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69) 사랑하는 우리교회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69) 사랑하는 우리교회 <빌립보서 2:12~18>

오늘 우리는 뉴질랜드광림교회 창립 29주년 기념 주일로 예배합니다. 뉴질랜드광림교회의 역사는 뉴질랜드 이민 초기에, 광림교회 본당을 향해 보낸 “교회설립요청 서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매 주일 장로님 가정에서 성도님들이 함께 모여서 김선도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가지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도님들이 늘어감에 따라 더 이상 가정에서 모일 수가 없어서 커뮤니티 센터, 키위 교회 등을 렌트해서 예배를 드리다가, 1996년에 이곳에 터를 잡고 오늘까지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건물이 1969년에 완공된 건물입니다. 이 옆에 목련 나무 옆에 머릿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28년동안 키위교회성도들의 기도가 쌓여지고, 이어서 29년째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가 쌓여져가고 있는 아주 의미있는 교회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민교회는 수많은 다양한 배경과 환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다보니 그안에 수많은 다름으로 인한 갈등이 쉽게 생겨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어디나 있습니다. 어려움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정말 큰 사랑을 담은 부모와 자녀간에도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기도 한데, 하물며 수많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에 어떻게 평안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바라고 소망하던 장자권, 장자의 축복, 다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달려간 곳은 도피처 루스입니다. 그속에 아버지와 형제와의 갈등, 아니 갈등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노리는 복수의 마음까지 불타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삶에 회복의 역사가 있을 수 있었던 것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모든 예배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체험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어떤 믿음의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세상 말로 꽃길만 걸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주의 임재가 경험되어질 때에, 야곱이라는 인간의 탐욕이 담긴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바꾸어갑니다. 

  

사랑하는 우리교회, 뉴질랜드광림교회가, 또한 교회에 속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이러한 영적인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사랑하는 우리교회가 있고, 함께 동역하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 교회가 가져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견고한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두려운 말씀이 뭔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내 힘을 다해서 주를 섬기고 헌신하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주의 일을 열심다해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게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요? 언제나 어떤 상황 속에서나 흔들림 없는 구원의 확신 가운데 굳건하게, 견고하게 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문 12절에도 말씀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나 없을 때에도...” 이게 어떤 의미인가요? 빌립보교회는 특별하게 사랑받는 교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당부합니다.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나 없을 때에도.” 구원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목회자가 바라볼 때만 열심히 한다고, 다른 성도들이 바라볼 때만 열심히 한다고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주를 향한 믿음을 고백할 때에,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죄 씻음 받아, 주의 자녀로 인정받을 때에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누가 보던지 말던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교회, 뉴질랜드광림교회가 견고한 구원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신앙의 고백을 올려드릴 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래서 베드로라는 이름이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시몬이었지만, 주를 향한 신앙의 고백을 올려드릴 때에, 그는 베드로, 반석이 됩니다. 따라서 교회에 속한 우리 역시 베드로와 같은 동일한 신앙의 고백을 주님 앞에 올려드릴 뿐만 아니라, 반석과도 같은 견고한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굳건히 서서, 우리 모두 함께 견고한 구원의 공동체를 잘 세워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빛된 사명 감당하는 공동체입니다.


첫 번째에서 말씀드린 “견고한 구원의 공동체”는 사실 공동체적인 것보다는 나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다 구원받았노라고 단정지을수는 없거든요. 이에 비해서 두 번째로 말씀드리는 “빛된 사명 감당하는 공동체”에 담긴 의미는, 교회 공동체의 세상을 향한 책임,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게 바로 빛된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흠이 없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 빛처럼 나타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더 명확한 말씀을 주셨죠. 빛된 사명이 주어졌음을 선언하십니다.  그럼 빛 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앞서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 행실을 떳떳하게 보일 정도가 되는 것이 빛된 삶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을 하나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수준 높은 삶을 살라.” 격이 다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말을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를 직역하면 “밖으로 불러내다”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호명하여서 따로 세우는 것이 에클레시아입니다. 교회가 빛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속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수준 높은 삶, 격이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세상이 어떤가요? 코로나 이후에 경제적으로 큰 위기입니다. 물가는 정말 많이 올랐습니다.  제가 선거철에 다녀왔더니, 여기 저기서 정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서로 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하면서, 사람들간의 갈등은 더 심해져만 갑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그속에서 우리는 성도로서 얼마나 착한 행실을 보이고 있는지요? 우리가 ‘에클레시아’ 구별되어져 나왔으면, “등경 위에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그에 합당한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 내 말과 행동과 눈빛과 태도와 모든 삶의 모습을 통해 선한 것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교회, 뉴질랜드광림교회가 빛 된 사명 감당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일은 교회에 속한 내가 먼저 하는 겁니다. 내가 빛이 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가 빛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앙의 삶, 또한 세상의 모든 삶 속에서, 내 모든 말과 행실을 통해 빛된 증거를 드러내는, 등경 위에 있는 존재로 아름다운 빛을 발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한마음을 품은 공동체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인 “한마음을 품은 공동체”는 교회 공동체 자체의 모습으로, 교회 안에 속한 권속들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님들과의 관계, 더불어 성도님들 서로간의 관계, 더 나아가 같은 교회는 아닐지라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모든 믿음의 형제 자매들의 관계입니다. 그중에서 먼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 뉴질랜드광림에 속한 모든 권속들이 함께 한 마음을 품은 공동체를 이루어가야만 합니다. 주님 안에 한 형제 자매가 된 우리들은 한마음을 품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떻게요? 공자의 제자 중에 자공이라는 사람이 묻습니다. “평생 지켜야 할 한 마디 말씀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에 공자가 한 글자의 한문으로 대답합니다. “헤아릴 서”이다. 우리가 가정에서건, 교회에서건, 어디에서건 한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서로를 잘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를 잘 헤아린다는 것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오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 좋은 일을 하면서도 원망과 시비가 생긴단 말이죠. 왜요? 내 방식대로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아름답고 선하고 귀한 일이라고 할지라도헤아림 없이 추진하다보면 그 일의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기껏 내 물질, 내 시간, 내 정성 다 쓰고 도리어 시험들게 하고 상처주고 끝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옳고 그름, 율법의 기준에 따르면 바리새인이 의인이요, 예수님이 도리어 불의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심은그 모든 마음을 헤아릴줄 아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교회, 뉴질랜드광림교회가 한마음을 품은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한마음을 품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본문 18절의 말씀처럼 주님 앞에서 모두 다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정말 행복한 우리 교회, 사랑하는 우리 교회, 뉴질랜드광림교회의 모든 믿음의 권속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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