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낙엽은 다시 불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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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낙엽은 다시 불붙지 않는다.

월광 2 839
젖은 낙엽은 다시 불붙지 않는다.

좁지 않은 집안 곳곳엔 지겨움과 일상의 권태로움이 내려앉아 있었다.
남편의 바람 이후 남편은 일찍 귀가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듯 나를 대하며 나름 메뉴얼에 적힌 모범남편의 흉내를 내고있다.
앵무새와 대화를 할수 없듯 흉내는 흉내일 뿐이고 몇번의 허물을 갈아 입든 뱀은 뱀 일뿐이다.
오늘은 기필코 말 해야한다.
"나 남자 있어. 우리 그만 이혼하자."
돌아누운 남편 뒤통수에 대고 차분히 얘기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니?"
남편이 몸을 일으켜 돌아 앉았다.
"오랫동안 생각 한거야. 그리고 더이상 유부녀란 꼬리표 달고 남자 만나고 싶지도 않아."
귀찮아하는 남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설득하듯 얘기했다.
"당신 답지 않게 왜이래? 이혼은 뭐고 남자는 뭐니?"
귀찮다는듯 가라앉은 남편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느릿느릿 건너온다.
"아니. 이게 나 다운거야. 알잖아. 나 거짓말 못하는거. 나 남자 있어."
이 남자 앞에서 나도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남편의 일그러진 표정을 짖밟으며 내가 맛봤던 모욕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던때가 있었다.
"당신은 벌써 잊었나 모르겠지만 처음엔 정말 당신을 죽이고 싶었어. 하루하루 숨쉬는게 고통스러워 한주먹씩 약을 털어넣어야 겨우 몇시간이라도 잠을 잘수 있었던 그 시간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난 없었어. 죽음과도 같은 시간들 이었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한번 내쉰다음 얘기를 이어나갔다.
"근데 약이 좋긴 하더라. 슬금슬금 기운이 뻗쳐오더니 생각이란게 들기 시작하더라. 치료를 받아 회복되면 될수록 한가지 생각이 또렷해지더라."
"그 생각이 뭔대?"
남편의 눈이 커지며 대답을 재촉했다.
"당신과는 다시 살지못한다. 절대 함께 살아선 안된다란 생각."
실망한 남편의 눈이 내 눈길에 마주쳐 흘러내린다.
"결국 내가 우울증으로 병원까지 가게된것도 분노를 삭히지 못해 당신을 죽이고픈 충동에 시달린것도 당신과 다시 살아야한다 라는 생각때문에 시달리는 고통이란걸 치료를 받으면서 깨닫게 되었어. 그도 그럴것이 당신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에겐 그건 정말 혁명적인 깨달음이었어."
어딘가모를 들떠있는 내 목소리는 힘이 실려있었다.
"나 지금 노력하고 있잖아. 더 노력할테니 나에게 기회를 좀 줘봐"
간절함 보단 뜻대로 되지않는 남편의 짜증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그 노력 새로운 사람에게 쏟도록해. 당신을 버린다고 마음먹었을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두렵기만 했던 이혼 후의 내 삶에 대한 걱정조차도 살아있음에 대한 증거라는걸 깨닫게 된것도 얼마되진 않아. 살아있어도 죽은것같은 그 암흑의 고통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애써 남편의 눈길을 피하며 다시금 스스로에게 확인시켰다.
"당신 정말 바람 난 거야? 도대체 어떤 놈이랑 바람이나서 이렇게 변한거니?"
눈을 부라리며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 바람 난건 사실이지만 어떤 놈 때문에 내가 이러는건 아냐.
내 생각이 변할수 있었기에 바람도 필수 있었던거겠지"
마치 아이를 달래는듯한 내 목소리가 맑게 울리고 있었다.
"아냐. 거짓말이지? 당신이 바람피울리 없어. 나한테 일부러 그러는거지? 나 열받으라고. 그렇지?"
고개까지 흔들어대며 내 어깨를 붙잡고 남편이 재촉한다.
"생각은 당신 맘대로 해. 어차피 끝까지 정숙한 아내에 대한 기억으로 당신 자존심이라도 지키고싶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 하지만 지금 내 얘기의 핵심은 바람이 아니잖아. 협조해 주길 바래."
남편이 말없이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기더니 밖으로 나간다.
이제부턴 당신 몫일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얼마간의 시간은 허락할것이다. 대화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응해줄 것이다.
그게 10여년 함께 살았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테니.
하지만 나도 살아야한다. 그 시간이 길지않도록 나즈막히 손을 모아본다.

비온 뒤의 땅은 단단히 굳긴한다. 보기 흉하게 이리저리 패이고 갈라진채 단단히 굳어버린다.
갈아엎기도 힘들만큼 굳어버린 땅은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야한다.
떠나야만 새로운 땅을 만날수 있다.

2 Comments
알바니교민 2012.08.03 00:59  
당신의곌단 힘차게 힘차게 지켜 나가길 빌겠읍니다
사오리 2012.08.09 22:20  
뉴질랜드를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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