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와 목회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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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와 목회자의 길

한인철 0 615

                            역사적 예수와 목회자의 길 
 
     ~ 역사적 예수를 따르는 부담스러운 목회, 그러나 이제는 고민해야 할 때  ~
  

                                                                        한인철    ·연세대  교목실장


니케아회의 이전이 예수라는 한 인간이 그리스도가 되는 과정이었다면 회의 이후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시소게임이 이어지던 때였다.

신앙의 기초에는 역사적 예수의 관점에서 예수의 길을 따라 그 길을 가는 방식이 하나 있고, 신앙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고 구원 받아 천당 가는 것이다.


어디에 기독교의 기초를 놓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과연 예수가 본래 의도했던 것, 목회자가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은 어떤 길일까?


4세기 초반 알렉산드리아에서 예수의 지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체제를 통일한 후에 정신적 통합을 위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였다. 그리고 니케아 회의에서의 논쟁을 보고 이 문제를 통일적으로 해결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로비가 있었고 황제는 로비에 넘어가 회의장소를 니케아로 변경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의 입장을 세우기 위해 권력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예수는 신, 하나님 자신으로 등극하였다. 즉 예수가 하나님이 된 사건은 정치적인 개입을 통해서였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이 교리가 정통이 되었다. 이후 이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항상 소수자였고 이단으로 정죄 받기에 이르렀다. 이 교리로 인해 우리가 예수의 길을 따를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역사에서  '역사적 예수' 를 연구하기 위한 노력이 세 차례 있었다.

계몽적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 19세기에 이르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예수에 관한 전기가 300여권 가까이 나왔는데 결국 역사적 예수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기간 동안의 연구는 예수가 살아있는 동안 인간 안에 감춰진 완벽한 도덕성을 살아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1960년대에 불트만 학파를 통해 다시 역사적 예수 연구가 시도되었다. 이 시기에는
 " 아무리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사도전승이 중요하다해도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된 저변에 예수의 삶의 과정이 갖는 의미를 모른 채 하는 고백은 가현설에 빠질 수 있다" 
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후 1982년부터 시작된  ' 역사적 예수세미나 ' 가 역사적 예수 3기를 열게 된다. 이 때에는 예수의 삶의 비전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핵심이다.

 3기에 걸친 역사적 예수연구의 공통점은 역사적 예수에 기독교의 기초를 놓아야만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는데 있다. 이것이 예수가 제자들에게 원했던 길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의 주류는 신앙의 그리스도(하나님)를 기초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1)목회자, 2)평신도, 3)신학자, 4)정치인들의 합작이다.


1)신앙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선 목회자는 자신이 예수를 따라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롭게 된다. 신학교육을 하다보면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은 좋지만 예수처럼 살아야 하는 부담감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신앙의 그리스도는 이런 부담감을 자연스럽게 해소해준다. 또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역사적 예수를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그룹은 목회자들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목회자가 큰 교회의 부자들 앞에서 설교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큰 교회의 경우 신앙의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정부의 협조도 받기 쉽다.


2)평신도의 경우, 신앙의 그리스도로 가야 목회자가 평신도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평신도는 목회자에게 ‘목사는 목회나 열심히 하라, 사업은 내가 한다’고 말한다.


3)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는 결론을 내버린다.


4)정부는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같이 역사적 예수를 추종하는 그룹보다는 예수 믿고 천당에 가라고 가르치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이들에게 관대하다. 왜냐하면 역사적 예수는 정치적으로 반항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는 믿되 예수처럼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 현재 기독교의 현실이다.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살아야 한다. 역사적 예수의 함의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이 길을 알리고 이 길을 가자고 권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를 신뢰하고 함께 나서자고 해야 한다. 이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평신도들도 많이 알고 있고 또 역사적 예수의 길을 따르는 교회를 찾는 교인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예수를 기초로 놓고 목회를 할 때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 길은 국가권력과 충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감수해야 한다. 니케아 회의를 통해 예수가 신으로 높여지는 과정에서 황제의 역할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예수목회가 목회자가 가야할, 피할 수 없는 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이 길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이 길을 우리가 가야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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