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칼럼; 나선형 미학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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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14:30
“아니, 저거 고사리 아냐!”
산길을 오르다 아내의 시선이 길가 숲에 사로잡힌다. 가시덤불 속에 꽤 굵고 튼실한 녀석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이렇게 낯익은 모습을 보니 고향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고국과 계절이 반대인 뉴질랜드의 늦은 봄 11월, 고사리들이 제철을 만난 모양이다.
햇고사리는 봄에 반짝 나물로는 귀한 녀석이다.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아내의 마음에 수긍이 간다. 벌써 아내가 비닐봉지 하나를 챙겨 들고 고사리 꺾기에 나선 상태다. 가시나무 사이로 머리를 디밀고 손을 뻗어 고사리를 하나씩 꺾는다. 가시덤불 아래, 우후죽순처럼 고사리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풋풋하고 실하다. 자연이 준 선물이라도 받는 양 아내 목소리에 흥이 묻어난다.
“당신이 좋아하는 육개장에 넣어 먹으면 봄 맛이 물씬 나겠네.”
먹음직스러운 육개장 한 대접이 눈앞에 선하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피어 오른다. 얼큰한 국물과 고사리 건더기가 일품이다. 벌써 내 빈속이 꽉 찬다. 땀을 훔쳐가며 훌훌 불어먹는 육개장 맛이라니….
생각만 해도 옛 고향 추억이 고사리 맛처럼 쌉쌀하다. 한때, 금이 나오는 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내 고향 금산 골. 그 금쪽보다 더 귀한 고사리 맛과 고향이 그립다. 봄이면 고사리가 지천을 이루었다. 겨울이 봄에 자리를 내어줄 때쯤 어린 고사리 싹들이 하늘하늘 서성거렸다. 맑고 청정한 기운을 듬뿍 머금은 고사리가 산 중턱에 대나무 죽순처럼 하루가 다르게 불쑥불쑥 올라왔다. 비가 온 뒤면 금산 골은 영락없이 고사리 밭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논밭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일하는 곳이었다. 엄마는 커다란 대나무 소쿠리를 들고 고사리를 뜯으러 나섰다. 아버지는 모내기 논갈이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세 살 어린 여동생과 나는 작은 그릇을 하나씩 들고 고사리 싹을 뜯었다. 그릇에 가득 차면 엄마 소쿠리에 부어 담았다. 그때마다 엄마는 잘한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누가 더 잘하나 경쟁이라도 하듯 동생과 나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고사리를 뜯었다.
저녁노을이 물들 무렵, 큰 소쿠리 위로 고사리가 떠오르는 달덩이처럼 풍성하게 올라왔다. 엄마는 가마솥에 넣고 쇠죽 끓이듯 끓였다. 데쳐낸 고사리를 마당 평상에 부으면 동생과 나는 얇게 널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이 넘나들며 고사리를 바짝 말려 주었다. 가슴 한쪽에 어린 시절 추억으로 아련하게 남았다.
고사리가 들어간 요리 가운데 아직도 입에 구미가 도는 것은 짭조름한 조기 탕이다. 그때는 특식이어서 먹을 때마다 입에 감겼다. 어른들은 얼큰한 육개장에 고봉밥을 말아 들었다. 뚝배기 그릇에 고사리 건더기가 먹음직스러웠다. 걸쭉한 들깨 국물로 요리한 고사리나물은 일미였다. 내 고향 고사리는 꿋꿋한 희망을 품고 겨울철 언 땅을 뚫고 봄에 싹을 틔워냈다. 그 신선한 기운은 우리 건강에 좋은 먹거리 나물이 되었다.
남태평양 섬나라, 뉴질랜드에 이민 와 살면서 고사리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 200여 종의 고사리가 자라고 있는 뉴질랜드는 그야말로 고사리 천국이다. 실버 펀(Silver Fern)이라 부르는 고사리는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고사리 싹은 갓난아이가 손을 오므린 모습과 같이 동그랗게 말린 모양으로 자란다. 마오리 원주민들은 이것을 코루(Koru)라 부르는데, 움터나는 생명과 새로운 시작이란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소라껍데기의 선처럼 나선 형태를 닮은 게 특징이다. 온 국민에게 친숙한 이 고사리 문양은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 깊이 배어있다.
