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십자성 아래 사람 향기나는 이야기...;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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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십자성 아래 사람 향기나는 이야기...; 사요나라!

일요시사 0 395

“하이! 탁꾸시!” 

“야아, 이랏샤이 마세” 

손님이 일본어 조로 택시를 부르기에, 엉겁결에 같이 맞장구를 쳤다. 늦은 밤 일본인으로 보이는 두 젊은이가 술이 어지간히 취한 상태였다. 스카이 시티 카지노 입구, 택시 문을 열자마자 그대로 뒷좌석에 쓰러져 들어왔다. 거친 일본말로 둘이 내뱉는 객기가 대단했다. ‘이들을 태워? 말아?’ 망설일 틈도 주지 않고 갑자기 “땡크 터미너루!” 하며 목적지를 외쳐댔다. 

 

“난노 땡크 터미너루 데스까”

“땡크 터무너루”

어떤 터미널인지 묻는데 무조건 “땡크 터무너루”만 외쳐댔다. 터미널이 어디 한두 갠가? 화물 터미널도 있고 여객선 터미널도 있는데 탱크 터미널이라니, 듣다 듣다 그런 이름은 처음이다. BP나 Shell 정유회사 탱크 저장소를 말하는 게 아닐까? 일단은 출발을 했다. 정유회사 유조 탱크 있는 곳으로 간다고 말하고서 방향을 바이어덕트 하버를 거쳐 웨스트 헤븐 쪽으로 향했다.

 

운전하며 듣다 보니 다운된 얘기들만 이어갔다.

“이마 기모찌모 와루이다” (현재 기분도 별루야)

“오나까모 빼꼬 빼꼬 다시…” (배도 고프고…)

“에이 오모시로꾸 나이야” (에이 재미없어)

한참을 일본말로 둘이 떠들어 대는데, 카지노에서 돈깨나 잃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게 웬 소린가! 그대로 그 일본말 흐름이나 탈 것이지 예고도 없이 그 말투가 바뀌어 버리다니…. 갑자기, 젊은이들 입을 통해 한국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런 욕투성이였다.

“에이 띠발, 돈 다 펐다. 띱 때끼 들! 재수 없어. 다 속였어 개 때끼 들 다 해처먹어라”

“내 돈도 다 날렸다. 그때 손 털었어야 한 건데, 니미 띠브랄 때끼 들… .”

카지노에서 가진 돈 몽땅 다 털린 빈 털털이라도 됐다는 말인가? 택시 운전하며 이런 원색적인 욕 들은 듣다 듣다 처음이었다. 운전하는 내가 오히려 당황이 되었다. 내 귓전에 부서지는 방향 잃은 저질 욕 들이 택시 안을 꽉 메웠다. 숨이 갑갑할 정도였다. 점층법이 더해가다가 아예 원망과 분노의 기운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된소리 강한 일본말로 나오기에 의당 일본 젊은인 줄 알았는데….

 

처음에야 나도 모르게 ‘그까이 꺼 그냥 대충’ 하며 장단을 맞췄다. 20여 년 전, 일본 출장 가서 사용했던 일본어 기억을 되살려 말 대꾸 응수를 하면서 그저 그렇게 넘어가나 싶었다. 잘못 짚었다. 한참이나 샛길로 빠져들었다. 장난기 어린 생각으로 툭 던진 맞장구가 갈지(之)자 주행을 하고 있었다. 어찌 꼬이고 꼬이는 게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싶은데도, 내 입에선 선뜻 우리말이 나오지 않았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한 그네들이야 나를 두고 웬 일본 택시 운전사(?)하며, 임자 만났다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기들 딴엔 속 있는 말 한다고 나를 젖혀두고 허심탄회하게 별별 욕을 다 해댔다. 입에 담지 못할 우리말 쌍욕들을 내 택시에서 무방비로 듣고만 있었다. 그런 와중에 거기다 대고 내가 우리말로 응수를 하자니, 그들 입장도 황당할 것도 같고 좀 그랬다. 그네들 대화 분위기상 끼어들기도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그만 끼어들 때를 놓친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네들 앞에 한낱 일본인 택시 운전사로 남고 말았다. 젠장 이럴 줄이야. 배역은 자기 하기 달린 몫이다. 정말, 운수가 개 빵인 날인가? 

