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이 법안도 읽어보지 않고 표결하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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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이 법안도 읽어보지 않고 표결하는 게 문제

윤정주 0 475
                                            윤정주  오마이뉴스  기자


2010년 2월, 국회 본회의로 의결된 연금법 개정안에 191명의 국회의원 중 반대표를 던진 2명 이용경(창조한국당)·조승수(진보신당) 전 의원이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동료 의원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반대표를 던졌을까. 
2013년 1월 11일 이용경 전 의원을 서울 서초역 인근에서 만나 당시 상황을 물었다.


- 대선 전 안철수 후보 캠프에 있었는데 최근 근황은.

"캠프 해단식 이후 방학 기간이라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현재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 2010년 연금법 개정안이 올라온 당시 국회 분위기는 어땠나.

"당시에는 개정안이 별안간 올라왔다. 여야 원내대표들도 큰 일이 아닌 듯 여기는 분위기였고 사전 충분한 논의가 이뤄진 것도 없었다."

-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자료(2월 24일 운영위원장 제안 및 국회 운영위와 법사위 통과 후 2월 25일 본회의 의결)를 보면 빠르게 개정안이 통과됐다. 당시 의원 중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나.

"개정안이 갑작스럽게 올라와서 그런지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 국회의원 연금법이 특권을 더해가면서 개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나. 

"당시에는 법안에 대해서 잘 몰랐다. 사실 그 전까지 헌정회 육성법이 존재하는지 여부도 몰랐다."


연금법 반대표 던진 이유 "과정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


- 그럼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인가.

"과정이 탐탁지 않았다. 자료를 한 번 쭉 읽어봤는데 충분한 논의도 없이 찬성표를 던져 통과시키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쉽게 반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배 국회의원들 연금 주는 것을 분위기 상 반대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 당시 개정안이 통과될 때는 정작 조용히 넘어갔다가 2010년 8월에 이슈가 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정작 표결 당시에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인이 됐다."

- 예산결산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는데, 예결위에서 결산 시 실제 연금을 지급받는 전직 의원들의 명단을 확인하는가.

"명단 하나하나를 살펴본 적은 없다. 자료를 먼저 요구하기 전에 그 정도까지 자세한 정보가 넘어 오진 않는다."

- 국회의원 연금법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제도의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재직 당시 일부 금액을 내는 등 방식을 개선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국민들, 국회 자료에 관심 두고 투표해야"


- 연금법과 같은 문제가 터지면서 국민이 중심 된 의정감시 단체나 기구를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도 국회에서 일어나는 의원들 발언이나 표결 등 모든 기록들은 국민들이 볼 수 있다.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선거에서 국민들이 판단을 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말로는 국회의원들의 쇄신을 외치면서 국민투표는 반대로 하고 있다."

- 연금법 외에도 국회의원 겸직금지·정수 축소 등 말들이 많다.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 허용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감시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행정부 소속으로 있다면 기본적인 감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정수는 축소보다 사회가 전문화되고 이에 따라 각 분야의 전문적인 국회의원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례대표 비율을 늘리는 식으로 개선되면 좋겠다."

- 연금법 논란이 계속되고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라 보는가.

"어떤 법안을 통과시킬 때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또한 국회의 기본 임무는 감시자의 역할이다.
정부가 일을 잘하는지 국회에서 여당은 여당 나름대로, 야당은 야당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감시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시작부터 내려온 관행 탓을 하며 여당은 정부를 감싸고 야당은 비판하는 형태다.
어찌됐든 국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이다. 
이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때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국회의원 연금법보다 더 큰 문제는 '날치기식 법안 통과'


인터뷰를 요청하기 전 이 전 의원이 당시 연금법 문제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반대표를 던졌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국회의원으로서 소신을 가지고 표결에 임했다. 
그는 인터뷰 막바지 국회의원 연금법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언급했다. 

"충분한 논의도 없이 법안의 자세한 내용도 모르고 표결이 이뤄지는 한국 국회의 슬픈 현실"에 대한 지적이었다.

이 전 의원은 "법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표결에 임하기 때문에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문제가 되는 국회의원 연금법 개정안이 만장일치 수준으로 통과됐을 것"이라 말했다.
반대로 말해 현재 논란되고 있는 사항을 당시 국회의원들도 알았다면 다수가 반대표를 던졌을 거란 얘기로도 들린다.

이는 연금법 자체보다 더욱 심각한 현실의 문제다. 
국민들은 모든 법안의 표결이 이뤄질 때 자신을 대신한 국회의원이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마치고 국민의 입장에서 의사를 표시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일부 법안은 국회의원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이 표결에 부쳐져 당론이나 분위기에 맞춰 날치기식으로 통과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는 현 국회법이 가진 모순을 그 이유로 지적했다. 
현행 국회법 제59조 의안상정 시기, 제93조의2 법률안의 본회의 상정시기를 살펴보면 안건이 상정될 때까지 필요한 시간이 나와 있다.
각 위원회에서 의안이 심사를 거친 뒤 나오면 국회의원들이 최소한 하루 정도는 이를 검토하고 표결에 임해야 한다.


국회법 예외규정, 국민 불신만 키운다


하지만 문제는 각 조항의 예외 규정이 일상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제59조에는 '다만,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로 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93조에는 '의장이 특별한 사유로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의 협의를 거쳐 이를 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예외 규정이 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의 말에 따르면 다반사로 이 규정이 적용됐다는 것. 
이 예외 규정을 통하면, 본 회의에 나온 국회의원들이 안건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표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24시간이라도 좋으니 검토할 시간만 주면 몇 건의 안건이라도 밤을 새워 보겠다"고 당시 밝혔다.
국회의원 연금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고 이처럼 날치기식으로 법안이 통과되는 일을 막기 위해 다른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앞서 말한 예외 규정 속 '의장이나 원내대표에 의해 결정되는 특별한 사유'를 '국가안보나 대규모 자연재해와 직결된 경우'로만 정확히 명문화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계류 후 폐기 처리. 
불가피한 사유와 특별한 사유로 법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용을 법안 발의부터 상정까지 시간이 있으니 검토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임위나 법사위에서 법안은 충분히 변경돼 나올 수 있다는 게 함정이다. 
즉 최초 발의된 법안과 표결을 위해 올라온 법안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많은 국민은 본회의에 올라오는 법안이 각 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검토한 뒤 국회의원들에게 보고하고, 의원들은 이를 충분히 검토한 뒤 처리하길 바랄 것이다.
물론 국민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래야 하루에 100건 넘는 안건을 처리해도 상식이 통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현 국회법은 국회의원들에게 법안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있다. 
이것이 국회의원 연금법을 여기까지 오게 한 근본 원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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