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남자들’을 위한 완벽한 로망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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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남자들’을 위한 완벽한 로망 백서

영화광 0 2247
늙은 남자들’을 위한 완벽한 로망 백서

어느 날 빌리가 전화를 한다. 아치와 샘에게다. 전화기 너머가 왁자한 게 어째 이상하다.
빌리는 말한다.
어이 친구들 내게 놀러와.

친구들은 말한다.
어디 물 좋은 데 있는 거야? 그럼 당근 가야지.

빌리가 속삭이듯 답한다.
여기는 말야 라스베가스라구 라스베가스. 근데 나 말이야. 놀라지마 곧 결혼해. 그러니까 총각파티하러 건너들 오란 말야.

친구들은 널부러져 있던 침대에서 벌딱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한다. 아니 집에서 도망나오기 시작한다. 빌리는 또 다른 친구 패디에게 전화를 할 때는 좀 망설인다. 그가 자신에게 조금 삐쳐있기 때문이다. 빌리는 조심스럽게 패디에게도 자신의 결혼식 들러리가 되어 주기를 청한다.

자, 이제 사총사가 모일 일만 남았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영원한 무덤으로 들어가기 전에 남자들끼리, 가슴이 풍만한 콜걸들을 불러다 실컷 부어라 마셔라 할 일만 남았다.
야호 신나라.

언뜻 들으면 2,30대 젊은 남자들 얘기처럼 들린다. 브래들리 쿠퍼가 나왔던 [행 오버] 시리즈의 하나쯤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이다. 이들은 60대 노인들이다. 어딜 가면 나 이제 막 60 됐을 뿐이야, 라며 느물댈 60대 후반 아저씨들이다. 이들 중에 한명인 빌리(마이클 더글러스)가 뒤늦게 장가를 가려고 한다. 결혼을 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끝물이다. 이들 나이에 ‘영계’들에게 둘러싸여 실컷 한번 놀아보자는 것, 뭐 그리 용서 못 할 일도 아니다.

일단 빌리를 비롯해 아치(모건 프리먼)와 샘(캘빈 클라인) 등은 도덕적으로 전혀 동요를 하지 않는다. 다만 패디(로버트 드 니로)가 문제다. 패디는 젊었을 때부터 늘 문제였다. 불만투성이의 회색분자다. 빌리와는 늘 투닥투닥댔다. 특히 여자 문제로 그랬다. 둘 사이에서 고민하던 여자는 결국 패디의 아내가 됐다. 패디가 현재 빌리에게 매우 화가 나 있는 이유는 아내의 장례식에 그가 오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패디는 빌리에게 말한다. “(그렇게 사랑했다던) 네가 오지 않아서 내 아내가 얼마나 슬퍼했겠냐, 이 나쁜 놈아!” 하지만 패디는 모른다. 빌리의 진짜 마음을. 그리고 그 세 사람 사이를 위해 빌리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를.

패디의 ‘땡강’과 아치의 심장, 샘의 전립선 등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들이 라스베가스에서 지내는 며칠은 한 마디로 꿈의 낙원이다. 심지어 이들 넷은 우연찮게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이 마련한 비키니 콘테스트의 심사위원이 되기까지 한다. 오 상상은 여기서 그만. 이들 늙은이 네 명은 연신 흘러내리는 침을 닦느라 바쁘다. 그럴 수도 없을 지경이다. 입을 다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슴이 산 봉우리 만하고 어리게 생긴 여자일수록 자꾸 이들에게 접근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우, 당신을 보니 아빠가 생각나네요.” “아이 참, 나는 늙은 남자가 좋더라.” “아빠! 돈이 참 많은 사람인가 봐요.” 당연히 와장창 온갖 소동이 다 벌어진다. 아치와 샘은 십 수년 만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원형 침대 위에서 세상이 빙빙 돌아가는 ‘숙취의 참 맛’을 다시 겪기도 한다. 그 와중에 빌리와 패디는 호텔 인근 재즈바의 중년 여가수 다이아나(메리 스틴버그)를 두고 은근히 사랑 고백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빌리의 젊은 신부는 어쩌고? 이들 사총사의 이야기는 점점 요지경 속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영화가 유쾌하고 즐거워야 하는 게 의무사항이라면 [라스트 베가스]는 그 복무규정을 초과 달성한 작품이다. 시종일관 터지는 웃음, 낄낄댐,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음탕함이 곳곳에서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건 ‘늙은 남자들’을 위한 완벽한 로망 백서와 같은 작품이다. 심장병과 당뇨, 혈압, 전립선 등등으로 이제 인생 끝장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인생들이라면 적어도 죽기 전에 한번쯤은 라스베가스에서 돈을 펑펑 써대며 비키니 여성들에게 입맞춤 세례를 받고 싶을 것이다. 뭐 좀 어떤가. 꿈인데. 이 영화도 꿈인데. 영화 자체가 꿈인데.

그렇게 막 생각없이 웃다 보면 기가 막히게도 자신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스크린 속에서 60대들이 소동극을 벌이는 모습이 어느 시점부터는 그렇게 측은해 보일 수가 없다. 인생은 저렇게 휘리릭 가는 것이다. 저렇게 한 번은 신나게 놀 권리가 있는 것임을 우리는 언제나 늘 잊고 살아간다.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마음이 아프고 내 자신의 초상이 투영이 돼서 또 마음이 쓰리다. 세상은 자꾸 늙어가고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세월을 스쳐 보낼 뿐이다. [라스트 베가스]는 겉으로는 아주 신나는 척 하는 작품이지만 작금의 고령화 사회에 대해 우회적으로, 그리고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는 영화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어떤 것이냐 하면, 바로 같이 놀아주는 것이다. 한바탕 신나게 놀아주는 것이다. 징징거리지 않고.

마이클 더글러스가 그래도 가장 잘 생겼다, 고 말하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사람들마다 이 네 명의 ‘꽃보다 할배’를 보는 기준이 제 각각일 것이다. 빌리와 패디가 또 다시 티격태격하는 대상, 다이아나 역의 메리 스틴버그의 모습을 보고 큰 소리를 지를 뻔 했다. 한때 미국 최고의 외모를 갖춘 성격 연기자였다. 이제 60의 여성이 됐다. 이 영화를 만든 존 터틀타웁은 천성이 착한 모양이다. 찍는 영화마다 선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쿨러닝] [당신이 잠든 사이에] [페노메논] [내셔널 트레져] 등이 그렇다. 일관성이 있어 좋다. [라스트베가스]는 그 정점에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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