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단상(斷想), 본다이(Bondi)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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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단상(斷想), 본다이(Bondi) 해변에서

오문회 0 1550


지난 11월 초 호주의 시드니에 갔었습니다.시드니에는 많이 갔었지만 11월 초에 있는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꼭 자기와 같이 지내야 한다고 시드니에 살고 있는 작은 딸이 초대를 하기에 아내의 왼 쪽 손이 아직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다시 갔습니다.


두 딸 중에 큰 딸은 일찌감치 결혼해서 나름대로 서울에서 잘 살고 있기에 걱정이 없지만 아직 결혼을 안 한 작은 딸은 좋은 직장에 혼자서 잘 살고 있다고 걱정 말라고 하지만 부모 마음에는 항상 가슴 한 귀퉁이가 아립니다.아빠 엄마 왔다고 좋아서 입이 싱글벙글하며 그 바쁜 중에도 있는 힘을 다해서 뭐 하나라도 더해주고 더 보여주고 더 사주려고 애쓰는 딸의 모습은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우리 눈에는 초등학교 시절의 귀엽기만 한 어린 아이였습니다.


56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매주 이곳에서 진행하는 화요음악회가 있기에 웬만한 여행은 꼭 수요일에 떠나서 월요일에 돌아오도록 여정을 짭니다) 하루하루를 참으로 알차게 보냈습니다. 목요일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었는데 그날 저녁은 딸이 한 달 전에 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에서 두 시간에 걸친 코스 요리를 먹었고 금요일 저녁에는 딸이 아빠가 좋아한다고 미리 예약해 놓은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발레 공연을 보았습니다. 발레도 좋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서 나왔을 때 오페라 하우스 통 유리를 통해 비쳐 들어 오던 두둥실 보름달의 달빛과 곧 창을 타고 넘쳐 들어올 것만 같던 밤바다의 물결, 그걸 보면서 무언가 속삭이던 딸과 엄마의 다정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어른거립니다.


토요일 오전 딸 아이는 우리를 데리고 시드니의 유명한 해수욕장인 본다이 비치(Bondi Beach)로 갔습니다. 본다이 해변가에서 열리고 있는 야외조각 전시회를 보고 본다이 해변에 있는 맛있기로 소문난 RSA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그날의 일정이었습니다. 다행히 날씨까지 좋아서 딸 아이와 같이 한 그날의 본다이 비치 나들이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마침 카메라를 메고 나갔기에 눈에 들어오는 대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사진 찍는 순간 무언가를 생각나게 하던 사진 3장을 골라 그 때의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본다이(Bondi) 해변 야외 조각전시회


이곳 오클랜드 내가 사는 데본포트 가까운 내로우넥(Narrowneck) 해변에서도 해마다 야외 조각전시회가 열린다. 그곳에 거의 해마다 가보기에 해변의 야외 조각전시회는 내게 그리 신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본다이 해변에서의 조각전은 훨씬 규모가 크고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특히 눈에 뜨인 것이 청동으로 만든 이상한 얼굴의 아이였다.


청동의 아이를 보며, 본다이 해변 야외 조각전에서

 청동의 아이를 보며


본다이 해변 야외 조각전시회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이 하나가

막 바다에서 나와 뭍에 올라온 듯

호기심에 가득 차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할까?

저와 비슷하기는 해도

결코 같지는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지나가는 사람들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상하게 생긴 아이를 보면서

웃고 떠들지만


막 바다에서 나온 청동의 아이는

처음 보는 세상 풍경에

지나는 사람들의 부산한 몸짓에

너무 놀라

눈 코 입 한데 뭉쳐져

수직으로 벌어졌다


본다이(Bondi) 해변의 RSA 레스토랑에서


조각전시회를 본 뒤 걸어서 RSA 레스토랑으로 갔다. 오클랜드의 브라운스 베이(Browns Bay)에 있는 RSA 레스토랑에서 몇 번 식사를 해본 경험이 있기에 그 정도 수준이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바다를 접한 위치와 고급스러운 시설에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가장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행운까지 따라서 딸 아이와 같이 하는 점심이 한결 더 흥겨워졌다. 포도주 한 병을 시켜 놓고 음식을 기다리다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포도주의 꿈, 본다이 해변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포도주의 꿈, 본다이 해변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내 지금 쿨러 안에 담겨 있지만

바다에 담겨 있는 너희들아

너희들을 내려다보며

내가 꾸는 꿈을 아는가


곧 나를 마셔줄 누군가의 몸을 통해

나는 곧 바다에 이를 것이다

너희들은 백 년 바다에 있어도 바다가 되지 못하지만

나는 바다에 이르면 곧 바다가 된단다


바다가 되면 내리쬐는 햇살과 희롱하다

난 하늘로 올라 흰 구름도 되고

게서 실컷 놀다 때 되면 비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와 곳곳을 돌아다니다


내 태어난 푸른 포도원에 이르면

날 반겨주는 친구들의 품 속으로 들어가

한 계절 햇볕과 바람과 놀다 보면

난 다시 포도가 되고 포도주가 된단다


내 지금 비록 쿨러 안에 담겨있지만

곧 나를 마셔줄 누군가야

너로 인해 나의 꿈이 이루어지니

나는 꿈에 취해 네 몸 안으로 들어간단다


저자  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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