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빵을 기억하라
세 가지 빵을 기억하라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남을 생각하는 빵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은 새로 도전하는 빵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나다움을 담아낸 빵
# 종영된 KBS-2TV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그냥 스쳐 보낼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특히 ‘세 가지 빵의 화두’가 그것이다.
팔봉선생(장항선 분)이 극중인물 김탁구(윤시윤 분)와 구마준(주원 분)에게 경합 과제로 던진 첫 번째 화두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었다.
탁구는 자신의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며 시장통의 한 아이를 위해 빵을 만든다.
비록 넉넉하고 질 좋은 재료도 아니었지만 탁구가 만든 보리밥빵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었다.
거기엔 남을 위하는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단지 내 배만 부른 빵은 진짜 배부른 빵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그 빵을 먹일 때 차오르는 마음의 포만감이 있어야 진짜 배부른 빵이다.
# 팔봉선생이 던진 두 번째 화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이었다. 먼저 팔봉선생은 빵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탁구와 마준은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이스트’라고 했다.
그러자 팔봉선생은 그 ‘이스트’ 없이 빵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그들에게 그것은 새로운 도전이요 모험이었다.
결국 탁구는 이스트 없이 청국장 등 온갖 발효식품들을 동원해 빵을 만드는 힘겹지만 독특한 경험을 한다.
비록 힘들고 곡절 많은 과정이었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빵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이었다.
거기엔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모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팔봉선생이 던진 화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이었다. 하지만 이 화두는 스승 팔봉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유언이 되고 말았다. 과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어떤 것일까?
그 화두는 삶의 숙제로 남았다.
스승인 팔봉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탁구는 말했다.
“스승님, 저는 명장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팔봉선생은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답했다.
“애써 명장이 되려 하지 말아라.
세상은 겪어내는 거다.
겪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 너만의 빵을 만들어라.
그러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 그렇다. 명장은 기술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나다움, 자기다움을 담아낼 때 비로소 명장이 되는 것이다.
탁구가 드라마의 끝 대목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를 누나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팔봉빵집으로 돌아와 바닥에서부터 다시 자기 자신을 걸고 그만의 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담아 가장 자기다운 빵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나답고 자기다울 때 가장 행복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결국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바로 그 나다움,
자기다움을 담아낸 빵이었다.
# ‘공정’이 화두가 된 요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극중에서 탁구와 마준의 경합과 경쟁은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탁구는 그 모든 불공정을 뚫고 자신에게 칼을 겨눴던 이들마저 끝내 품어냈다.
어쩌면 그래서 드라마일지 모른다.
진짜 현실이라면 탁구는 마준에게 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도 어쩌면 그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불공정의 사회라는 골리앗을 김탁구라는 다윗 같은 한 작은 인간이 부숴줬기 때문일지 모른다.
#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확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하지만 공정한 사회로 가는 제도와 수단만이 아니라 그 목적과 목표 또한 잊어선 안 된다.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목표는 한마디로 저마다의 행복한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정사회로 가는 길은 결코 획일적 평등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저마다의 개성과 삶의 역정에 바탕해서 자기만의 빵을 만들어내는 그런 과정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가치를 담아냈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끝났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참 아쉬울 따름이다.
# 출처 정리 : 미주 중앙 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