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6) 성화(聖化)-Sanctification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6) 성화(聖化)-Sanctification <베드로전서 1:13~19>

일요시사 0 6 0 0

우리의 신앙의 걸음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걸음에서 가장 많은 부분, 많은 기간을 차지하는 것이 오늘 제목인 성화입니다. 예배하고, 사명 감당하고, 그 속에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고, 내 모든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그게 곧 성화의 걸음입니다.   본문인 베드로전서는 1장 1절에 흩어진 나그네를 향한 편지라는 목적성을 밝힙니다. 믿는 자를 향한 박해로 인해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흩어졌습니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권고합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결국에는 구원의 영광을 받을 것이요, 이 사실을 믿는다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내용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뭔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화는 주보에 한문으로도 적어드린 것처럼, 거룩해져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 사함 받았으니, 의롭다 인정 받았으니, 그에 합당한 거룩함을 갖추어 가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그 모든 과정이 성화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가 성화의 걸음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을까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온전한 주의 은혜를 향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리는데, 내가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먼저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도, 은혜를 받고자 하는 사모함을 가지고 말씀을 받는 것과 그냥 주일이니까 나오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3절에 이런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배경으로 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1절입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 마지막 식사는 한가롭게 먹는 게 아닙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먹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세상에서 받아 누리는 은혜는 온전하다 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 천국에서 누릴 은혜만이 온전한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다 희미한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소망을 품고 온전한 은혜를 바라봐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또 오늘의 은혜를 향한 사모합니다.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그렇잖아요.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지만, 저들이 온전히 누릴 은혜는 약속의 땅에 있지만, 그 길의 여정에 마라의 쓴물이 단물 되는 은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시는 은혜, 만나와 메추라기의 은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 그 모든 은혜를 힘입어 가나안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그 여정에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주님 앞에서 받을 온전한 은혜를 소망하며 살아갈 때에, 매 순간 주의 은혜로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기에 합당한 준비된 삶, 아니 준비되어져 가는, 성화되어져 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모든 행실에 있어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살아갈 때에, 오해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믿음과 행위의 관계입니다. 구원은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한다면, 그에 합당한 행위적인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게 성화입니다. 


본문 14절과 15절에 말씀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으면 예전에 너희들 마음대로 살던 것을 버리고, 모든 행실에 있어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변화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저 사람 참 믿음이 좋다.”라고 할 때에, 그분의 믿음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살아가는 모든 모습을 보면서 그분의 믿음의 분량을 발견하고 평가하게 되는 거죠.

  

본문 17절도 보십시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여기서 외모가 뭘까요?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행위대로.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욕을 먹는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행위대로 갚으시겠다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하셨는데, “아 몰라. 나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어. 끝!” 이게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성경에 담겨진 구원의 의미는 한 번 구원 받았다로 끝이 아닙니다.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계속 달려가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감리교의 시조가 되는 존 웨슬리 목사님도 구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구원받았다.-칭의입니다. / 나는 구원받고 있다.-성화입니다. / 나는 구원받을 것이다.-영화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삶은 “나는 구원 받고 있다, 즉 성화의 과정”입니다. 본문 16절에 말씀합니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레위기 세 곳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세 군데에 모두 다 율법의 준수를 가르치는 중에 나온 말씀입니다. 물론 이제 율법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우리가 주의 제자임을 알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본문 16절에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닮아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언제 어디에서나 말과 행동과 삶이 주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모든 행실에 성화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대로, 본문의 저자는 베드로요, 말씀을 받는 자들은 박해를 피해서 이곳 저곳으로 흩어진 주의 백성들입니다. 저들을 가르켜서 1장 1절에 나그네라고 표현했습니다. 나그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집을 떠나서 흩어진 초대교회 성도들, 저들의 처지가 나그네와 같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인생 자체가 나그네와 같은 인생입니다.  베드로는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너희들이 지금 나그네로 흩어져 살아가고 있지만, 더불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영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권고하는 말씀이 본문 18절과 19절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우리가 의지할 것은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이 먼저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본문 18절에 말씀하는 것처럼 은이나 금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말합니다. “우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너희들이 지금 당장 의지하고 있는 은이나 금 같은 세상의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지금 당장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갈 때는 은이나 금 같은 것이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아니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나그네 길에서는, 특별히 인생이라는 나그네 길의 종착역에서는, 은이나 금은 의지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은과 금 같은 세상의 것은 아무리 많아도 구원의 문, 생명의 문을 통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열쇠는 단 하나,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이러한 영적 가치를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 받아 의롭다 칭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죠. 주님 앞에 서는 그날에 받아 누릴 온전한 은혜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오늘의 은혜를 사모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구원 이후의 삶, 구원 받은 주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 곧 성화의 삶입니다. 구원 받은 은혜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을 넘어서, 날마다 주님 닮아가는 거룩한 삶, 성화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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