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끝이 없다구?

손바닥소설

뒤 끝이 없다구?

오문회 0 1985


어느 날 사제가 ‘분노’에 대해서 강론을 하였다. 현실적이면서도 공감이 닿는 이야기였다. 미사가 끝나자 한 자매가 사제 앞으로 가만히 다가갔다. 자기도 성질이 급해서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다소곳이 사제에게 고백했다.

 “신부님! 저는 작은 일에 가끔 폭발하지만, 그러고 나선 뒤 끝이 없어요. 금방 풀어 버리거든요. 마음에 두고 꿍하고 있지 않아요. 1분도 안되어 그 사람과 자리에서 다 툭툭 털어버리고 끝나거든요.” 사제가 그 자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정중하게 말하였다.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 방이면 끝나지요. 오래 안 걸립니다. 그러나 한 방만 쏘아도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모두 박살 나지요.”

 부부로 살면서 필요한 대화가 참 많은데, 때론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섣불리 말했다간 엽총 맞았다고 속으로 멍든 가슴을 쥐어 잡고 말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대화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대화는 대놓고 화내는 것’의 약자라고 한다. 그냥 웃으며 지나칠 일 만도 아닌 공감이 가는 말이다. 부부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서로가 다른 기질을 머리로 이해는 한다 하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좌충우돌 부딪치곤 한다.

 시대가 많이도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남편이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고 아파도 제대로 여건을 마련해 주진 못한 가족들 생각에 얘기도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큰 병으로 쓰러지면 주변에선 그것을 미덕으로 여기기도 했다. 혼자 가슴에 안고 산화하는 희생정신의 용사처럼 아날로그 시대에는 혼자 그렇게 애쓰면 됐던 환경이었다. 혼자 일해도 먹고 살았으니까, 그렇게 혼자 밀어 붙이는 대화였다. 

그러나 요즘 디지털 시대에는 혼자 일 해선 안되고 함께 일 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의 건강과 아픔을 가족들이 함께 알아야 서로 힘을 모을 수 있고 하나 될 수 있다.

 요즘 이곳 뉴질랜드 아내들도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으로라도 대부분 일을 한다. 아이들도 저마다의 일들로 바쁘다. 디지털 시대에는 서로 속을 터 놓는 소통이 필요한 시대다. 대화를 해야 서로를 아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자주 자신이 어떤 일로 힘들고 어려운지, 어떤 일이 한계인지 서로 얘기를 나눠야 한다. 좋은 대화 훈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대화 소통을 통해 더욱 부부와 가족 소속감을 느낄 수 있으니 함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내 남편은 어떤 기질일까? 내 아내는 어떤 기질일까? 기질은 이해과목이 아니라 암기과목이라고 한다. 딱 부딪치면 그 유형에 맞게 적용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즉각 대응 행동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부에게 해당되는 내향형과 외향형의 부부를 보면 새겨 볼 것이 많다. 우리 부부는 외부 다른 사람과 견줘보면 둘 다 내향형인 편이다. 둘이 서로 비교해 보면 내 쪽이 외향형인 반면 아내쪽이 내향형인 편이다. 

 내향형과 외향형의 가장 큰 차이는 에너지 용량의 차이다. 내향형은 자신의 경계선( Boundary)을 가지고 있어서 그 경계선 밖을 나가면 힘들어 한다. 다른 사람이 그 경계선을 넘어 들어와도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외향형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 경계선이 없는 편이다. 경계선이 있으면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싶고, 그곳에 못 들어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의 집에 가면 쉽사리 아무 방에나 들어가 보고 냉장고도 열어보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다. 반면에 내향형은 항상 조심하고 미리 물어본다. 내향형은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경계선을 넘어 들어오는 외향형을 예의없는 사람으로 본다. 

 내향형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편이어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문제에 부딪히면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고 만다. 외향형은 바깥 세계와 접촉을 중요시한다. 당연히 행동하고 대화하면서 지식을 습득하곤 한다. 내향형에게 내향형의 생활 방식이 있다면 외향형도 외향형 나름의 생활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나와 다르다고 상대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일 뿐이다. 내 방식에 맞춰 보려 말고 ‘저 사람은 저러려니…… .’하고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뒤 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내 입장을 주장하기에 앞서, 그게 혹여 상대에게 엽총(?)은 아닌지 한번쯤 헤아려보는 마음도 필요할 듯싶다.

저자 :지금여기

# 참조 : 이 글은 ME ( Marriage Encounter.부부 생활대화모임)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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