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98) 믿음의 열매 에브라임과 므낫세 <창세기 48:15~20>
야곱의 혈통적인 장자는 르우벤이지만, 그는 자신의 실수로 장자권을 잃어버리게 되고, 대신 넷째인 유다가 실제적인 장자의 권한을 이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축복에 있어서는 요셉이 장자의 권한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요셉지파로 한 지파의 몫만 받는 것이 아니라,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두 지파의 몫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과 가문 위에도 아브라함의 가문과 같은 복을 내리시길 원합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나아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의 가문에도 임하시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음의 1대로서 첫발을 내디딘 아브라함의 위치던지, 믿음의 2대로서 약속을 이어가고 있는 이삭의 위치던지, 믿음의 3대로서 믿음의 가문을 세워가고 있는 야곱의 위치던지, 믿음의 4대로서 꽃을 피우고 있는 요셉의 위치던지, 믿음의 5대로서 열매를 맺고 있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의위치던지, 믿음의 6대, 7대, 몇 대이던지, 사모하는 심령으로 주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맺어간 믿음의 열매는 무엇인가? 우리도 우리의 삶에, 또한 우리 자녀손들의 삶에, 대대 손손 맺어가야 할 믿음의 결실, 축복의 열매는 무엇인가? 함께 사모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누립니다.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내가 무언가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거저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가 요셉이었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아버지가 받아야 할 유산을 자신들이 받은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이 안에 에브라임과 므낫세만을 향한 특별한 은혜가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한 특별한 은혜도 담겨 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엄밀히 따지면 이방인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안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구원의 섭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 혈통,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만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온 세상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 입장에서 볼 때는 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온 세계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에서 볼 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민족과 혈통과 나라를 넘어서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오늘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졌습니다. 또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의 아들로, 한 지파로 설 수 없는 위치였음에도, 자신들이 받아누릴 수 없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적으로 받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이러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의 자리에 서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를 통해 나의 삶에 맺혀진 구원의 열매를 받아 누리고, 또한 우리 자녀손들에게 이어갈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전파할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잊혀짐을 넘어 번성함을 이루어갑니다.
요셉은 열일곱살의 나이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집에서는 거의 왕노릇을 하고 있다가, 노예로 팔려갔으니, 그 마음의 충격과 공포가 얼마나 컸을까요?
요셉은 처음에 바로 왕의 친위대장인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일을 합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일한 시간과 감옥에 갇혀 있었던 시간을 다 합치면 13년 정도입니다. 그중에서 최소 2년 이상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술 맡은 관원장의 복직과 함께 감옥문을 바라보면서 보낸 2년이 넘는 안타까움의 시간, 이제 드디어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려집니다. 애굽 왕궁에 들어가서 바로를 만나고 꿈을 해석하고, 단숨에 노예 죄수의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로 승격됩니다. 그리고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그렇게해서 낳은 첫 번째 아들이 므낫세입니다.
자, 요셉이 형들에 의한 배신, 그동안 노예생활을 하면서 겪은 고통의 시간, 그걸 한번에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요셉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이름을 “잊혀짐이라는 뜻의 므낫세”라고 짓고는 “하나님께서 다 잊어버리게 하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잊은 게 아니죠. 잊으려고 결단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둘째 아들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심으로 애굽의 총리까지 되게 하셨다. 나를 번성하게 하셨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담아서 둘째 아들에게 “번성함이라는 뜻의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 역시 감사함의 결단입니다.요셉은 잊혀짐을 넘어서 번성함으로 나아갑니다. 잊어야 번성함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요.
우리에게도잊혀지지 않는 아픔들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원망의 기억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또 이민 생활에 만났던 그 사람을 향해서, 지금도 겪어가는 사업장과 직장과 삶의 자리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원망스럽고 아프고, 심지어는 복수의 감정까지 생기는 그런 기억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잊혀져야 번성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잊어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번성함으로 나아갈 용기와 힘이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도 잊혀짐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잊을 수 있음이 은혜요, 용서할 수 있음은 더 큰 신앙의 성숙이요, 그 뒤에는 번성함이라는 아름다운 축복의 결실이 맺혀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 예비하신 풍성한 믿음의 열매, 축복의 열매를 맺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나의 하나님이 내 자녀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이 요셉의 두 자녀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야곱은 손을 바꿔얹고 축복합니다.17절에 보면 요셉이 그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합니다. “아버지! 므낫세가 장자입니다.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으시고, 에브라임에게 왼손을 얹으셔야죠.” 하지만 야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합니다. 19절입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에브라임이 더 큰 축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20절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을 앞세우기만 했을 뿐, 내용상으로는 같은 복을 빌어줍니다.그럼 후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광야 40년 동안 제일 번성한 지파가 므낫세 지파입니다. 또한 열 두 지파 중에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반면에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입성 때에 인구조사에서 열 두 지파 중에 열 한 번째로 숫자가 적습니다. 하지만 다른 축복이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지도자인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또한 사사 시대 드보라가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이처럼 에브라임은 지도자적인 위치에서 므낫세보다 앞서는 모습을 보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이어지는 49장에는 열 두 아들을 향해 예언적인 말씀이 담긴 축복을 선언하는데, 그에 앞서 먼저 요셉의 두 아들에게 힘을 내서 축복의 말씀을 전합니다.그 내용이 무엇인가요?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그리고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께서, 이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나이다.” 축복의 내용을 넘어서서 축복을 주시는 분이 중요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제 내 자녀의, 내 손주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나이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가장 큰 믿음의 열매, 축복의 열매는 믿음의 유산입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하나님을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이어서 우리 자녀가 우리 손주가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들의 삶에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내 삶에 누려지는 부요함, 풍족함, 강건함, 만남의 축복, 물질적인 축복, 손대어 시도하는 모든 것이 다 형통하는 것, 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은 나의 하나님이 내 자녀손들의 하나님으로 고백되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믿음의 열매, 축복의 결실을 아름답게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