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죽고 나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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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죽고 나는 산다

dy4784 0 711

                      너는 죽고 나는 산다

                                                


뉴질랜드교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바라보면서, 진정 우리가 무엇 때문에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으며, 인생사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반문하게 된다.

부모형제, 그리고 친구들을 두고 외로운 이역만리 뉴질랜드에서 치열한 삶의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삶의 고뇌와 서글픈 일상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 것이다.


뉴질랜드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영어적인 능력과 이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적 배경을 갖추지 못하여, 교민들에게 맞는 일자리가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이곳의 3D 직업은 만성적으로 인력 부족에 직면해 있다.

주변 현지인들의 공장이나 기업체들은 항상 믿고 신뢰할 직원 고용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한국사람들과는 달리 철저한 개인적인 품성의 검증과 이전 고용 기록을 검토하여, 추천과 사회적인 인맥을 바탕으로 한 보증에 의한 인사 시스템이 이루어 지기 때문에, 이민자는 항상 영어적인 조건과 더불어 부족한 사회적인 배경과 인맥으로 인해 고용이 쉽지 않은 것이다
.


교민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고용의 형태는 양심적인 사업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용주의 입장에서 유리한 부분에서는 한국사람을 강조하고, 불리한 부분에서는 뉴질랜드 법률을 언급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

최저 임금은 철저하게 뉴질랜드의 법률을 강조하면서(이 마저도 지키지 않는 사업주들도 있지만..), 고용주와 피고용주 간에, 이루어진 고용환경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불리한 피고용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중적인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오직 나 자신만 생존하겠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최근에 뉴질랜드의 토착 유통업이 호주자본으로 넘어 가면서, 일부 한인들이 관여하고 있는 청소권이 호주 자본의 연결고리를 가진 호주 측의 청소업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듯 하다.

호주는 이미 교민들 사이에 인간적인 신뢰나 한국인으로써의 동질성은 사라지고, 살벌한 비즈니스 생존 법칙만 존재하는 정글 게임이 지배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호주에서 건너 온 일부 사람들에 의해, 뉴질랜드 교민사회에서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시장을 교란시키고 있음을 느낀다
.


요즈음 청소업과 관련하여 가끔 한인들을 고용하는 리쿠리팅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지인과 밤새 통음을 하면서, 요즘 청소업의 실태와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전의 계약 조건이 후퇴하여, 열악한 조건으로 원청과 청소 계약이 이루어지고, 예를 들면 이전100%의 계약이 70-80%의 선에서 이루어 지고, 줄어든 사업주의 이익은 고용인원 감축을 통해 또한 정해진 시간보다 초과할 수 밖에 없는 노동량을 부가하여, 피고용인이 시간적 부담을 책임질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신종 기법의 고용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비즈니스라는 것은 끊임없는 이윤 창조를 전제로 존립하는 것이기에, 이것도 하나의 시스템 관리 방식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우리는 본질적으로 비즈니스의 목적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존엄한 인간적 존재이다.

조그만 가시로 인해 내 손가락이 아프면, 저 아프리카 땅의 한 인간도 아픈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것은 상생의 법칙이 아니면, 그런 비즈니스는 결코 장시간의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워킹 할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입국하는 청년들로 인해, 사실 이곳에 사는 교민들이 고용구조에 있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넘쳐나는 청년 인력을 이용하여, 정상적인 노동 시스템을 파괴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하는 나쁜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

주어야 할 임금은 항상 뉴질랜드 최저 임금을 이야기하고, 노동의 조건은 한국적인 방식을 적용하고자 하는 것 같다.

최소한 고용은 법적인 관계 형성을 전제로 수립되는 것이지만, 이면에는 보다 인간적인 관계 구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

어차피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부지기수이기에, 아니면 말고, 막장씩의 비즈니스 운용은 결코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는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자각하기를 바란다.

직원이라는 조건이 단순한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인간적인 지원과 격려를 전제할 때, 더 높은 생산성이 발현되고 주인의식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

잠자리는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식사는 불편함이 없는지를 먼저 배려하고, 높은 노동 생산력을 요구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상생이다.

시간당 얼마를 주기로 했으니, 고용인이 할 수 있는 배려는 다 끝났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그들도 존엄한 인간이며 나아가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일 수도 있다.
더 높은 주인 의식과 생산성을 원한다면 먼저 배려를 하고 독려한 후에, 냉혹한 비즈니스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

나쁜 소문은 결국 비즈니스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고, 주인의식을 전제로 한 아이디어나 책임감이 생성될 수가 없을 것이다.

결국은 서로 파국으로 치닫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느껴야 할 것이다. 고용은 시간당 페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피고용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환경까지 배려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높은 생산성으로 연결되고 결국은 더 큰 파이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

더 큰 파이를 만들어 더 가질 생각은 하지 않고, 작은 파이에서 내 것만 찾으려고 하는 것은 큰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없음과 함께 몰락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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