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적(五賊)
어제가 8.15 광복 66주년이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 동안 당했던 일제 압정은 길기도 하였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광복이 되고 나서 반세기는 찰나와 같이 느껴지니 고통스러운 일은 짧아도 길게 느껴지고 즐거운 일은 길어도 짧게 느껴지는 이치 때문이다.
우리가 일제에 굴복해서 핍박을 받은 것은 만고에 씻지 못할 민족적 수치였다.하지만 그 결과의 뒷면에는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결과도 역사고 원인도 역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역사는 어느 쪽이냐 하면 결과 보다는 원인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즉 우리민족이 일본 이라는 침략자 앞에서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이 첫째요 배신자가 나타나 나라와 겨레를 팔아 넘기는 것도 속수 무책 이었던 것이 둘째다.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사가 되고 말았지만 그 때 똑바로 정신을 차렸더라면 비극은 모면 했을지 모른다. 역사에는 가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해 본다면 1904년 2월26일 일본 공사 하야시 겐스케와 외무대신 이지용(李址鎔)간의 “한일 의정서”와 1910년 8월22일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이 체결한 “한일 합병 조약”이 없었더라면 대한제국은 주락의 운명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때의 역사를 우리와 달리 보았을 것이다. 즉 우연이 아니라 필연 이라고.
아무려나 망국 조약을 체결하는데 앞장 섰던 자가 외무대신 박재순, 내무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대신 권중현 등인데 역사는 이들을 “오적(五賊)”이라 부른다.
그러나 같은 대신이라도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기영은 끝내 서명을 거부 했으니 인격과 애국심의 차별을 실감케 하였다.
우리의 선조들의 ‘숭고한 시대 정신’을 되새기고, ‘나라의 소중함’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고학력과 경륜을 갖춘 인격자라 일지라도 비굴한 인격자가 아닌가 한 번쯤 생각해보자, 또한 인격자로서 사회를 위해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지. 광복 66주년을 맞아 한 번쯤 깊이 생각 할 기회를 갖기 바란다.
조 기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