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3) ; 새 언약을 맺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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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3) ; 새 언약을 맺으리라 <히브리서 8:7~13>

일요시사 0 70 0 0

본문 앞인 5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세를 통해 맺은 언약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하지만 아시다시피 저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 당하고, 얼마 못 가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망하여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31장 31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의 인용입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의 왕과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너희들이 지금이라도 돌이켜 회개해라”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조롱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주어진 말씀이 오늘 본문에 인용된 말씀입니다. 본문 8절 중반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백성들의 죄악됨으로 인해 깨어진 언약 대신에 새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안에 담겨진 의미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하며 또 다시 선포된 말씀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안에 담겨진 의미가 무엇인가? 오늘 지금 이 순간 강단에서 우리에게 선포되고 있는 말씀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안에 담겨진 의미가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7절의 말씀과 같이 첫 언약이 무흠하지 못했기에, 다시 말해 첫 언약이 깨어졌기에 새로운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그럼 첫 언약이 왜 깨어졌는가?첫 언약의 내용이 잘 담겨 있는 말씀이 신명기입니다. 신명기에 담겨진 의미는 반복된 말씀, 즉 하나님께서 당부하고 또 당부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지만 백성들은 죽어라고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와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지키지를 않는 거예요. 그런데 다음에 또 약속을 안 지킵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되면, 그 사람과 다시는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어기고, 깨뜨리고, 제대로 안 지키는 것을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또 다시 기회를 주고, 그래도 또 한 번 바라보고, 그래도 또 한 번 믿어주고, 그렇게 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요? 내 자녀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언약인데, 수많은 언약들 중, 가장 드라마틱한 것이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입니다.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사 수많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약속을 확증하는 언약식을 행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브라함은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다가 가운데를 쪼개고 서로 마주 보게 놓습니다. 밤이 깊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타는 횃불과 같은 형상으로 쪼갠 짐승들 사이를 지나십니다.그래서 ‘언약’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베리트’라고 하는데, 그 뜻은 “자르다. 쪼개다.”입니다. 


그럼 광야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돼야 하는가? 그 몸이 쪼개져 죽는 것으로 끝이 나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언약이 깨어졌음에도, “너희들 끝! 아웃” 이렇게 하시지 않고, 다시금 새 언약을 맺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끊임없이 크고 작은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크게 보면, 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과 오늘 본문에 기록된 새 언약의 두 줄기가 있지만, 이와 함께 계속해서 언약의 말씀들을 주셨고, 계속해서 약속을 파기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부어주시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부족하잖아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금 바라보시고, 다시금 말씀을 주시고, 다시금 깨닫게 하시고, 다시금 기회를 주시고, 다시금 믿어 주심으로 언약의 성취자로 서길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녀됨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한없는 주의 은혜를 기억하고, 언약의 성취를 이루어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친히 내 마음에 새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맺으실 새 언약은 첫 번째 맺은 언약과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10절 중반부입니다.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내 생각에, 내 마음에 기록하겠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은 어디에 기록되었나요? 두 돌판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 두 돌판을 받을 때, 산 아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절하며 춤추며 노래합니다. 모세가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아서 내려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백성들에게 집어 던져 깨뜨리죠.그래서 오늘 본문이 인용된 예레미야 31장 32절에 보면, 광야에서 맺은 언약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두 가지 의미가 있죠. 백성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고 깨뜨렸다는 의미가 있고, 두 돌판이 던져져 깨뜨려졌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두 돌판의 깨어짐은, 율법에 담긴 행위의 법이 완전하게 지켜질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맺으실 새 언약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두 돌판에 새겨진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에, 내 마음에 새겨주신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 마음을 주셔서,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을 두시사, 하나님의 법을 행하게 하십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청파교회 원로 목사님인 김기석 목사님이 이런 비유를 전합니다. 우리가 법을 지킬 때에는, 자율과 타율과 신율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차가 별로 없는 시간대에 운전을 하다가 신호에 걸렸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우리 성도님들은 다 지키시죠. 이게 자율입니다. 누가 보던지 말던지 내 양심상 법을 지키는 겁니다. 자율.그런데 지금 너무 바빠서 신호를 어기고 그냥 지나가고 싶은 마음을 가졌는데, 저기 경찰차가 서 있는 거예요. 그럼 못 지나가죠. 이건 타율입니다. 


세상의 질서는 자율 아니면 타율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는 신율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의 법을 새겨주셨기에, 내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율. 하나님께서 내 안에 새겨주신 법입니다. 자율과 타율을 넘어선 하나님의 법, 신율. 주의 택함 받은 믿음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내 생각에, 내 마음에 새겨주신 언약의 말씀 따라 순종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실 구원입니다.


우리가 오늘 언약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사실 성경 전체가 다 언약입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요, 신약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그렇기에 구약에 담겨진 모든 말씀은 오롯이 오실 메시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증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에 담긴 말씀들을 가르켜서, 신약의 예표라고 말하곤 합니다. 


본문에 인용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새 언약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을 뜻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새 언약은 이것만으로 끝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더 중요한 것은 예표입니다. 또한 말 그대로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주신 “새로운 살 길” 즉 구원을 위한 새 언약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시사 부활의 자리에 서게 하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영접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십니다. 


그렇기에 구약성경에는 “새 언약”이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서 인용된 예레미야 31장에 딱 한 번 나옵니다. 누가복음 22장 20절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행하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말씀하시죠. 오늘 본문에서 이어지는 히브리서 9장 15절에도 말씀합니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새 언약의 중보자로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 본문 마지막 11절과 12절입니다. 먼저 11절입니다.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이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어서 12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질 때에,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서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실 것이라 말씀합니다. 십자가 죄 사함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여기입니다. 앞서 전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십계명, 광야에서의 첫 언약, 남유다와 바벨론 포로 생활, 울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예레미야... 이 모든 말씀들은 하나의 빌드업입니다. 마지막 한 골을 넣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 골, 목표가 무엇인가? 새 언약의 중보자로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새 언약의 주인공이 된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구원 받은 새 언약의 성취자로서, 또한 증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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