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십자성 아래 사람 향기나는 이야기...; 천일야화 (千一夜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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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십자성 아래 사람 향기나는 이야기...; 천일야화 (千一夜話)

일요시사 0 392

“자, 어서 드입시더!”

 

새하얀 쟁반 접시 위에 수북한 스내퍼(도미) 횟감이 빛을 발한다. 몇 킬로그램을 떴으면 저리도 풍성하나? 그저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 오랜만의 1박2일. 오클랜드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을 달려온 곳. 토요일 점심 시간. 스넬스비치 근처, 홀리데이하우스에서 여장을 푼다. 여러 부부가 모처럼 나선 부부피정이다. 그 동안 일터에서 수고한 이들. 마음껏 드시란다. 촘촘히 짜진 일정이 없다. 업무나 주변 사람에게 구애 받지 않는 시간. 확 트인 바다 풍경처럼 넓고도 여유롭다. 그야말로 프리덤(freedom)이다. 실컷 드시고 마음껏 이야기 나누면 그만. 즐거운 정담을 곁들여 맛있게 먹으면서 바닷바람을 맞는다. 먼 발치에 하얀 요트 서너 척이 푸른 바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젓가락으로 듬뿍 집어 든 횟감. 간장, 겨자, 참기름을 섞어 만든 쏘스에 콕 찍는다. 신선한 상추 깻잎에 얹어 감싼다. 볼이 불룩하게 나오도록 입안에 가득 넣고 얌전히 꼭꼭 씹는다. 아리랑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간다. 캬~ 맛이 기가 막히다. 말없이 그저 눈만 크게 한 번씩 끔뻑거린다. 먹는 식 재료가 깨끗하고 신선해서 나무랄 게 없다. 이런 모든 것을 원 없이 함께 들 먹으니 딱 제 맛이다. 마주 앉은 부부가 오물오물 잘도 씹어 삼키는데, 그 얼굴에 평화가 찰랑댄다. 

 

누군가 말했다.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들 수 있는 것은 큰 복이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몸과 마음이 가장 자유로울 때는 같이 있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이다. 고국에 계신 연로한 부모님께 가장 걸리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다. 두 분, 몸이 편찮기 전에 자주 뵙고, 맛있는 것을 함께 드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나이 들어서 부자는 재산을 많이 가진 이가 아니란다.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진 이가 바로 부자라고. 절대 공감한다.  

 

확실한 게 딱 있다. 과거는 벌써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결론은 지금 여기다.  함께하는 이와 지금 여기를 느끼며 좋은 풍경을 바라보는 일, 거기에 맛깔스러운 음식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배를 움켜잡고 웃을 일들이 줄 서있다. 잘 먹다 말고 우스운 이야기에 폭소를 터뜨리며 입을 손으로 감싸고 만다. 하마터면 입안의 밥알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갈 뻔 했다. 이민 와서 애들 키운 이야기, 일터에서 겪는 영어 해프닝, 키위 문화에 실수한 일들, 못된 사람 골려 준 이야기… . 그 이야기 중에서도 서로에게 공감이 가는 꼭지가 몇 개있어 다시금 되짚어본다.

 

내가 당해서 싫은 일,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덕목이다. 배려(consideration)가 기본인 세상이다. 대체로 키위들이 규정과 법을 잘 지키기는 하지만, 때때로 시시콜콜 따지는 데는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규정과 법으로 제한 하지 못하는 도덕과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결과로 나타난 일의 잘잘못만 따지는 일이야말로 고구마를 물 없이 먹는 일처럼 답답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과정에 배인 그럴 만한 사연에도 시선과 관심을 주는 일이 바로 배려다. 법적으로 잘못한 것 없다고 이상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향기를 잃은 채로 자기 잘난 맛에 살 수도 있다. 신선도가 없는 횟감처럼 모양만 회로 남으면 제 기능을 잃은 것이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것이 건강이라고 한다. 사회적 건강을 생각해본다. 따뜻한 인간미는 상대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다. 법과 규정이 지능지수 (IQ )에 가깝다면, 도덕과 상식은 감성지수(EQ)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일곱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나눈 EQ에 얽힌 이야기들. 세월이 갈수록 배려의 손길이 생활 곳곳에서 늦가을 코스모스처럼 한들거린다.

 

여러 이야기를 듣다가 모아지는 지혜를 음미하고 반추했다.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불필요한 것은 잘못된 조언이다. 그 중에서도 경험하지 않은 자들의 조언은 우리의 시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이 고생 저 고생 저 고생 다 하고서 보다 나은 입장에 있는 이들의 조언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혜다. 세상일을 잊고 함께 먹으면서 공유하는 이야기들이 시골장터에 팔려고 내놓은 보따리 꾸러미 같다. 저마다의 인생 활기가 배인 이야기들이어서 활어처럼 팔딱거린다.

 

모처럼의 1박2일, 집밖의 외유, 바닷가 산책, 나들이는 자정을 넘어서도 밤에 피는 달맞이 꽃처럼 시간시간에 맞게 꽃을 피웠다. 한 낯부터 이어진 맛있는 음식 메뉴도 다양했다. 음식이 쉬지 않고 계속 요리되어 나왔다. 스내퍼 회, 문어회, 생선 튀김, 맥반석 달걀, 묵은 김치에 졸인 꽁치, 오징어 파전, 부추 전, 스내퍼 매운탕… . 막바지 음식으로 자정을 넘기고 매운탕 진국에 끓여먹은 라면 맛이라니~ 군대시절 겨울 야간 근무 마치고 찬합에 끓인 라면 맛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민 와서 십 수년을 다 넘긴 자들이라서 웬만한 자식농사도 지어서 독립을 시킨 나이 대들이었다. 오십 대 후반부터 육십 대 초반이었다. 이민 초기에야, 자식농사와 자기 인생을 두고 뭐라도 되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들 왔다. 키위들 말로 하면 Becoming 에 방점을 둔 생활이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독립하면서 좀 바뀌어가고 있다. 지금 여기, 행복이 담긴 순간 순간을 느끼는 시간이 그리워지게 되었다. Being 에 머무는 시간에 맡기게 된 것이다. 맛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밤 늦도록 천일야화처럼 이야기 중에 부부들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 친 말이 딱 맞다. 행복은 Becoming 이 아니고, Being 라고. 지금 여기다.

 

각자의 잠자리에 들어서는 시간, 새벽 한 시가 넘었다. 낯선 곳에 두러 눕자 금세 곰처럼 골아 떨어졌다. 이른 아침 살포시 들려오는 귓전의 향수소리, 새벽비가 홀리데이 하우스 양철 지붕을 가녀리게 두드린다. 가만히 누워 계속 듣는다. 바쁠 것도 없는 주일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

 

 

 

백동흠 수필가: 

2017년 19회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Birkenhead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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