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95) 믿음의 약속을 이어간 이삭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95) 믿음의 약속을 이어간 이삭 <창세기 35:27~29>

일요시사 0 10 0 0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이어간 인물입니다. 이삭은 여러모로 아버지를 많이 닮았습니다. 닮은꼴과도 같은 모습이 있기에, 이삭이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잘 이어갈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것을 아들이 잘 이어간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자녀가 하기를 싫어합니다. 혹 자녀가 한다고 하면 아버지가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보더라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잘 이어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오늘 주인공인 이삭도 수많은 갈등, 아픔, 낙심, 상처, 고민 등등이 많이 있었을 겁니다. 그뿐인가요? 야곱이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내가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장 험악한 인생을 산건 오히려 이삭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유약하고 평범한 인생 같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참으로 순탄치 않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의 마지막을 본문 29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이삭의 죽음을 세 가지로 표현하죠.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이건 그 삶이 완전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삭은 어떻게 그 힘겨운 삶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는가? 이삭에게 무엇이 있었기에 하나님 주신 믿음의 약속을 잘 이어갈 수 있었는가? 오늘도 이삭의 일생 전체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입니다. 


이삭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사건은 아마도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삭이 아버지를 뿌리치고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이삭에게도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설교를 들어왔지만, 과연 그렇게 아름답기만 했을까요?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던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 트라우마가 어떠했을까요?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향해특별한 돌보심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창세기가 50장까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길게 기록된 장이 어딘지 아십니까? 창세기 24장으로, 무려 67절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모두 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택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설명하고, 리브가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데려와서 이삭을 만나게 되는데, 그 모습이 창세기 24장 67절입니다. 


이후에 보면 리브가도 사라처럼 아기를 갖지 못합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 40세 때인데, 20년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바로 아이를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렇게 주시겠다고 하면서도 오래 기다리게 하셨는데, 이삭은 기도하자마자 아이를 주십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세밀하게 돌보시는듯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삭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잘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주를 의지하고 바라보는 자의 삶에 은혜로 늘 함께 하십니다. 지금 나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그것이 만남의 복이든, 그것이 건강이든,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나의 모든 삶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속사람의 강건함입니다. 


이삭이 어린시절 상당히 충격적일 수도 있던 사건을 잘 이기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더불어 왠지 유약해보이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속사람의 강건함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삭이 가진 속사람의 강건함, 그 배경은 곧 온유함입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그랄이라고 하는 블레셋 땅에서 지내는데, 그 땅에 큰 흉년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이삭만이 백배의 소출을 얻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예전에 아브라함이 파놓았던 우물, 지금 이삭이 사용하고 있던 우물을 막아버립니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이삭은 싸우지 않습니다. 이삭이 힘이 없어서 쫓겨난 것도 아닙니다.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이 화가 나서 싸우고자 덤벼들었으면, 블레셋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냥 떠나가니까 저들이 우습게 보는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보면 어떻게 되나요? 이삭은 싸움을 건적도 없는데, 저들이 지레 겁을 먹고는 찾아와서 “우리 사이 좋게 지내자.”라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적인 두려움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두려운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 있는 속사람의 강건함이요, 온유함의 힘입니다. 온유함은 예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헬라어로 프라우스라고 합니다. 야생마가 힘이 넘쳐나는데 통제가 안됩니다. 그러다가 잘 길들여져서 사람이 탈 수 있는 상태가 되면 “프라우스 – 온유해졌다.”라고 말합니다. 말의 힘은 그대로입니다. 이처럼 온유함이라는 것은 나에게 힘이 있지만, 대적할 힘도 있고, 싸울 힘도 있지만, 그것을 스스로 잘 다스릴 줄 아는 것, 그게 진짜 힘을 가진 사람이요, 온유함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신앙적인 의미를 더하면, 내가 굳이 싸우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다.” 그 믿음을 가지고 참아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온유함으로, 속사람의 강건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삭에게서 우물 빼앗고, 쫓아내고 했던 사람들이 “우리가 너에게 선한 일만 했다.”라고 했을 때에도 이삭은 저들과 따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속사람이 빈약한 사람들과 따져봐야 소용이 없는 거예요. 이게 곧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 온유한 사람, 정말 큰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삭에게 이러한 속사람의 강건함이 있었기에, 흔들림없이 믿음의 약속을 이어받고, 또한 이어주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온유한 마음으로, 속사람의 강건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딱 흔들림 없이 서는 겁니다.  이런 저런 자잘한 오해, 비난, 시험거리, 마음 상하게 하는 것, 그런 하찮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담대히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같이 싸우지도 않고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 주신 복된 약속의 성취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증거입니다. 


창세기 25장 11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복이, 아브라함의 죽음 이후에 이제는 이삭에게로 완전히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 역시 이삭에게로 온전히 계승되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삭이 ‘브엘라해로이’라는 곳에 거주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방황하던 하갈을 찾아가시고, 하갈의 태중에 있는 아기를 축복하면서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뜻의 이스마엘’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십니다. 이에 하갈이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짓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어떻게 이렇게 비천한 여종까지도 살펴보시는가?” 그런 의미를 담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이 곳 브엘라해로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이복 형인 이스마엘에게 축복하셨던 하나님과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따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나도 살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엘라해로이는 이삭에게도 위로의 장소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사모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은 이삭의 삶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 가장 확실한 증거가 창세기 26장 12절의 말씀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그런데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땅에 기록적인 흉년이 들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밭에는 소출이 하나도 없는데, 이삭의 밭에만 백배의 결실이 임하였습니다. 완전히 기적과도 같은 역사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바 말씀 따라서,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에게 복을 줄 것이고,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고, 네 아버지에게 말한 것처럼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할 것이고, 또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통한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여러분과 자녀손들의 삶에도 그대로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도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여길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혹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주인공 이삭은 힘겹고 어려운 삶의 현실, 마음의 아픔,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믿음의 약속을 잘 이어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약속을 이어간 계승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명은 이삭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한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믿음을 잘 지키고, 내가 신앙의 1대이던지, 2대이던지, 3대, 4대, 5대, 6대이던지, 내게 주신 믿음의 약속을 잘 붙잡고, 또한 내 자녀손들에게 잘 이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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