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8년 30대 비정규직의 가상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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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년 30대 비정규직의 가상 시나리오

이순이 0 1288
 2018년 30대 비정규직의 가상 시나리오

한국에서 저성장은 낯선 단어다. 한국은 1970년 이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오일쇼크,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대외충격의 여파로 성장률이 급락한 적이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장률은 어김없이 복원됐다. 2000년 후반 이후 성장률이 5%대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처럼 긴 저성장 터널은 아니었다.

엄길청 경기대 교수는 15일 “저성장은 내가 가진 자산이 반토막나고 직장을 구할 수 없다는 의미”라면서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감정까지 바꿀 수 있는 엄청난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도쿄 중심부의 땅값과 주가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한국은 저성장의 충격을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스위스 대형 금융그룹인 UBS는 최근 한국의 2012년 경제성장률을 2.8%로 예측했다.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그날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삼성경제연구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뉴욕KBC(한국비즈니스센터), 통계청, 크레디트스위스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성장률 2%에 머문 한국’을 미리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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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와 함께 2%대의 낮은 성장률로 한국 사회가 저성장 시기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노인들이 구인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실업률 10%, 5년째 금리 0%, 집값은 3분의 1로”

2018년 11월16일 구보씨(36). 기상을 재촉하는 스마트폰의 알람에 눈을 떴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견디나.’ 일어나자마자 걱정스럽다. 대학을 졸업한 지 5년째인 그는 아직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1%. 벌써 5년째 2%대다. 인구가 감소하는 올해는 1%대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와 있다.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4만~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6.2% 성장한 2010년과 비교해보면 일자리 20만개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인구가 줄면서 한 해 졸업하는 대학생 수도 40만명으로 감소했다. 2010년 50만명보다 10만명가량 적다. 하지만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가 더 가파르다보니 청년실업은 더욱 심각해졌다. 실업이 누적되면서 전체 실업률도 10%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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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전체 임금 근로자의 34%이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50%를 넘었다. 대졸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도 60%를 넘어섰다. 기업들은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대졸사원도 비정규직으로 뽑고 있다. 기업들은 설비에는 투자해도 더 이상 인적자본 투자는 하지 않는다.

정규직이 됐더라도 생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구보씨는 1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사실 정규직이 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기업들이 위기경영에 들어가면서 임금상승을 최대한 억제했기 때문이다.

통상 임금상승률은 경제성장률을 따라간다.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지난 5년간 임금도 그 수준으로 올랐다. 연봉 5000만원을 받는 중산층 가정을 기준으로 따져보자. 연간 5% 임금이 올랐다면 5년 뒤 6079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2% 올랐다면 5412만원에 그친다. 5년 만에 666만원의 임금차가 생긴다. 소비가 줄어드니 내수 시장도 위축된다.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가는 넘쳐나는 재고를 감당할 수 없다. 파는 만큼만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저성장 시대 기업의 4대 생존전략은 재고 최소화와 가격 최적화다. 이른바 ‘Less is More’(적을수록 좋다)다. 구보씨가 사려는 삼성의 대형 LCD TV 가격은 80만원이다. 몇해 전만 해도 200만원에 팔리던 제품이었다. 비싸면 좀처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니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낮췄다.

내수와 함께 수출도 바닥이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시장이다. 국가채무위기로 유럽연합(EU)이 마이너스성장으로 돌아섰고 미국은 몇해째 ‘0성장’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입국이던 중국도 5%까지 성장률이 떨어졌다. 2010년 초 10% 성장률과 비교해보면 중국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세계경제가 예상치보다 1%포인트 하락하자 한국 수출은 첫해에만 3%가 넘게 줄어들었다. 선진국들이 수입을 줄이자 신흥국의 수출이 감소했다. 나빠진 경기는 신흥국들의 내수시장 위축으로 이어졌다. 내수 부진에 수출 부진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집 가격은 많이 떨어졌다. 10억원이 넘던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3억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집을 사는 것은 여전히 망설여진다. 집값은 계속 내리막이다.

장래가 불안하니까 약간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저축을 한다. 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는다. 금리도 낮지만 대학시절 받았던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진력을 뺐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에 빚은 곧 파산을 의미한다. 돈을 빌려 집을 산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한다.

올해 은퇴하는 구보씨 아버지도 마음이 편치 않다. 경기침체로 투자기대수익이 크게 떨어져 노후자금을 마땅히 굴릴 데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계속하면서 이미 5년째 제로 금리다. 예금금리가 바닥이니 저축으로는 돈을 모으기 힘들다. 증시로 눈을 돌렸지만 큰 차이는 없다. 코스피지수는 몇년째 1500박스권에 갇혀 있다. 2007년 이후 2100선을 넘어본 적이 없다. 기업수익이 악화되고 전망마저 어두우니 증시가 활황을 띨 리 없다.

집값 폭락은 ‘베이비부머들’에게 충격이었다. 집 한 채가 유일한 재산인 이 세대에 집값 하락은 자산가치 감소를 의미했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당시 50대가 가진 자산의 85%가 부동산이었다. 지난 7년간 집값이 떨어진 데다 매매가 안돼 집은 세금만 축내는 요물단지가 됐다. 은퇴 이후 ‘우아한 생활’을 꿈꿨던 기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현실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파트 경비원으로 나가야 한다. 나이 60에 말이다. 그나마 그 일자리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구보씨는 이런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수 없다. 부모세대에 돈을 빌려 집을 사거나 결혼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가 됐다.

은퇴 안전판이라던 국민연금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2008년 소득대체율(월 평균 임금과 비교한 연금소득의 비율)이 50%였지만 지금은 45%까지 떨어졌다. 10년 뒤인 2028년에는 40%까지 떨어진다. 안정적인 소득대체율인 70%에 못미친다.

그나마 ‘아버지 세대’까지의 이야기고, 구보씨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2048년에는 연금이 얼마나 줄어들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2050년에 가입자와 수급자의 수치가 역전되고 2060년 초반에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국민연금을 뒷받침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가 50%를 넘으면서 정부는 사실상 연금지원을 끊었다.

국가채무가 급증한 것은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다. 하나는 세수감소다. 기업들의 수익이 줄어들면서 세수가 크게 감소했다. 1% 성장이 감소하면 세수는 2조원이 줄어든다. 법인세나 부동산 양도세 등에서 특히 많이 감소한다. 이를 메우기 위해서 정부는 소득세를 올렸다. 소득세 부담이 늘면서 가뜩이나 몇푼 안되는 구보씨의 지갑은 더 헐거워졌다. 각종 소득공제도 사라져 13월의 보너스도 없다.

화가 나는 것은 모두가 다 쪼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됐다. 2016년 우리나라의 백만장자는 42만5000명이다. 2011년 21만7000명보다 2배가량 늘어났다. 2011년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가 전망한 것이 딱 들어맞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자유무역의 과실도 고소득층에게 집중됐다. 구치, 샤넬 등 명품매장은 언제나 붐빈다.

구보씨는 걱정스럽다. 5년 사귄 그녀와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자금을 언제나 모을 수 있을지…. 언제쯤 이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따라 파란 가을 하늘이 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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