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2) 기억에 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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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2) 기억에 남는 사람 <사무엘하 19:31~39>

일요시사 0 130 0 0

할렐루야! 거룩한 주일, 주님 앞에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기억에 남는 사람”입니다. 지나온 삶 속에 참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기억에 남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다윗에게 있어서 일평생,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기억에 남았던 선한 사람입니다. 누구인가요? 본문 31절입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아마도 성도님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닐 겁니다. 성경에 딱 세 번 등장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예루살렘성을 떠나 저기 마하나임이라는 곳까지 도망을 갔다가, 반역이 진압되고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장면입니다. 그 길에서 바르실래가 다윗을 영접하는 모습입니다.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함께 예루살렘 왕궁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저는 이제 늙고 지쳤으니 그냥 여기 두시고, 정 데려가고 싶으시면 제 아들 김함을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38절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시간이 흘러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에,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을 할 때에도 바르실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열왕기상 2장 7절입니다. “바르실래의 자손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너의 상에서 함께 먹는 자 중에 하나가 되게 하라.” 

 

 다윗은 죽는 순간에도 바르실래를 떠올리면서 솔로몬에게 그 후손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들이 너의 상에서 함께 먹는 자 중에 하나가 되게 하라.” 이 말은 바르실래의 후손을 왕자처럼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바르실래가 다윗에게 얼마나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 왜? 어떻게? 바르실래가 그렇게 다윗에게 있어서 선한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죽어가면서까지 기억하는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우리도 바르실래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우리도 바르실래와 같은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사모하는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처음 바르실래가 등장한 것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치던 때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쳐들어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부하들과 군사들을 이끌고 성을 버리고 도망칩니다. 그때 다윗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15장 30절입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이는 수치의 모습입니다. 자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쫓아오니, 다윗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맨발로 얼굴을 가리고 울며 걸어갑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사울의 친족 중에 하나인 시므이라는 사람은 다윗의 피난 행렬을 쫓아가면서 노래하듯이 저주하고 조롱합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서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마하나임이라는 곳에 이릅니다. 저들에게는 지금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양식이나 이런 걸 챙겨올 여력도 없었습니다. 그런 저들에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사무엘하 17장 27절부터 소개되는데, 소비와 마길과 오늘 주인공인 바르실래입니다. 저들은 각종 음식과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 가득 챙겨와서 다윗과 그 일행을 대접합니다. 세 사람이 함께 등장하지만, 중심인물이 바로 바르실래입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다윗이 왕인데 쫓겨왔습니다. 압살롬은 스스로 왕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다윗을 추격합니다. 지금 상황에 있어서는 다윗이 불리해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을 도와주었다가, 정말 압살롬이 왕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나요? 다윗을 도와준 모든 사람들, 그 가문까지 멸절되는 겁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양식을 가지고 와서, 각종 물품을 챙겨와서는 다윗과 그 부하들을 정성껏 대접합니다. 


