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56) 우릴 사용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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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56) 우릴 사용하소서 <골로새서 1:9~12>

일요시사 0 14 0 0

할렐루야! 2026년 신년 첫 주일, 주님 앞에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우릴 사용하소서”입니다.


한국전쟁 때에 흥남 철수선을 타고 탈출하였던 실향민 ‘임길순’씨는 진해에서 서울로 가려다가 열차에 문제가 생겨 대전에서 내렸습니다. 생계가 막막하였던 임씨에게 대전 대흥동 성당이 구호물자로 밀가루 두 포대를 내줬습니다. 임씨는 밀가루 한 포대로는 가족 끼니를 해결하고, 밀가루 한 포대로는 찐빵을 만들어서 대전역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임씨는 밀가루 두 포대에 담긴 사랑을 기억하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당일 생산한 빵은 당일 소진한다.”는 원칙과 함께 팔다가 남은 빵은 모두 이웃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여기서 문제. 이 빵집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더불어 전국적으로도 소문이 나 있는 성심당입니다. 창업주인 임길순씨는 성당에서 받은 구호 밀가루로 장사를 시작하였기에, 가게 이름을 “거룩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뜻을 담아 성심당”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거저 받은 사랑으로 장사를 시작하였기에, 자신도 이웃을 향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금년 1월 1일에 교황 레오 14세는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성심당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에는 성심당이 지난 세월 동안 이웃을 향한 사랑의 섬김을 베푼 것을 치하하는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그 일을 이어나갈 것을 격려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윤 추구’가 모든 기업의 제 1목표일진데, 그 속에서 기독교적인 사랑의 가치관을 가지고, 받은 바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참으로 귀감이 될만한 일임이 분명합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삶에도 주의 사랑받은 자로서의 흔적이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른 바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이어지는 내용은 앞으로도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바른 신앙의 삶과 함께 그에 따른 아름다운 열매들을 풍성히 맺어가길 축복하며 올려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금년 한 해 우리가 맺어가야 할 열매는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삶입니다. 


본문 9절 중반에서 10절 초반까지 말씀합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이 기도를 정리하면 이런 겁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으면, 그에 맞게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너희들이 신앙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본이 될만한 모습이고, 이런 것들을 다 잘 깨달아 알았으면, 그 지식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라.” 


바울의 대표적인 옥중서신이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와 오늘 본문인 골로새서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옥중 서신에 동일하게 기록된 말씀이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골로새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에는 4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이와 함께 빌립보서에는 1장 27절에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 세 가지를 정리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합당하게 행하라.” 이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행하라.”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모든 것에 합당하게 행한다는 게 뭘까요? 결국은 다 동일합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그렇다고 뭔가 엄청나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삶”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 그게 뭘까요? 예배하는 삶입니다. 


우리교회에는 많은 예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들이 있죠. 매일 새벽에 있는 새벽예배 시간에는 함께 성경 한 장씩 읽고 그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눕니다. 그리고 말씀을 붙잡고, 또한 자기 자신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기도가 중심인 예배입니다. 수요일에는 전반기 후반기에 트리니티 성경공부가 있습니다. 성경 한 권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자세히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은혜를 나눕니다. 성경공부가 중심인 예배입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은혜의 밤이 있습니다. 금요 은혜의 밤은 함께 찬양하고 짧게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찬양과 기도가 중심인 예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일에 드려지는 주일예배가 있습니다. 우리교회 주일예배는 전통적인 스타일로 거룩한 예배 형식을 취합니다. 예전 중심의 예배입니다. 더불어 오후에는 청년예배가 있고, 오전에는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 예배가 있습니다. 지금 부교역자가 없어서, 저는 일주일에 열 한 번 설교를 합니다. 함께 많이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예배가 중심으로 딱 서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이루어집니다. 물론 그 예배를 영과 진리로 드려야겠죠. 그 예배를 통해서 주신 바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순종의 모습 또한 더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날마다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내 삶의 크고 작은 부분에 있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해 나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에 합당하게, 즉 주께 합당하게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2026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범사에 기쁨이 가득한 삶입니다. 


본문 10절에 말씀합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앞선 주제와 연결되죠. 주께 합당한 삶을 살아가면 그 자체로 곧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19세기 영국 런던에 아주 유명한 세 분의 친한 목사님들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그리스도 교회의 마이어 목사님, 또 한 명은 침례 교회의 찰스 스펄전 목사님, 또 한 명은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캠벨 몰간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이어 목사님의 마음에 다른 친한 목사님들에 대한 시기심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처럼 설교가로 인기를 얻지도 못하고, 몰간 목사님처럼 능력 있는 목회를 하지도 못하는 것 같구나.” 그래서 마이어 목사님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 속에 있는 시기심과 질투를 없애 주시옵소서.” 

