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옥 칼럼; 아버지

손바닥소설

유종옥 칼럼; 아버지

일요시사 0 1609
금세기 들어 불쌍하게 말라가는 아버지의 위상에 저항감도 든다.

13년전 한국의 박영사 출판사가 필자의 칼럼을 책자로 펴내 출판한  ‘남십자성 아래서’ 1편의 칼럼에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 ‘아버지’ 글을 60의 나이를 넘은 지금 다시 한번 읽어보고 교민들에게 펼쳐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펜을 들었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는 나한테 이거 문제 있는 것 아냐?”하고 마누라에게 용기를 내서 한마디 불만을 이야기하면 대번에 다섯 마디 이상의 마누라 따발총 공격을 받고 아버지는 쓰러진다.
“내가 나가서 돈 벌어 올 테니까 당신이 집안에서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구 쓰레기 치우고, 애들 교육시켜요. 주부들이 집안에서 하루 걷는 거리는 평균 4-5Km라는 소리도 못 들어 봤나요. 집안 일이 편한 줄 아나 봐... 나두 집안 일 잊고 밖에 나가서 돈 벌면서 놀 구 싶어요...”
“뭐 그럼 내가 놀러 다니냐? 됐다 됐어” 
“반말하지 말아….요...”
“으이그..  x발.....”
자식들도 그저 “엄마”만 아는 것 같다.  심술통 여인에게 발로 채여 매맞고 마루 밑에 움크린 강아지처럼 눈만 껌벅이는 아버지가 때로는 불쌍하다. 

옛말에 여필종부(女必從夫)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말이 있다던데, 시대가 변하니 옛말도 남녀가 바뀌어 남필종부(男必從婦) 여존남비(女尊男卑)라로 확 바뀐 것 같다. 세상이 뒤집혔나.. 하긴 칠거지악(七去之惡)의 내용도 모르는 무지한 현대여성들이니까... 남자가 참아야지... 
그래서인지 한국은 아직도 아버지 날이 없다. 그저 마지 못해 5월8일 어머니 날에 얹혀 쇤다. 

1997년 6월15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지면을 아끼지 않고 6월15일 아버지 날에 치뤄 진 조나단씨의 추도식을 대서 특필했다. 
흑인 빈민촌의 한 학교에서 백인 조나단씨의 추도식에 수 백명의 흑인 아버지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관속에 누운 조나단씨의 사체를 부여잡고 ‘아버지’를 부르면서 애통해 하는 모습이 TV 화면과 신문 지상 화보로 크게 보도되었다. 언론은 “미국에서 아버지 날이 제정된 이래 가장 뜻있는 아버지 날이다”고 논평했다. 
미국 굴지의 재벌 2세로서 청년기를 보낸 조나단씨. 
그는 어느 날 빈부의 차이로 인한 사회의 혼란과 특히 이로 인한 청소년들의 갈등에 커다란 느낌을 받고 야밤 도주식으로 저택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한 곳이 흑인들이 사는 뉴욕 뒷골목 빈민촌.
폭행과 절도, 강도 등 범죄율이 높은 이곳에서 조나단은 우여곡절의 갖은 수난을 당하면서도 못된 흑인들을 인간애로 감싸 안으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했다. 흑인 청소년들의 탈선 원인은 가정의 불화와 교육의 부재이며 정부 측의 따뜻한 배려와 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정책 부재라는 점을 깨달은 조나단은, 우선 가난한 흑인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의 교육을 자청했다.
조나단은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학생들의 교사가 아닌 아버지가 되리라’는 결심을 한다. 아버지의 역할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분신이고 아들․딸이라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허물지 않기로 하나님께 맹세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개의치 말고 위선적인 마음을 죄악시하며 행동으로 아버지 노릇을 하게 해달라고 하루 세 번 이상 기도했다. 결식 학생들에게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여주고, 아픈 학생에게는 집에까지 찾아가서 이부자리를 직접 펴주며 밤새 간호하였고, 병원비를 부담하는가 하면 자신의 피까지 헌혈하는 아비의 정을 듬뿍 주었다. 학생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고 미국 사회에서 알아주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뒷 골목에서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교내로 불러들여 농구팀을 구성했다. 오하이오에서 개최되는 전국 중학교 농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비행기표 값을 구하기 위해 정부기관 및 사업가들을 설득해서 모금을 했고, 비록 1등은 못했지만 전국 10위권 내의 명문학교 학생들로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술주정뱅이 학생 아버지와 결투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이들의 직장 알선에도 앞장섰고,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정부 기관을 방문하여 빈민가내에 의류 가공 공장 유치 협조를 당부하면서, 주민들에게는 외면 받는 동네가 되지 말고 사랑 받는 동네가 되도록 바르고 부지런하게 생활하자라는 식의 캠페인도 벌렸다.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나단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흑인 아버지들은 자기가 못 다한 아버지 노릇을 다했던 분이라며 이들도 조나단을 “Father"로 불렀다. 조나단은 삶의 보람을 찾고 이곳 모든 이의 아버지로 바른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뜻하지 않은 총기 사고로 피살된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어린이 날, 어머니 날, 할아버지 날, 할머니 날이 있고 심지어는 10월 네 번째 일요일을 장모님 날로 정해놓고 가정의 화평을 제도화 했다. 그러나 미국에도 기가 막힌 것은 아버지 날이 없었다. 어머니 날 제정 후 64년 뒤에야 마지못해 아버지 날을 제정했다. 
노약자와 여성인 어머니를 위해 여러 날을 제정했지만 장모님 날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나쁘듯 미국은 장모와 사위 사이가 험해서 사위가 장모님을 위해 존경심을 보이고 화해하라는 의미에서 자모의 날을 정했다. 그런데도 아버지 날은 없다. 

아버지 날에 대한 유례를 보면 이러하다. 
1898년 미국이 어머니 날을 제정한지 2년 뒤의 일이다. 워싱턴 주에 사는 도드 여사는 어머니와 일찍 사별하고 5남매를 역경 속에서 길러낸 아버지 생각을 잊을 수 없어 목사를 설득해서 자신이 다니는 스포칸 교회에서 아버지 날을 정한 것이 미국 아버지 날의 뿌리다. 하지만 당시에 의회는 아버지의 위신에 관한 문제라 하여 국가적인 ‘아버지 날’ 제정의견을 묵살했다. 그 후 윌슨 대통령과 쿨리지 대통령 등 많은 대통령이 이․취임했지만 유야무야 되다가 스포칸 교회에서 아버지 날 예배를 시작한 지 62년만인 닉슨 대통령에 이르러서야 6월 3번째 일요일을 아버지 날로 공식 제정했다. 미국에서도 아버지는 우선 순위 맨 꼴찌인가 보다.

뉴욕 할렘가에서 열린 조나단의 추도식에 모인 흑인들은 ”19세기가 신(神)을 죽인 세기라면, 20세기는 아버지를 죽인 세기“라고 했다. 조나단이 어떻게 아버지 역할을 했으면 이렇듯 미국 전체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가.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은 누가 알아주는 직위도 아니요 힘없고 돈 못 벌어오면 천덕구로기로 마루 밑 강아지 신세가 되기 십상인데, 가정이나 사회의 뿌리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자부심을 갖기 바란다.  남이, 가족이 알아달라는 말도 하지 말라.  진리는 말이 필요없으니까.
 ‘아버지’라는 말은 한 카테고리의 최고 우두머리를 뜻한다. 
정신적 우두머리요, 그 집단을 잘 이끌어 나가야 하는 지도적 우두머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신부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 일 게다. 
우리는 자랑스런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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