바르실래에게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어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바르실래에게 있어 왕은, 지금 쫓김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지금 인간적인 수치와 절망으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졌을지라도, 지금 굶주리고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다윗만이 왕이었던 거죠. 내가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선한 성품을 가지면, 누군가를 친절하게 잘 대해주기만 하면, 그것만 해도 충분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그 모든 것 이전에 신앙적으로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런 저런 것에 타협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당장에 보여지는 세상적인 유익이나 이익만 따라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 흔들림없는 걸음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내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주의 섭리 가운데 거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에게나 기억에 남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순수한 섬김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함께 밥을 먹는데, 내가 점심을 샀습니다. 그러면 커피는 다른 사람이 사는 게 아주 일반적인 모습이죠. 그럼 오늘 바르실래는 어떤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르실래가 다윗의 일행을 위해 많은 양식과 물품으로 후원하고 섬기는 것은 물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곧 반란이 진압되고, 이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바르실래는 귀환하는 다윗의 행렬을 찾아옵니다. 아마 이때도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에 다윗은 말합니다. 본문 33절입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하지만 바르실래는 다윗의 요청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하죠. “왕이시여! 내가 지금 나이가 팔십인데, 아무리 좋은 것 먹어도, 아무리 좋은 것 보아도, 다 별 거 없습니다. 저는 그냥 고향 땅에서 평안하게 여생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왕이 평안히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가시는 것 보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이처럼 바르실래에게는 순수한 섬김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댓가를 바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때로는 신앙의 삶에서도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제가 이렇게 열심히 섬겼는데, 왜 이렇게 여전히 어려운가요?”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내가 이만큼 했으면 하나님께서도 이만큼 주시겠지.” 그런 마음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혹 열심히 했는데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낙심하기도 하고 원망이 담긴 기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죠. 나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내 수고와 섬김과 헌신의 모든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바르실래는 순수한 마음으로 다윗과 그 일행을 섬겼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순수한 섬김을 드렸더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요? 다윗이 무사히 귀환하게 됩니다. 다시 왕좌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아무런 댓가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끝난 건가요? 아니죠. 바르실래는 이미 하늘의 상급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왕 다윗이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땅에 오심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위한 섬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을지라도 얼마나 큰 상급이 그에게 예비되었을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찬양이 있습니다. “당신의 그 섬김이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리.” 순수한 섬김의 삶으로 하늘의 귀한 상급을 쌓아갈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기억에 남을만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선한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 대부분은 성도님들이고, 믿음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신앙과 성품의 상관관계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신앙이 좋으면 성품도 좋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이웃을 향한 사랑도 가져야 합니다. 혹 내가 성품이 안 좋은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 신앙을 가졌으면, 그때부터 점점 성품이 좋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좋아지는 것 같은데, 성품은 그렇지 못하다? 그럼 신앙이 좋아진 게 맞는지, 그것부터 점검해봐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기독교가 도덕 종교는 아닙니다.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착하게 살고 선한 일 하자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 바르게 살아가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내가 예수 십자가 부활을 향한 믿음이 있다고 하면,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의로운 삶,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화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만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삶적으로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하는데, 딱 세 명을 언급합니다. 하나는 요압,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으나 성품이 포악하여 다윗을 골치 아프게 한 인물입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는 다윗 가문에 반기를 들었고, 다윗의 유언대로 솔로몬이 왕 위에 오른 뒤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또 한 사람은 서론에도 말씀드린 시므이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할 때에,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저주했던 인물입니다. 그 역시 당시에는 죽음을 피했지만, 후에 솔로몬 시대에 다윗의 유언에 따라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오늘 주인공인 바르실래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가장 힘겨운 순간에 사실 다윗이 힘겨운 순간이 한두 번이었습니까? 그 순간마다 도움을 준 인물들도 많았는데 다윗은 마지막 순간에 바르실래를 떠올리고, 솔로몬에게 그 후손들을 대대로 다 책임져줄 것을 당부합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르실래는 정말 성품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다윗을 도와주었을 때도 보면, 음식만 대충 싸온 게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준비하는 게 아닙니다. 사무엘하 17장 후반부에, 그가 챙겨온 물품들이 나오는데,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왔습니다. 침상과 대야까지, 세심하게 챙겨왔습니다. 그렇게 챙겨온 것에 대해서 이렇게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는 그들 생각에 바르실래의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다윗과 그 일행의 입장에 서서 깊이 생각해주는 선한 성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선한 성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혹 선한 성품과 좀 거리가 있더라도 늘 주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영적인 성화의 걸음을 잘 걸어가다보면, 성품에도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좀 더 인내하게 되고, 좀 더 절제하게 되고, 좀 더 겸손하게 되고, 좀 더 사랑하게 되고. 내 힘만 가지고는 어렵지만,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거룩한 변화가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정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 또한 나와 함께 동역하는 모든 성도님들, 더불어 나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아름답게 기억에 남을만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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