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32)-아이린 류(Irene Rew) 미스 유니버스 후보자
“제가 유명해지면 봉사할 기회가 많아지잖아요”
8월 12일(토) 최종 결승전…“한인들 많은 동참 부탁드려요”
6월의 마지막 날 오후, 모처럼 활짝 웃음을 드러낸 해님이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 처자를 만나기 100m 전,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때 저 멀리서 남색 플레어 치마를 입은 그가 나풀나풀 걸음을 옮기며 내게로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처자의 웃음은 밝은 해님만큼 빛났다. 꽃바구니를 옆에 든 알프스의 시골 소녀 하이디로 보였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요들송을 부를 것만 같았다.
류 아이린, 한국 이름은 유연주다. 올해 만 스무 살로 오타고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다. 그는 지금 한 달 뒤에 치러질 큰 행사를 앞두고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내 인터뷰를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어서다. 얘기를 듣는 내내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힘을 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린이 앞둔 큰 행사는 미스 유니버스 뉴질랜드 최종 선발전이다. 이 행사는 오는 8월 12일(토)에 열린다. 최종 우승자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처자’(處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가 된다. 그 반열에 한인 1. 5세 아이린 류가 들어갔다. 한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한인 역사에 큰 경사임이 분명하다.
칼리지 때부터 유엔 유스 활동 펼쳐
아이린은 2003년 여섯 살 어린 나이에 홀로 오클랜드에 유학 왔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하기도 전이었다. 몇 해 뒤 부모와 남동생이 합류해 가족 완전체를 이뤘다. 오클랜드 노스쇼어에 있는 랑기토토 칼리지(Rangitoto College)를 거쳐 알바니 시니어 하이 스쿨(Albany Senior High School)을 졸업했다.
“랑기토토 칼리지에 다닐 때 유엔 유스(UN Youth)를 알게 됐어요. 알바니 시니어 하이 스쿨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제 인생을 바꾼 소중한 경험이었죠.”
아이린은 Year 13 때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열린 유엔 유스 뉴질랜드 대표로 참가했다. 학교가 훗날의 인재를 높이 평가해 경비의 대부분을 보탰다. 전 세계에서 앞날이 창창한 고등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4천 명도 넘는 엄청나게 큰 행사였다. 키위들은 8명에 불과했다.
“유엔 총회같이 분과별 모임이 있었어요. 저는 정신 건강(Mental Health)팀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동료들과 함께 많은 의견을 나눴어요. 완전 백지상태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의견을 끌어냈어요. 특히 여성들이나 어린이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어요. 그게 제 진로를 결정하는 데 나침반 역할을 해 주었다고 믿어요.”
그다음 해인 2015년 아이린은 남섬 더니든에 있는 오타고대학(University of Otago) 신경과학(Neuroscience)과에 들어갔다. ‘과학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 불리는 학과다. 아이린은 현재 심리학도 복수 전공으로 하고 있다.
몇 달 전 어느 날 캠퍼스를 걷다가 ‘미스 유니버스 선발전’ 광고를 보았다. ‘그냥 그런 게 있나 보네’하고 넘어갔다. 얼마 뒤, 주최 측의 전화를 받았다. ‘아무개가 너를 추천했으니 한 번 응모해보라’는 것이었다. 신청비도 안 받고, 인터뷰 과정도 생략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최대 장점은 친화력…취미는 ‘봉사’
아이린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냈다. 처음 신청자 250명 가운데 걸러진 50명에 들어갔다. ‘그냥 친구나 사귀고 오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 뒤 벌어진 캠프 심사에서 다시 20명 선에 뽑혔다. 아시아 여자는 두세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유일한 한국 처자였다.
“대부분 모델 출신이거나 몇 년씩 준비한 후보자들이에요. 저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쁘고 멋진 여자들이죠. 저도 제가 왜 뽑혔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밝게 웃으며 열심히 한 게 심사위원들 눈에 들었던 것 같아요.”
