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울대학교 합격자 의 감동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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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울대학교 합격자 의 감동적인 글

토마토 0 748

(퍼온 글)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입니다.

너무 감동을 받아 울고 말았습니다.

                                  *                    *                    *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 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엄마..., 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 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 일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 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 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                        *                         *

   위의 글은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에서 고른 글입니다.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내의 굴지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으며 어머니와 형을 모두 미국으로 모시고 가서 같이 공부하면서 가족들을 보살핀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적에 올라가던 암벽에서 생명줄인 밧줄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사랑이나 행복,성공을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하고 그런 행복을 얻지 못할때는, 자기를 탓하기에 앞서 이 사회에 불만을 폭발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 친구들중에 부자나 성공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정말 사는동안 묵묵히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 힘들게 사는 어려운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가족처럼 시장한복판에서 가게도 없이 함지박에 생선을 앉아서 팔면서 몸이 불편한 두 자식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 !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자식들이 이렇게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 얼마나 보기 좋습입니까?

여러분의 조건이 이분들 보다 더 나쁜 사람은 별로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평하지 마십시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십시오.

특히 젊은이 여러분!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스스로가 가만이 있는데 누가 도와 주겠습니까?

‘젊은이의 실패는 노년의 성공보다도 더욱 믿음직 하다’ 저는 이말을 참 좋아 합니다.

여러분 젊지 않습니까?

꿈을 적으십시요 !

꿈을 날짜와 함게 적으면

그것은 목표가 되고

목표를 잘게 나누면

그것은 계획이 되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면

꿈은 실현 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학교(실업계 고등학교) 졸업후 지금까지 40년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학창시절 신문배달 졸업후 급사 철물점 점원 공사판 인부 아이스케끼장사 군대가서는 월남전에 지원 입대하여 정글을 누비며 전투수당 받아 집에 송금도 했습니다.

이제 은퇴한지 3개월이 안되었습니다.

애들 훌륭하게 잘자라 주었고, 잘살진 못해도 남은 여생 고생안하고 자식에게 신세 안지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식구와 자식들이 내곁에 없었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저는 기관사였습니다.

새벽 5시쯤 밤을 꼬박 새우고 집에오면 단칸방에 아내와 딸셋이 나란이 누워 세상모르게 자는 모습을 보면  저는 "이 네사람이 오직 나 하나만 믿고 마음놓고 단잠을 자는구나" 생각하면  어떤 힘든일도 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이든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부모 친구 주변사람들이 당신을 도와 줄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세월이 지나고,,,

여러분이 제 나이가 되고보면 그때는‘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하고 혼자 미소짓게 될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이글을 앍고 여러분의 삶에 도움이 되었다면 정말 기쁠것입니다.

2월인데도 귓가에 스치는 바람이 온기가 느껴집니다.

봄처녀가 살금 살금 다가오고 있는게 보입니다^^

늦감기 조심하시고 부지런이 운동 하셔서 다가올 봄 활기차게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2012년 2월 雨水 전날 비운사람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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