 

우리말이 심한 모욕을 받는 느낌도 들어, 그렇게 지속하는 걸 그대로 지켜볼 일만은 아닐 성싶었다.  서서히 엑셀을 밟아 내려줄 곳을 빨리 찾아 그네들을 내려주는 게 우선이겠거니 싶어 서둘렀다. 그런데 이건 또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깬가. 

애꿎은 일본인(?) 택시운전사를 타깃 삼아 자기들 돈 잃은 것을 분풀이하듯   지지고 볶고 야단이었다. 정말 가관이었다. 동쪽에서 뺨 맞고 어디 서쪽에다 화풀이한다더니,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이 때끼가 돈다 돌아. 요금 더 받아 처먹을라고 이 운전사 때끼 좀 봐라. 멀리 돈다 돌아.” 그들 안중에는 난 한국말을 모르는 운전사였다. 그것도 그네들이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일본인 택시 운전사 역을 억지로 해야 했다. ‘아이구 머니, 속 터지네.’ 저런 소릴 듣고도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얘기도 못 하고 그저 꾹 참고 운전을 하자니 참 메스껍고 가슴이 요동을 쳤다. 괜히 일본말로 응수하며 분위기 맞추려다 된 통으로 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 말은 바로 하랬다. 말은 제대로 할 일이라고.  

 

곤욕이었다. 깜깜한 밤에 바닷가를 운전하며 큰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라도 빨리 손 털고 싶었다. 멀리 보이는 유조탱크 쪽을 향해 달려갔다. 바닷가 BP 유조탱크 건물 앞에 이르니 아니란다. 다시 Shell 유조탱크 건물 앞에 갔다 대도 아니란다. 그러면서 한 수 더 뜨는 게 아닌가. 

“이 때끼 좃(?)도 길도 몰라.” 

‘우와 정말 돈다 돈다.’ 

 

꼭지가 돈다고 하는 말, 생생하게 체험 학습이라도 하는 밤. 그때, 한국말로 차마 사용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그네들이 찾는 ‘땡크 터미너루’는 도대체 보이질 않았다. 죄 없는 우리말은 유배당한 채, 바닷가에 질펀하게 널브러졌다. 구겨져 버려지며 밟혀가고 있었다. 숨겨진 치즈를 찾아 이리저리 미로 속에서 뺑뺑 돌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헛돌기를 그 몇 번이나 했던가? 

 

불빛도 없는 허름한 유조탱크 저장소에서 한참 떨어진 곳. 정박한 화물선 쪽을 지나자, ‘스톱푸 스톱푸’ 하고 외쳐댔다. 바로 그곳이란다. 젠장. 그곳이 그네들 목적지였다니, 보아하니 외항 선원인가 싶었다. 그걸 어떻게 찾냐 말이다. 눈감고 아웅 이지. 그래도 늦게나마 찾긴 찾았으니 다행이었다. 그때, 마음은 뭔가에 홀린 듯 아예 지칠 대로 지쳐 구겨진 휴지처럼 너덜거렸다.

 

스톱된 택시미터를 보더니만 요금을 계산하면서 젊은이들이 마지막까지도 초(?)를 쳐대며 한 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봉 썼다 봉 썼어. 띠발!” 

‘기왕 끝까지 참은 것, 그래 참자며 마음을 다지면서도 그네들이 내뱉은 한마디만은 그대로 되돌려 줘야겠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그러면서도 똑똑한 어조로 ‘띠발’ 위에 대못쐐기를 박았다.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두 젊은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결정타라도 맞은 듯 휘청거렸다. 술기운이 확 달아난 듯 혼비백산한 모습. 우리말을 알아들었던가? 

 

“돈다 돌아! “

“사요나라!” 

 

 

 

백동흠 수필가

[에세이문학]등단. 2017년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블로그•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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