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87) 나는 믿습니다!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87) 나는 믿습니다! <마태복음 16:16>

오늘은 사도신경에 대한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신경은 열 두 가지 믿음의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말 사도신경을 보면 “전능하사”로 시작을 하죠. 그런데 헬라어 사도신경의 첫 단어는 이렇습니다. “피스테우” 라틴어로는 “크레도” 영어로는 “I believe in”. 이 말들의 해석은 모두 똑같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라는 선포와 함께 열 두 가지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공동체와 성도의 영적인 삶과 죽음과 부활을 믿습니다. 이 시간에는 사도신경 전체의 말씀을 보면서, 큰 제목 네 개와 그 안에 담긴 열 두 가지의 소제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정체성, 바른 신앙의 고백이 어떠해야 하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의 첫 문장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믿음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여기 보면 성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은 하나이지만, 하나님을 뜻하는 호칭은 세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시다는 말은 불가능이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시고, 모든 곳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또 하나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 되심을 믿습니다.  마지막 하나, 성부 하나님을 향한 세 가지의 호칭 중에 마지막 하나는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내가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믿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시고 나의 아버지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용의 길이를 따지면 거의 3분의 2정도입니다. 왜 그럴까요?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님에 대한 논쟁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논쟁은 비단 초대교회 시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에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의견들이 분분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대제사장이나, 빌라도나, 다른 사람들이나 예수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죠. 그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가? 첫 번째 고백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그리스도”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분, 유일한 구원의 주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에는 예수님 이후로, 아니 그 이전부터도 “내가 메시야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유일한 메시야는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메시야시오, 유일한 구원의 주가 되심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예수님을 향한 두 번째 고백은 “성령의 잉태로 처녀의 몸에서 나신 예수님”이라는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로서, 천사 가브리엘에게 수태고지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육적인 아버지인 요셉에게도 가브리엘 천사가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성경의 말씀대로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기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향한 세 번째 고백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 당하신 예수님”이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겠다는데, 그냥 용서해주시면 안되나요? 굳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셔야 하나요? 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거저 주는 용서는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는 빚과 같습니다. 갚아야 없어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지은 죄의 값을 대신 갚아주시고자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내가 치룰 사망의 삯을 대신 치러주시고자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르켜, 대속의 죽음이라고 표현하죠. 예수님은 육신을 가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죽음을 통한 대속의 은혜, 이 은혜를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향한 네 번째 고백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라는 믿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힘과 소망과 능력을 주는 부활신앙입니다. 그럼 부활신앙이 무엇인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찾아가십니다. 문을 닫고 숨어 있는 제자들, 생계를 위해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제자들, 그런 저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변화를 경험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부활신앙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나중에 죽어서 다시 사는 것,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힘겨워도 복된 내일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신앙으로 소망 중에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향한 다섯 번째 고백은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을 선한 길로 이끄시고자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나의 중보자가 되심으로 나를 위해 간구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중보의 기도가 우리를 붙잡고 있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지막 여섯 번째 고백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그럼 예수님의 다시오심, 재림의 이유가 무엇인가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여섯 번째 믿음의 고백은 앞선 것과는 차별성이 있습니다. 앞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은 이미 다 이루어진 과거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향한 마지막 신앙의 고백을 제대로 올려드리는 길은 하나입니다. 내가 오늘 이 시간 주님 앞에 설 준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의 잉태로 처녀의 몸을 통해 이 땅에 보내주신 메시야,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의 영광으로 소망을 주시고,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다가, 때가 되면 이 땅에 다시 오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준비된 삶으로 내 믿음을 증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의 삶에 다가오셔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인도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뜻하는 단어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직역하면 “곁에 계신 분”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믿사오며.” 이 고백은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심에 대한 고백입니다. 내 인생길이 나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요, 또한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나는 거룩한 공동체와 

성도의 영적인 삶을 믿습니다. 


이제 마지막 네 가지의 “믿습니다.”가 남았습니다. 앞서 여덟가지는 하나의 하나님을 향한 고백, 여섯 개의 예수님을 향한 고백, 또 하나의 성령님을 향한 고백이었습니다. 이 여덟가지의 믿음의 고백은 모두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남겨진 네 가지 중에서 첫 번째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거룩한 공회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뜻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 내에의 어울림입니다.  두 번째는 “죄 사함”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 죄를 자백하는 것, 회개를 통한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주의 크신 사랑으로 죄 사함 받은 우리들, 그 사랑의 크기를 깨달아 알고 나도 용서하는 삶을 통해 용서의 완성을 이루어가야만 합니다.  세 번째는 “몸이 다시 사는 것”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되고, 부활신앙의 완성은 나도 부활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 동시에 영적인 생명을 뜻합니다. 그냥 이 몸 그대로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적인 몸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먼 미래에만 있어질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주님과 동행함으로 살아갈 때에,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그 삶이 저 천국으로까지 이어지게 됨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오늘 사도신경에 담겨진 열 두 가지 믿음의 고백을 나의 신앙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신앙의 고백에 합당한 삶을 통해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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