아이린의 최대 장점은 친화력.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한테나 편하게 대한다고 한다. 처음 만난 나도 일이 분 만에 그의 웃음과 천진난만함에 빠졌다.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미녀’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하다. 하지만 남보다 200%가 넘는 매력이 그를 충분히 보충하고도 남는다. 오랫동안 여러 곳에서 봉사해온 그의 따듯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린의 취미는 ‘봉사’다. 봉사할 때가 가장 즐겁고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칼리지 때 한국 적십자 행사에도 참석했다. 삼복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밥차’에서 밥을 나눠주는 일도 유쾌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 밖에도 2년을 넘게 한국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어린 학생을 돌봤다. 평생 봉사만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게 그의 현재 마음이다.
앞으로의 꿈도 봉사뿐이다. 내년에는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의 시골 마을을 찾아 영어 교사로 봉사할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장래 희망을 의사로 삼은 이유 역시 봉사를 인생의 목표로 두고 있어서다.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은 의사라고 생각해요. 그 가운데서도 정신과 의사가 제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전쟁 지역이나 빈민 지역을 찾아다니며 어린이나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미스 유니버스 뉴질랜드 최종 선발전을 앞두고 한인들이 아이린을 도울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는 아이린 류의 페이스북을 찾아 ‘좋아요’(like)를 많이 눌러주면 된다. 둘째는 아이린의 후원자가 되어 주면 된다. 최종 선발전은 심사위원과 일반 네티즌의 투표로 결정 난다. 투표권은 한 장에 $1, 다섯 장 묶음으로만 살 수 있다. 최대 50장($50)까지 가능하다.
“한인회나 한국학교 도움 절실해요”
솔직히 말해 이 두 가지 방법은 어느 정도 나이든 교민들에게는 다가가기 어렵다. 대신 칼리지 학생이나 대학생 같은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좀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힘을 실어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린이 미스 유니버스 뉴질랜드 대표가 되면 좋은 이유는 꼭 그가 한국 사람이어서 만은 아니다. 그의 꿈이 ‘봉사’인데, 만약 최종 결승자로 뽑히면 더 알차게 봉사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승전에 오른 스무 명 후보자 가운데 필리핀 여자가 있어요. 그 친구 말에 의하면 필리핀교민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참 부러웠어요. 제가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오클랜드한인회와 오클랜드대학 학생회, 한국학교와 한민족학교 등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한국계 뉴질랜드 사람으로 열심히 일해 보고 싶어요.”
아이린은 현재 태국 푸껫에서 스무 명의 경쟁자들과 합숙하며 최종 선발전을 기다리고 있다. 7월 20일에 돌아오면 결승전까지 남은 기간은 3주뿐이다. 그사이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려야 한다. 투표 숫자가 최종 승부를 결정한다.
그는 남섬에서 유일한 후보라는 특수성을 살려 소시지 판매 같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처음에는 패션쇼 같은 우아한(?) 행사를 염두에 두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지금은 접은 상태다. 1등, 2등, 3등 외에도 EC(Entrepreneurial Challenge, 심사위원 득표로 결정)상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판가름 난다. 우리 한인들이 애정을 갖고 힘을 실어줘야 할 대목이다.
이름 뜻대로 ‘평화의 여신’ 역할 할 것
아이린 류(Irene Rew). 아이린은 ‘평화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그는 “내가 유명해지면 봉사할 기회가 많아지잖아요”라고 말한다. 그가 유명해지면, ‘뉴질랜드(오클랜드) 출신 한국 사람’이라는 멋진 ‘레떼루’(상표)가 늘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그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아이린은 동양(한국)의 신비한 아름다움과 서양의 격조 있는 발랄함을 함께 품고 있다.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마음마저 예뻐 ‘미(美)의 대사(大使)’ 역할을 충분히 하고도 남아 보인다. 나는 그에게 백 표, 아니 천 표를 던지고 싶다. 이제 나머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글_프리랜서 박성기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Irenerew/
티켓 구입: https://www.iticket.co.nz/events/2017/aug/irene-rew
모바일: 021 825 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