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34)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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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34)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사야 61:10~62:5>

일요시사 0 220 0 0

오늘 본문을 보면 하박국선지자의 고백과 동일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들이 계속 이렇게 죄를 범하면서 살아가면 저 바벨론을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할 것이고, 너희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회복의 날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오늘 본문은 포로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회복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이사야 61장 전체에는 메시야의 오심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모든 무너지고 황폐한 곳을 다시 쌓아가는 회복의 미래를 말씀합니다. 이를 통해 구원의 주가 되시는 메시야께서 이 땅에 오시면 죄악으로 무너지고 황폐한 이 땅 가운데도 회복의 미래가 펼쳐지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럼 이 모든 구원의 역사를 누가 이루어주시는가? 메시야 구원의 주님을 누가 이 땅 가운데 보내주시는가?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은혜와 축복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의 삶에 주어졌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과 감사의 고백이 있을 때에,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또 다른 예비된 주의 복을 우리 삶에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더 누리게 될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예배의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가장 큰 복이 곧 예배의 복입니다. 예배의 복은 지금 이렇게 예배하는 것, 형식을 갖춰서 예배하는 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내가 조용히 말씀을 읽는 것,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찬양하는 것, 또한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예배에 속한 것입니다. 나아가 내 삶의 자리에서 믿는 자의 향기를 드러내는 것,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예배이기도 합니다. 


본문 이사야 62장 1절에 말씀합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 일단 이사야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더불어 또 하나의 의미가 담겨지는데, 서론에도 잠깐 언급드렸듯이, 이사야 61장은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로 해석을 하던지, 메시야 예수님으로 해석을 하던지, 그 모든 중심은 예배를 향합니다. 포로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 할 수 없는 것, 예배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시온을 위해,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시온산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의 회복을 위한 기도입니다. 메시야 예수님의 사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중보의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사야의 중보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칠십년이 지나 포로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스룹바벨을 필두로 하여 예루살렘에 귀환한 백성들이 다시금 성전을 짓고 울면서 예배의 감격을 누립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메시야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위한 사역, 즉 십자가 죄사함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나와 마음껏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예배의 복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려야 할 가장 큰 복은 예배의 복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예배의 복을 사모하고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회복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어서 저들은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의 아름다운 관이 되고,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 나라가 새 이름을 얻고, 존귀함을 회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담긴 포로에서 해방되는 구원의 역사는, 메시야의 오심을 통해 믿는 자에게 임할 구원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오늘 이스라엘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 모습이 곧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 영적 이스라엘이 될 것이요, 그 삶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삶으로 바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순간, 아브라함의 삶이 존귀한 삶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세워주셨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나요? 다윗의 자손이라는 위대함의 이름은 가졌는데, 그에 합당한 존귀한 삶을 살아가지를 못합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어 비천함에 처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고,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귀히 여김을 받았으면, 존귀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주의 백성 삼아주셨는데, 여전히 죄의 노예로 살아가면 어떻게 하나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내 삶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암소 여덟 마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예수님의 핏값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존귀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 스스로도 존귀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귀히 여김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더 존귀히 여김 받을만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본문 4절에 말씀합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몇 번 말씀드렸지만, 실제로 가나안은 보여지는 조건상 좋은 땅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을 주심으로 인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니까 버림 받은 땅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귀한 것은 다시금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헵시바”와 쁄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여기서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녀 안에 있다.”라는 뜻입니다. 버림 받은 땅과 같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으로 삼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쁄라”는 “결혼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안에 담긴 의미는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또한 버림 받은 땅과 같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신부로 삼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 신부 삼아주신 믿음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신부가 신랑의 기쁨이 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백성과 같은 이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품어 안으십니다. 그 사랑으로 신부를 삼아주십니다. 그럼에도 또 세상 즐거움을 따라간 여인, 다시 찾아가서 값을 치루면서까지 데려옵니다. 신부의 위치를 회복시켜줍니다. 그래서 호세아서에 담겨진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호세아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모습일까요?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안에 거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 받은 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큰 축복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예배의 복, 존귀히 여김 받는 은혜, 하나님의 기쁨 되는 삶, 이 모든 복과 은혜를 감사함으로 누리고, 또한 증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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