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세탁기

손바닥소설

구름세탁기

오문회 0 1801
가끔 거실에 누워 하늘 산보할 때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들 만날 때 있지

갑자기 들려오는 우레에,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리면

잔뜩 찌푸린 채 입 불거진 구름가족들

불현듯 세탁기 돌리고 싶지



언젠가 남편이 끌고 온 안개를 넣고 세탁기 돌린 적 있어

걸-그룹 노래가 꾸역꾸역 돌아가더니

거품 가득한 여자의 웃음소리 콸콸 쏟아져 나왔지

때론 밤늦게 들어온 아이의 바지가

세탁조 둥근 모서리 짚으며

밤새 비-보이를 공연하기도 했어

그럴 때면 구름 한 채씩 받아먹은 세탁기

수평 놓치고 온몸으로 경련했지

수평을 맞춘다는 건, 자신을 착착 접어

들뜬 틈새에 밀어 넣는 일이지

뚜껑 열고 마구 엉킨 구름들 풀어놓다보면

뜬구름 몇 장 껴 있기도 했어

새털구름처럼 나달나달해진 그것들 끄집어내면

집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 돌아갔지

미처 헹궈지지 않은 불안과 의혹 밀어 넣고

몇 번씩 눌러지던 헹굼 추가 버튼



구름의 속성은 쉽게 물기를 모은다는 것

번번이 눅눅해지곤 하지

  저자 홍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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