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애슬래틱 :: 마이클 워커] : 알피 디바인, 내 축구 여정 :: 강등 싸움, 온라인 학대와 토트넘에서의 성장 경로(1부…
https://www.nytimes.com/athletic/5817771/2024/10/09/devine-tottenham-vale-plymouth-journey/
알피 디바인은 성장하고 있다. 16세 163일의 나이로 전국에 생중계된 토트넘 핫스퍼의 FA컵 경기에서 득점하며 역대 최연소 득점자가 된 소년이 8월에 20세가 되었다.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청년이 되었다.
토트넘은 디바인을 벨기에 1루 리그의 베스테를로로 한 시즌 동안 임대 보냈다. 그는 아직 모 클럽에서 1군으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지만,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FA컵에서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출전하는 등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이번 시즌이 시작할 당시만 해도 10대였던 디바인은 성인이 되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1년 전보다 약 6kg(13파운드) 더 무거워진 ‘좋은 체중’을 유지하고 있으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성인 프로의 세계에서 성숙해가고 있다.
디바인은 토트넘의 U21 팀과 U21 팀을 거쳐 잉글랜드 축구의 3부 리그인 리그원에서 포트 베일,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서 플리머스 아가일로 임대되어 활약했다. 그는 U20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로 출전하여 득점한 경험이 있다. 현재 그는 벨기에 프로 리그에서 10경기 후 6위를 달리고 있는 베스테를로에서 임대 생활을 시작한 지 4경기째이다.
디바인은 경기 후 라커룸 내부에서 ‘남자들의 축구’가 무엇인지, 이기고자 하는 열망과 때로는 이겨야만 하는 필요성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느낌”과 “리듬”, “좋은 경험, 나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첫 리그 득점을 기록했고 첫 레드카드를 받았다. 그는 클럽에서 처음으로 감독이 경질되는 것을 보았고, 처음으로 온라인 폭력을 견뎌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주목할 만한 객관성을 가지고 바라보는 교육의 일부이다.
디바인은 2023년과 올해에도 토트넘의 여름 프리시즌 투어에 참가했으며, 두 팀에서 모두 뛰면서 앙제 포스테코글루 감독과 자신의 발전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기꺼이 임대를 떠났다.
디바인은 19세가 되던 작년 8월, 포트 베일의 앤디 크로스비 감독과 화상 통화를 했고, 곧 잉글랜드 미들랜드의 클럽이 칼라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1-0으로 앞서던 경기에서 15분간 데뷔전을 치렀다.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크게 달랐을까?
“네. 네, 그렇습니다.”라고 디바인이 말한다. “저는 15분 내내 수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부터 리그에서 승점을 얻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습니다. 휘슬이 울리고 팬들의 함성이 들리니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역할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남자의 축구는 정말 강렬합니다.”
리그 축구의 끈질김은 개인적인 경험에 더해진다.
그 주에, 포트 베일은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를 치렀다. 홈팀에서 한 명이 퇴장당했고, 벤치에서 디바인이 투입된 지 6분 만에 베일이 리드를 잡았다. 베일은 1-0으로 2연승을 노렸지만 추간 시간 3분 만에 옥스퍼드가 동점을 만들었다.
디바인은 옥스퍼드의 페널티 지역에서 파울을 당한 벤 개리티에게 패스를 건네며 대응했다. 디바인은 다음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페널티킥이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상대는 10명으로 줄었고 1-1로 맞선 상황이었죠. 저는 그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제가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페널티킥을 넣은 사람이 누군지 몰랐고, 그냥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나 공격수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했죠.
”제가 페널티킥을 얻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냥 서 있었는데 아무도 볼을 잡지 못했죠. 그때 감독님이 저에게 슈팅을 하라고 소리쳤고, 마지막 순간에 페널티킥을 처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볼을 내려놓을 때부터 볼을 잡을 때까지가 20분 정도가 걸린 것 같았어요. 18세나 21세 때는 페널티킥을 받아본 적도 없었어요. 골대에는 잉글랜드 U20 월드컵에 출전했던 제임스 비들이 있었는데, 훈련이 끝나면 매일 페널티킥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생각했죠. ‘저 친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구나. 내가 변화를 줄까, 아니면 그대로 차야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변화를 줘서 골키퍼의 왼쪽으로 찼고, 구석으로 차지 않았다면 골키퍼가 그쪽으로 가서 막아낼 수 있었을겁니다. 마지막에 그가 저에게 다가와서 ‘나는 너가 항상 반대편으로 찰 거라는 걸 맹세할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원래는 그렇게 하는데, 너가 방금 내가 그러지 않은 이유를 알려줬네’라고 말했죠.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느낌과 경험이었습니다.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죠. 항상 기억에 남을 거예요.“
베일은 시즌 초반 승격권에 있었고 디바인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팀이 패배하기 시작했고 디바인은 프로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그 상황은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주변의 노련한 선수들에 대해 말한다. ”경기 직후 라커룸에 가면 패배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더 잘 알 수 있죠.
”오랫동안 승리하지 못한 기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선발에서 제외되었죠. 45분 만에 교체된 경기가 두 번이나 있었어요. 저는 이게 끔찍하게, 끔찍하게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죠. 특히 이런 리그에서는 경기를 뛰고 또 뛰고 또 뛰는 리듬을 찾아야 합니다. 그때가 바로 최고의 플레이를 할 때입니다.
”그 후 홈에서 첼트넘과 경기를 했는데 제가 선발로 출전해 득점했습니다. 그리고 카라바오컵 16강에서 맨스핃으와 원정 경기를 치뤘죠. 그때도 제가 선발로 출전하면서 득점했어요. 돌이켜보면 첼트넘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서 자신감을 되찾았어요. 그때부터 저는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어요. 저는 중앙에 위치했고, 그곳이 휠씬 더 편했고, 바깥으로 넓게 짤라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8번 미드필더나 그보다 더 깊은 위치에 있었고, 저는 그것을 즐겼습니다.
“1-0으로 뒤지더라도 경기장에 나와서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고, 제 리듬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디바인은 시즌 내내 베일에 머무르는 데 집중하고 있었지만, 1워이 되자 잉글랜드 대표팀 코치였던 이안 포스터가 2부 리그 플리머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디바인은 그에게 행운의 문자를 보냈다. 그로부터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포스터 감독이 답장을 보냈고, 24시간 만에 디바인은 플리머스로 임대되었다.
”플리머스에 가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저는 포트 베일에서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매주 경기에 출전하고 있었고, 제가 원하는 포지션에서 즐겁게 뛰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포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하루 만에 일이 성사되었습니다. 줌 통화도 필요 없었어요. 저는 이미 감독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건물 주변과 훈련장에서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거든요. 거의 3년 동안 그와 함께 일했으니까요.
“토트넘에서는 저를 챔피언십으로 한 단계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