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7); 구원에 이르는 믿음 <누가복음 7:44~50>

예수님은 어느날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초청을 받아 그 집에 가십니다. 바리새인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식사를 함께 나누신다는 것은 좀처럼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께서 계신 것보다 더 보기 힘든 그림, 아니 불가능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건 바리새인의 집에 죄를 지은 여자가 들어와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에게 무시를 받고, 동네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는 여인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 여인은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누구나 공공연하게 정죄하는 죄인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여인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이 절기, 사순절 기간을 지내고 있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까닭은 우리 믿는 자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내 삶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흔적,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전심을 다한 섬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섬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앞서 서론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한 사람은 예수님을 식사자리에 초청한 바리새인의 섬김입니다. 또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자리에 나오면 죽을 수도 있는 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향유 담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립니다. 엎드려서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섬김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리새인은 아주 싫어합니다. 우리가 너무 싫으면 어떤가요? “만지지도 마.” 그렇게 하죠. 스쳐도 싫은 겁니다. 지금 바리새인의 마음이 그런 거죠. 그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44절 중반부터 46절까지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손님을 집으로 초청하면 기본적인 에티켓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집에 오면 먼저 발 씻을 물부터 내줍니다. 좀 더 잘 섬긴다고 하면 직접 발을 씻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은 이 기본적인 것조차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만 초대요, 섬김은 커녕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죄인된 여인은 생명을 걸고 그 자리에 나왔습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십니다. 머리카락을 발걸레처럼 사용해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립니다. 전심을 담은 섬김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러한 책망이 담긴 말씀을 하신 후에, 48절에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자신의 목숨까지 다한 섬김을 위해서였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섬김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나님을 향해서도, 사람들을 향해서도 전심으로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 삶에, 전심을 다한 섬김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요, 그것이 곧 성화의 삶이요, 그것이 곧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내게 있음을 증거합니다. 전심으로 주를 섬겨,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 닮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아낌없는 사랑입니다.
죄인된 이 여인은 자신의 사랑을 향유와 눈물과 머리털과 입맞춤에 담아 아낌없이 예수님께 올려드립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불편합니다. 그의 마음 속에서 사랑 대신에, 예수님을 어떻게 책잡을까하는 시기와 계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통해서 바리새인을 가르치십니다. ‘두 명의 빚진 자의 비유’입니다. 오백 데나리온을 탕감 받은 자와 오십 데나리온을 탕감 받은 자, 누가 더 주인에게 감사할까요? 그렇죠.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 받은 자, 당연히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자의 감사와 주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훨씬 더 크겠죠. 그래서 이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이 로마서 5장 20절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자가 더 감사하는 것처럼, 더 많은 죄를 사함 받은 자가 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더 큰 사랑을 올려드립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 말은 죄의 경중, 죄의 많고 적음보다, 죄를 대하는 나의 자세를 뜻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많이 짓고서도 “나 정도면 괜찮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죄에도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울며 회개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물질은 50과 500, 딱 비교가 되지만, 죄는 비교가 어렵습니다. 어차피 죄인이라는 사실은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죄에 대해서 더 민감한 사람, 내 죄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겸손함으로 인정하는 사람, 그 크나큰 죄악을 사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너무나도 크다고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은 더 감사하게 되고, 더 아낌없는 사랑으로 주를 섬기게 됩니다.
오늘 이 여인은 누가 봐도 죄인입니다. 스스로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죄를 사해주심을 믿었기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스스로 생각합니다. “나는 의인이다.” 감사할 것도 없습니다. 떳떳합니다. 당당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날마다 나 자신의 죄를 발견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지시기 바랍니다. 그에 합당한 회개하는 심령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더 감사하고, 그에 합당한 아낌없는 사랑으로 주를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낌없는 사랑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것, 아니 그 이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음을 증거합니다. 또한 아낌없는 사랑으로 우리 주님께 부어드린 향유 옥합, 하나님께서 더 큰 풍요함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끝으로, 구원의 확신 가운데 누리는 평안입니다.
오늘 이 여인은 결단함으로 나왔습니다. 각오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모든 정성을 담아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예수님의 발 앞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주님 앞에 예배하는 이 자리를 향해 얼마나 큰 사모함을 가지고 나왔는지요?
사람들의 시선에는 명백한 죄인으로 정죄받는 이 여인은, 하나님의 시선에는 그 누구보다 사랑받을만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 결과 죄 많은 여인은 48절에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선포를 듣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어서 50절에 또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확신 가운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순탄하고 잘 풀려서 평안한 게 아닙니다. 세상에 근심이 하나도 없고, 억울할 일도 없고, 모든 것이 다 만사형통해서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삶은 없습니다. 믿음을 가졌음에도 어려움이 생기죠. 물질적으로나 건강에 있어서나사람들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여러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사실 하나로 평안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내가 주님 품에 안겨 있기에 평안함을 누립니다. 오늘 십자가 고통이 있을지라도 내일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줄 믿습니다.
시편 150편 중에 절반 가량이 다윗의 시입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숫자가 다윗이 광야 시절에, 사울에게 쫓김을 당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그 중에 대표가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다윗은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주의 보호하심을 믿기에 그 안에서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을 노래합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평안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이러한 평안,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함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의 걸음은 저 천국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그 걸음을 성령께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오늘 힘들어도, 오늘 아파도,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구원에 이르는 확고한 믿음 가지고 날마다 주님 주시는 평안함 가운데 거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