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침몰한 하나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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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침몰한 하나의 사건..

토마토 0 1131

이 땅엔 국난이 발생하면 지도자가 민초를 버려두고 도망가거나 어디론가 숨어드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으로 몽고 침략 때 강화도로 도망쳐 수십년 동안 국토와 민초가 유린당하게 내버려둔 최씨 정권이 그랬고, 경고를 무시하다 벌어진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가, 허영과 허세를 떨다 일어난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숨어든 인조가 그랬다. 그 유구한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져 6.25 전쟁 때 서울시민을 안심시킨 뒤 피난민이 건너고 있는 한강 인도교를 사람들과 함께 폭파시키고 자신만 대전으로, 부산으로 내뺀 이승만이 그랬다. 내빼는 것은 늘 지도층, 권력층이었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수난해야 했던 것은 민초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은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왔고, 나는 그들이 살아남은 민초들을 심판했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민초의 고통에 대해 어떤 책임을 다했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유구한 전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 비열한 전통 따위는 진작 대가 끊겼으면 좋았을 것을. 서울을 떠나는 차 안에서 이승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남겨놓고 떠난 서울시민들을 생각하며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흘렸을까. 그랬다면 서울시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다리를 건너던 피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서울로 돌아와 사과를 거부하고 오히려 잔류시민들의 북한 협조 여부를 수사하게 했을까.


전쟁을 일으킨 것이 북한이라고 자국민을 고통에 빠뜨린 이승만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듯이, 유병언이 죽었다고, 선장이 살인죄로 기소되었다고 이 땅의 지도자와 권력자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유병언과 선장의 잘못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해경과 그 지휘계통과 국가 안전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마찬가지로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고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소해야하며, 법적 책임이 없다하더라도 마땅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마땅함을 다하게 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총체적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왜 국가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방조했는지, 사고가 일어난 이후에 국민을 구하지 못했는지, 그것이 누구와 무엇의 책임인지를 특정하는 것, 그리고 다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무엇을 뜯어고쳐야 하는지, 그것을 밝히기 위해 세월호 진상조사위가 출범한 것인데 정부는 그것을 지금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시행령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에게 캡사이신을 뿌리고 있다.


나는 내일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어떤 지도자에게서 고려의 최씨 정권을, 임진왜란의 선조를, 병자호란의 인조를, 6.25 전쟁의 이승만을 본다. 몽고가, 일본이, 여진이, 북한이 침략했다는 사실이 지도자의 책임을 면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고를 수습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가가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런 국가는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가. 국가시스템이 단 한 차례의 퇴선명령만 내릴 수 있게 작동했다 하더라도 막았을 대참사가 일어난지 꼭 1년이 되는 날에, 그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이 땅을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는 이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65년 전 우리 국민들은 하나의 다리가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국가의 폭파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국민을 지키는 국가의 침몰을, 그리고 그 침몰하는 배에서 유유히 퇴선하는 누군가를 보고 있다. 이것을 그저 배 한 척이 사고로 침몰한 하나의 사고로 규정하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을 알지만, 명백하게 세월호는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가 침몰한 하나의 사건이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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