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교회를 다녀 오는 길은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그 날 목사님의 설교는 십일조와 다른 명목의 헌금을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목사님의 설교에는 교회가 주관하는 갖가지 행사에 성도들의 무료 봉사를 강요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터였다. 사실 그런 설교의 시간에 어떤 이유로 해서 교회에 봉사를 못하는 사람들은 공연히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목사님의 설교는 성도가 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온전한 크리스천이 될 수 없으며 심지어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해도 천국은 고사하고 불 지옥으로 떨어 지는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무시 무시한 공갈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
예전에 시외 버스를 타면 쇠갈고리 의수를 들이대며 볼펜과 껌을 사라고 겁을 주던 가짜 상의 군인의 횡포보다도 더 비열한 수법이다. 이러한 억지는 이미 지난 천년 이상 교회가 순진한 사람들에게 써 먹었던 낡은 수법인데 아직 그 구태를 못 벗고 있는 교회의 실정이 참으로 안타깝다.
지금 교민들 중에는 최근에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선량한 신도의 고혈을 더 짜 내려 하고 있다. 아무리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한 교회라 해도 세상의 불경기는 피할 수 없나 보다. 그래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교묘한 말 솜씨로 성도들의 얇은 호주머니를 노리는 것이다. 차라리 목사님이 복권을 사서 하나님께 당첨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은 아닐는지?
나는 솔직히 목사님이 무슨 근거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십일 조와 헌금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 그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 모르겠다. 사업에 망했다가 십일조 열심히 해서 물질적 축복을 받은 사업가의 실례는 단골 메뉴에 속한다. 진정한 크리스천 사업가도 부도가 날 수 있고 신실한 장로님도 질병에 걸려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는지.
집으로 돌아 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올해 십일조를 안 해서 우리가 이렇게 돈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지도 몰라.
번 돈은 없어도 감사 헌금이라도 해야 했었나 봐.’
나는 잠시나마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내 아내만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날 목사님의 설교는 감동적 이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성공적 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목사님의 설교는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기가 힘들 때가 많다.
무지개를 누가 만들었냐는 아이의 질문에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목사님은 그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 선생님의 같은 질문에 자기와 같은 대답을 하기를 원하는 지 묻고 싶다.
아니 차라리 아이가 학교 수업 중에 혹시 성경과 상반 되는 내용이 있으면 비록 성적이 나쁘게 나오더라도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닌 성경에 나온 대로 답을 쓰도록 단단히 교육 시키는 굳건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그분을 다시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