라는 사람이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정혜영이라는 탤런트와 결혼을 하고, 아내를 전도해서 정말 신실한 믿음의 부부가 되었습니다. 첫째인 하음이 돌잔치를 앞두고, 션이 기도를 합니다. 아내와 상의하여 돌잔치 대신 2천만원을 들고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찾아갑니다. 두 명의 심장병 어린이와 한 명의 청력이 손상된 아이의 수술을 시켜줬습니다. 주변에서 묻습니다.부모가 다 연예인인데, 아이는 돌잡이 때 뭐 잡았냐고? 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하음이는 돌 잔치 때 이웃의 손을 잡았습니다.” 

    

제가 션이라는 가수를 소개해드렸지만, 이건 션이라는 사람의 몫입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따로 있습니다.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나만이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먼저 이것 하나만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분량이 있다. 그리고 그 분량만큼은 충실히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쳐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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