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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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4 763
<퍼 온 글>

한 기사가 주목을 끌었다. 자신을 초등학교 교사로 자처한 한 일베 회원이 초등생 사진과 함께 ‘로린이들 개귀엽다능’이라는 설명을 적었다고 한다. ‘로린이’는 로리타와 어린이의 합성어로서 여자 아이를 성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언어다. 게시글이 논란이 되자 일베 회원은 자신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쓰레기가 아니’며 이제 일베를 탈퇴하고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반성문을 올렸다. 그런데 반성문을 게재하기 앞서 그가 일베에 ‘또 일베 죽이기네…기분 존나 나쁘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은 거세졌다.

나는 이 일베 회원이 경거망동을 했을지언정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가 정말 자신의 학생들을 로리타로 취급하는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단지 이런 규모의 논란을 예측하지 못했을 뿐이다. 왜? 일베 회원 누구나가 어린이를 ‘로린이’로 부르니까. 그러나 한 번만 돌이켜보면 알아 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행동은 그가 말한 대로, ‘쓰레기’나 할 짓이라는 것을. 이렇게 일베는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상태를 만들어 의도치 않는 이상행동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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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일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방구석에서 일베를 하며 키득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사악한 인종차별주의자, 남성우월주의자, 성적 변태, 군사정권을 찬양하는 변질된 극우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일베 회원들은 그저 놀이로서 누군가를 모욕하고, 패륜적 언사를 일삼는다.

왜 이런 집단이 만들어졌을까? 근본적으로는 ‘소외’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들은 일상의 소외를 벗어나 커다란 집단에 소속됨으로서 소통의 욕구를 해소하고자 한다. 직업과 세대를 막론하고 본인이 소속된 현실 사회에서 실패한 인간관계를 가상의 공간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들은 모르는 말을 함께 쓰면서 느끼는 재미와 동질감, 심지어는 자부심까지 가져다주는, 도피처로서의 일베. 한때 서브컬쳐 커뮤니티와 B급 문화에 심취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의 과흥분 상태를 일부분 이해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 집단은 전라도민 비하, 민주정권에 대한 증오, 인종 차별, 여성 혐오를 그 소재로 지정했다. 왜 하필이면 이러한 성향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운영자의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며, 젊은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보수 매체가 없다는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고(물론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국정원 소속의 댓글 알바들도 열심히 노동했을 것이다. 첨언하건대 나 같으면 내 의견을 수정하기 위해 공권력이 개입했다는 사실 만으로 자존심이 상해서 그곳을 탈퇴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저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일베를 한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얼마나 인생을 재미없게 살았으면 그런 게 다 재밌는지 반문하고 싶기도 하지만 애써 대응해 주자면, 그 주장은 부분에 치우쳐 전체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를 테면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직업여성이 되겠다는 식의 궤변이다. 어떤 활동에 가담한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자신에게 지위와 정체성을 부여한다.

일베 회원들은 두 가지 착각을 하고 있다. 첫째는 그들 스스로가 대단히 참신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슬프게도 일베식 유머 코드가 유행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의 초창기부터 정치적 풍자와 조롱, (도를 넘어 보이는) 패러디는 존재해 왔다. 둘째는 일베에서 내부에서 큰 주목을 받는 것을 일종의 영웅화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한 행동은 그저 한심한 수준의 범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멋있게 보일 만큼 자신의 사고방식이 강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경계했으면 좋겠다.

일베 회원들은 요즈음의 논란을 두고 '탄압'으로 일컫는다. 그들의 말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사적인 집단에 대해 언론이 일종의 매체 권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여론을 뒤흔들만한 거대 커뮤니티의 등장을 경계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베 게시물 하나하나가 기사거리가 되기에 충분히 자극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그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베 회원들 스스로가 자처한 사회적 낙인을 감당할 부담은 그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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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는 말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들은 현재로서도 충분히 불행하다. 마음 한켠에는 일베 회원임을 들킬까봐 두려워하는 (속칭 일밍아웃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것이고, 일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열등감의 표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학력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패배주의가 그들을 너무나도 열등하게 만들었다.

가족 중에 일베인이 있어도 너무 나무라지 마라. 반항 심리로 인해 일베에 대한 충성도가 더 높아질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 스스로 한심한 데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야동에 중독된 남동생이 언젠가는 조류 폴더를 몽땅 shift+delete하는 것처럼.

당신이 어떤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든 간에 큰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통신 세대가 저물고, 채팅의 시대가 가고, 야후가 한국을 떠났듯이 언젠가는 없어질 사이트다. 한번쯤은 광기에 휩싸이는 것도 건전한 의견형성의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일베에서는 이런 진지한 글을 쓰는 사람을 가리켜 '씹선비'라고 부른다. 어떤 조롱의 의도가 담겼는지 가늠은 되나 기분이 나쁘지 않으니 마음껏 조롱하라.

광고성 멘트로 글을 마치겠다. '좋아요'를 누르는 지인들은 일베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것이고, 일베인의 댓글도 정신병적인 수준을 제외하고는 달게 받겠다.
4 Comments
bs 2013.06.06 14:35  
좋은 글 잘 읽었고 공감합니다. 물론 대다수 커뮤니티란 것이 외집단에 대해 배타적이기는 하지만 일베는 앵똘레랑스의 극단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앵똘레랑스에 대응하는 방법은 그래도 똘레랑스일까요? 아니면 앵똘레랑스여야 할까요? 고견 부탁함다.
gnqo 2013.06.06 14:37  
너무 쉽고 착한 대답이지만 똘레랑스요. 역시나 민주주의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으니까요. 실제로 다수의 커뮤니티에서 앵똘레랑스로 대응한 적이 있어요. 디도스 공격으로요. 그런데 잘 막아냈죠. 결과로 봤을 때도 건드리면 커지기만 할 것 같아요. 일단은 공권력의 개입을 철저하게 막는게 우선이 되어야 하고, 그것만 해결이 된다면 우리 사회가 경계해야 할 병적 존재로 하나쯤 남겨둬도 괜찮지 않을까요.
bs 2013.06.06 14:39  
님과 비슷한 생각. 국가에서 나서서 사회악이라고 사이트를 폐쇄하는 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함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 종북딱지 붙이는 것도 동의하진 않지만 역시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5.18 영령들에 대한 모욕은 그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도 사실이지요. 저도 앵똘레랑스에도 똘레랑스를 이라는 기본 기조를 갖고 있기는 한데 이런 부분에 대한 것이 나 아닌 타인의 아픔이라 방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음다.
서우 2013.06.06 14:42  
음 그래도 모욕감을 느낀 주체가 대응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국가나 사회가 단죄하려면 어떤 표현은 허용하고 어떤 표현은 허용하지 않는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필요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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