그럼에도 마음에 자리한 질투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쁨과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이어 목사님의 마음에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졌습니다. “너의 기도를 바꾸어라. 질투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해라.” 마이어 목사님은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스펄전 목사와 몰간 목사, 그리고 그 교회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목사들과 섬기는 교회에 주의 복을 내려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나니까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게 있습니다. 소음을 또 다른 소음으로 상쇄시키는 기술입니다. 이는 주변 소리를 마이크로 감지한 뒤에, 그 소리 파동의 정반대의 파동을 만들어내어 두 파동이 만나 소멸하게 만드는 원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들리는 소리의 반대 소리를 내서 소리를 없애는 것입니다. 앞서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드는 마이어 목사님은 아무리 그 마음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여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시기와 질투에 완전히 반대되는 축복의 말을 하면서 기도할 때에, 시기와 질투가 사라지고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영적 노이즈 캔슬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누고 있는 두 번째 대지가 기쁨에 관한 것인데,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기뻐할 일이 더 많을까요? 걱정하고 염려할 일이 더 많을까요? 성경에서 “항상 기뻐하라” 말씀하지만, 그 말씀 따라 기뻐하길 원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기쁨 되길 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걱정되고 염려되는 것은 아무리 하지 않으려고 해도 늘 생겨나곤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일들은 크게 마음 먹지 않아도 쉽게 생겨나곤 합니다. 이 때 영적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합니다. 더 기뻐하는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더 축복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모든 것을 긍정적인 모든 것으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게 점점 더 확장되어지면 내 삶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고, 더불어 나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나와 함께 동역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기뻐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범사에 기쁨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안에 기쁨이 넘쳐나야 하나님의 마음도 기쁘시게 됩니다. 세상에 근심거리가 많아도, 이리저리 둘러봐도 걱정거리와 염려거리가 많을지라도, 의지적으로 더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의지적으로 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더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 안에 기쁨이 넘쳐나고, 우리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고, 주님과 함께 큰 기쁨을 누리는, 또한 우리 가족이, 우리 사업장과 직장이,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함께 기뻐하는, 2026년, 범사에 기쁨이 가득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선한 열매가 풍성해지는 삶입니다. 


세상은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할 때도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외모를 취하곤 합니다. 여기서 외모란 생김새만이 아니라, 그가 가진 물질, 학벌, 직업 등을 포함한, 그 사람이 가진 이른 바 모든 스펙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물질적인 가치 기준을 넘어서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자입니다.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에서 첫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을 했느냐?보다 무엇이 되느냐?”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느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당장 손에 잡히는 결과물, 즉 열매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환호와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결과물 이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것보다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 가정에 오렌지나무가 있습니다. 심방을 가서 보면 오렌지가 얼마나 탐스럽게 열려있는지, 따서 먹으면 또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더라구요. 볼품 없는 나무였는데, 몇 해 동안 거름을 주고, 영양제도 주고, 잘 관리를 해서 좋은 나무가 되니까, 자연스럽게 그 열매도 탐스러워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삼대지의 마지막 세 번째 대지 “선한 열매가 풍성해지는 삶”은 결과입니다. “선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한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선한 열매는 내가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다 맺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나눈 말씀과 같이 우리가 신앙의 삶 속에서 주께 합당하게 행하고,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좋은 나무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나무가 되면, 우리가 맺는 열매도 점점 더 최상품의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오늘 이만큼, 내일 또 이만큼, 금년에 이만큼, 내년에 또 이만큼... 조금씩 조금씩 좋은 나무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풍성한 열매가 없다고, 오늘 충만한 결실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을 성화의 과정이라고 말씀드렸죠. 성화, 거룩해져가는 것입니다. 지금 나무에 비유하면 점점 좋은 열매를 맺을만한 좋은 나무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봉사와 헌신된 삶을 통해, 점점 더 좋은 나무가 되어져 갑니다. 그러면 지난 해에 요만한 열매가, 금년에는 또 이만한 열매가, 내년에는 더 커다랗고 풍성한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좋은 나무가 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농부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말씀의 물을 주고, 기도의 거름을 주고, 이를 통해 좋은 나무가 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어가게 됩니다. 주의 사랑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고, 주님 앞에 헌신된 삶을 살아가고, 우리 모든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이 모든 삶의 열매들도 풍성하게 맺어가게 됩니다. 2026년, 더 좋은 나무가 되어 더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 한 해, 우리 뉴질랜드 광림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이, 교회학교 어린 심령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범사에 기쁨으로 합당하게 행하여 선한 열매를 맺는 교회”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모든 역사를 위하여 우릴 사용하소서.” 함께 기도함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 교회를 통해, 우리 모든 성도님들 각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 예비하신 선한 열매가 풍성한 2026년 한 해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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