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마태복음 23:37~24:2>

일요시사 0 68 0 0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군중들이 모여 들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것에서 유래된 절기입니다.  종려나무는 예로부터 유대인들을 상징하는 나무인 동시에 가나안의 대표적인 식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종려나무는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나무를 자르고 그루터기를 불로 태워도 다시 싹이 날 정도입니다. 자,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을 한 것이, 그냥 대충 보이는 나뭇가지 하나 꺽어서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입성하심을 환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천여년이 지난 오늘의 종려주일 이 아침에 말씀 앞에 자리한 우리들은 어떤 마음으로 종려주일을 맞이하셨는지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찬양을 들었으며, 지금 우리는 모두 어떤 마음으로 나의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있는지요. 종려주일, 일년에 한 번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고, 풍요와 번영을 이루실,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모셔들이는 시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기회의 때가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 주신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23장은 다 한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신앙과 삶의 모습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23장 1절에서 36절까지는 일곱 번의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과 함께 선포되는데 이는 단지 종교지도자들만이 아니라, 형식화된 신앙에 머물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향한 책망이기도 합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막연한 낙관주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요한복음 8장에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하실 때에, 저들은 대답하죠.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지금 현재는 로마의 종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합니다. “너희들 안 망한 것처럼 살고 있는데, 이미 망한 거야.그럼에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면 죄의 종노릇 하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다가 너희의 영혼까지 다 죽는 거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 안에 모아들이고자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선지자들을 죽입니다.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칩니다. 그 모습이 예수님에게까지 이어져 예수님께서 핍박을 받으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힘까지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든 선지자들과, 심지어 예수님 자신의 수고와 희생도 외면합니다. 그 결과는 38절입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기회의 때가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 주신 기회를 잘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혹 이 자리에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분들이 있다면, 믿음으로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더 꽉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구원의 은혜 가운데 또 다른 기회들이 있습니다. 주를 위해 사명 감당할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기회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주신 기회의 때가 지나가기 전에, 더 확실한 믿음을 고백하시고, 더 주를 잘 섬겨 예배하시고, 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더 주님 앞에 헌신된 삶을 살아가고, 이를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전심으로 예배하는 자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순절 시작되는 주일에 그런 말씀을 드렸죠. 메시야의 오심을 바라고 기다립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바라고 기다렸습니다. 소망 없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형식화되어버린 신앙의 모습, 아무런 감동 없는 예배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삶에 늘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겁니다. 예배드리러 교회에 왔는데, 정신 차려 보니 예배가 끝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너무 많이 반복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그 자리에 익숙해진 겁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저들의 마음에 기대와 소망이 있는 것 같았지만, 정작 메시야 예수님께서 오시니까,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지금 이 생활에 그냥 그대로 머물고 싶은 거예요. 그렇기에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럴 수는 있는데, 그게 너무 오래 가면 안된다. 본문 39절에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구절이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무리들이 환영하며 외쳤던 말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가요?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시사,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하시고, 다윗과 같이 강성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실 것을 간절히 기대함으로 외친 겁니다. 물론 예수님의 역사를 저들은 잘못 이해했죠. 백성들은 예수님을 이 땅의 왕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의 기대하는 그 마음만큼은 진짜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떤가요? 저 앞에서 목사가 뭐라고 열심히 설교는 하고 있는데, 때에 따라서 “아멘”도 몇 번 했는데, 무슨 말씀이 들려졌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던 적도 있지 않았는지요? 내 안에 깊은 감동과 성령의 충만함 대신에, “오늘 점심 맛있던데.” 그것만 기억에 남았던 적이 있지는 않았는지요? 하지만 그게 너무 오래 가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심으로 예배하는 자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내 삶에 영적인 만족이 있고, 내 심령에 주님 주시는 평안이 있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담대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전심으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를 찾아와주시고, 나를 만나주시고, 나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고, 나의 모든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끝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내면에 담긴 깊은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본문 24장은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누가 지었나요? 다윗의 아들 솔로몬입니다. 성전의 규모는 약 75평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죠.  그런데 이 성전은 약 400년이 조금 안되어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느부갓네살왕에 의해 파괴됩니다.   이후에 고레스가 내린 칙령에 의거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일부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을 건축합니다. 어려운 현실로 인해 크기는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500년 이후에 스룹바벨 성전은 아주 크고 화려하게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주전 19년에 헤롯이 성전을 증축한 것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을 기초로 하여서 규모를 확장시켜서 증축을 합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초라한 규모의 스룹바벨 성전을 엄청난 크기로 증축합니다. 헤롯은 크기만 확장시킨 것이 아닙니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매우 화려하게 꾸밉니다.  헤롯이 지은 크고 화려한 성전, 이는 헤롯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상징합니다. 막연한 낙관주의 속에서 형식화된 예배에 만족했던 백성들의 무지함을 상징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화려해도 속이 비어있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보여도 그 내면에 담겨진 것이 없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믿음은 보이는 화려함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담긴 깊은 은혜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또 내 삶을 변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보이는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내면에 담긴 깊은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성전을 빛나게 하는 것은 성전의 화려함이 아닙니다. 제물로 드려지는 수많은 짐승들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전심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예배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내 안에 깊이 새겨질 때에, 내 믿음의 삶, 신앙의 걸음이 더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루시고자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고자 화목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주시고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종려주일! 평화의 길을 여시고자 걸어가신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함으로 내 마음에 모셔 들이고, 주님 주시는 참된 구원의 기쁨과 영생의 소망과 내일의 축복을 바라보고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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