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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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선생

Korwi 0 1752
성적때문에 원하던 사범대학, 공업대학은 꿈도 못 꾸고
그남 학비도 싸고 성적도 맞았던
경성의전에 진학

졸업 후 조교가 되어서야
비로서 학업에 매진하여
당시 조선인 중 10명도 안 되던
의학박사가 되었다

"경성의전 교수나 대전도립병원장
자리로 가지 않겠나?"

당시 모든 의대생들이 바라던
보장된 성공의 길....

스승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스스로 선택한 병원으로 향한다.

"나를 본 한 할머니는
청진기만 대면 병이 낫는 줄 알고
가슴에 청진기 한 번만 대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치료비가 없어 평생 의사 얼굴 한 번 못 보고
죽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평양의 한 병원에 근무하며
무의촌 진료를 시작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식구들을 평양에 남겨둔 채
부산으로 피난한다
1951년
피난지 천막에서 시작된 무료병원....
하루에 100명씩 몰려드는 환자들.....
병원비를 조금씩 받기 시작하지만

"제가 뒷문을 열어줄 테니 어서 가세요."

직원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늘 환자 편에 섰던 병원장

1968년
'청십자의료협동조합' 설립
월 보험료는
당시 100원 하던 담뱃값만도 못한 60원이었다

국가보다 10년이나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의료보험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될 때까지
20만 명의 영세민들이 조합의 의료수혜를 입었다

"의사는 진실과 동정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면
죽을 때까지 남에게 필요한 존재로 일할 수 있다."

병원 옥탑방에서 홀로 지내며
뇌경색으로 반신마비가 될 때까지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남모르게 돌봐주던 환자에게
바보처럼 웃으며 건넨 마지막 인사

"올 크리스마스에는 못 올 것 같아 미리 왔네."

1995년 12월25일 새벽
전 재산 1천만 원이 담긴 통장을
간호사에게 선물하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못 먹어 병이 난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라 처방한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1911~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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