택시 운전을 오래 하다 보니 하체가 약해져서 주말엔 등산길에 오른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 있다. 나무고사리 숲이다. 잠깐 쉬면서 우두커니 나무고사리를 바라보곤 한다. 내 키를 훌쩍 넘은 진한 녹색의 나무고사리에서 태곳적 기운이 느껴진다. 나무고사리는 온 산을 뒤덮어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동그랗게 말아 올린 고사리 싹에서 대자연 생태계의 순환고리가 연상된다. 시작은 미미해도 끝은 대단하다.
인생 여든 살이라 할 때, 가운데 분기점인 마흔 살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이민을 왔다. 이민 와서 숱한 어려움과 갈등을 겪었다. 택시 운전을 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였다. 어쩔 수 없이 한동안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다른 부위는 회복이 괜찮게 됐는데 유독 손가락 마디가 잘 펴지질 않았다. 손 신경 부위를 치료하는 전문 치료 센터에 다니며 손 근육 운동을 했다.
그때 치료받던 침실 벽에 그림 액자가 걸려있었다. 누워서 손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을 하며 무심히 액자 그림을 들여다봤다. 갓난아이가 주먹을 쥔 듯한 그림이었다. 한참 응시를 하다 보니 마음에 평화가 느껴 졌다. 회진하던 간호사에게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다.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고사리 문양, 코루라고 했다. 원주민, 마오리족들은 이 코루를 중요하게 여겼다. 탄생과 재성장 그리고 지속성의 기운이 있음을 믿고 있었다. 새 생명 잉태와 치유에 좋다는 몸소 느꼈다.
마비된 손바닥 마디가 제대로 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간호사 병상 일지에 손 근육 치료 진척이 꺾은선 그래프로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손가락 끝 펴지는 변화는 하루에 고작 1~2mm 정도였다. 어느 세월에 다 펴지나? 하는 조급증이 마음 한구석에 일었다.
간호사가 알려준 근육운동과 마사지를 꾸준하게 해나갔다. 간호사의 병상 일지에 나타난 내 손가락 마디 그림이 서서히 열려가고 있었다. 동그랗게 말린 고사리 싹이 서서히 커지며 벌어졌다. 벽에 걸린 고사리를 응시하며 갓난아기가 쥐엄쥐엄 하듯 손가락을 움직여보며 마음을 주고받았다. 한 달 뒤쯤에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게 가능해졌다. 다친 몸만 회복된 게 아니었다. 움츠러든 마음도 펴졌다.
뉴질랜드에서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며 마오리의 코루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코루는 양치식물의 잎이 빛을 향해 뻗어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민생활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적응력을 키워가는 여정이다. 나선형 모양을 한 고사리 싹을 보면 이민생활의 시작이 생각난다. 시작은 새로웠지만 예기치 않게 당황하고 힘든 경우도 많았다.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자기 역량을 조금씩 펼쳐 가는 이민생활은 고사리가 자라나는 모습과 흡사하다. 고사리에서 과거를 느끼며 현재와 내일을 본다. 나선형의 부드러움 속에서 기다림의 미학과 겸허한 마음을 배운다.
하루 일을 마칠 무렵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핸들이 가볍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자 도로 가운데 한 줄로 서 있는 야자나무에서 남국의 정취가 느껴진다. 석양빛을 받아 평화스럽다. 저녁상을 물린 후 나만의 자유시간을 갖는다. 몸과 마음이 휴식상태로 들어간다. 밖으로 나가 마루 데크에 서서 나무고사리들이 우거진 곳을 내려다본다. 나무고사리 위에 새 한 마리가 먼저 와서 쉬고 있다. 저녁노을이 나무고사리 뒤 멀리서 붉게 물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