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6) 고난의 길, 영광의 길 <마가복음 3:20~30>

우리가 무언가 힘겹고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을 기꺼이 참아내는 것은 그로 인해 얻어지는 큰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보여지는 영광의 길도 그냥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고통과 역경을 참아내고 이겨내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예수님 걸어가신 길은 어떻겠습니까? 그가 걸으신 길은 고난의 길이요, 치욕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길을 영광의 길이라 부르는 것은 고난의 십자가를 넘어 부활의 새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성육신의 길,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시면서도 수많은 대적과 맞서야 했던 공생애의 길,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자 홀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우리 주님 걸어가신 그 모든 길은 다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 길의 끝은 영광의 길로 이어집니다. 그 길을 믿음으로 걷는 우리에게도 영광의 길이 예비되어져 있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내게 주어진 고난의 길, 이후에 예비된 영광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걷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감내해야 할 고통이 있습니다.
‘감내’라는 말은 흔히 사용하는 말은 아닙니다. 한자를 풀어보면, ‘견딜 감 자에 견딜 내 자’입니다. 직역하면 견디고 견디는 겁니다. 그래서 쉬운 말로 하면 “견뎌내야 할 고통이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지만, 굳이 제가 ‘감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예수님 당하신 고통이 그렇게 쉽게 견뎌낼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 세상의 빛이 되시고,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 하지만 그 이전에 예수님의 공생애와 마지막 순간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걷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본문21절에 보면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저 예수가 미쳤다.” 가족들이 이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22절에 서기관들은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퍼뜨립니다.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나님의 아들을 한 순간에 귀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의 걸음은 어떠했나요?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던지,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기도하시죠.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옮기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요, 영광의 길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비난과 조롱을 견뎌낸, 또한 심적인 육체적인 고통을 감내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길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영광의 길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말씀하죠.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믿음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하신 그만큼의 고난은 아닐지라도 내가 감내해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내가 견디고 견뎌야 할 고통이 있습니다. 주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잘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예비하신 영광의 길에 설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영적 자유함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 중에 하나가 치유사역입니다. 귀신을 내어쫓으심으로 영적인 자유함을 주십니다.
본문의 중심 주제가 바로 영적 자유함에 관한 말씀이죠. 동일한 내용이 기록된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귀신들려서 보지 못하고 말 못하는 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기에 급급한 서기관들은 가짜뉴스를 내세워 예수님을 몰아갑니다.유대인들은 모든 귀신들의 대장인 사탄마귀의 이름을 ‘바알세불’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금 행하신 일을 귀신의 역사로 바꾸어버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하십니다. 23절에서 26절의 내용입니다.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그러면서 두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다.”“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사탄 마귀의 왕국도 서로 분쟁하면 망할 수밖에 없기에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주장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일축합니다. 이어서 27절에 이렇게 정리하듯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이미 영적인 자유함을 누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보면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일곱 가지 세력을 이야기합니다. 일곱, 완전수입니다. 우리를 향한 완전한 결박을 뜻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억누를지라도, 로마서 8장 37절에 이렇게 담대하게 선언하게 됩니다.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영적 자유함입니다.
오늘 본문의 귀신 들린 자가 자유함을 얻은 것은 그 한 사람의 자유함만이 아니라, 예수님께 그 모든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을 믿을 때에, 죄에서, 두려움에서, 문제에서, 고난에서, 내가 감당 못 할 어떤 것이 있을지라도 넉넉히 이겨 승리하는, 그리하여 완전한 영적 자유함을 누려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가장 분명한 목적은 죄 사함을 위해서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죄의 결과는 단절, 즉 관계가 끊어지는 겁니다. 그렇기에 죄인된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원한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주시사, 하나님께로 나아갈 가장 완전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믿음을 가질 때에, 자백함으로 회개할 때에,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이어서 30절에,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가 기록되어 있죠. 예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귀신을 내어쫓으시는데, 이걸 귀신의 역사로 말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죠. 오늘날에도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것의 대표가 이단 사이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서, 오히려 사람들을 미혹하게 만들고, 구원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것, 그야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이와 함께 지금은 더 위험한 것 중에 하나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성령을 모독하는 이들입니다.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는 내용들을 담아서, 또는 악마적인 편집을 통해서 거짓된 것을 퍼뜨리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조회수와 영원한 형벌을 맞바꾼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성경 이야기 다룬다고 막연하게 은혜 받고 그러면 안됩니다. 유튜브를 보시는데 교회 관련된, 성경 관련된 컨텐츠를 다루는 것을 보실 때에, 몇 가지 경계해야 할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첫째, 지나친 종말 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 지나치게 교회나 목회자를 비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나만 깨달은 진리”를 주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교회의 전통적인 것, 예배, 헌금, 봉사 등등, 이런 것에 대해서 이상한 이야기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잘 모르겠으면 저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이 시대는 정말로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죠.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넘어서 날마다 충만함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충만함을 위해 말씀 보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사명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믿음의 백성으로 혹 고난의 길이 있을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넉넉히 이겨 승리함을 통해,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의 길에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