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품격

손바닥소설


 

패자의 품격

일요시사 0 1777
뉴질랜드에서도 고국의 바둑 대국에 관심이 집중됐다. 신선한 충격에 몸이 달았다.

“형님, 어떻게 컴퓨터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넘보지요?” “글쎄 말야. 몹시 궁금하네.”

본당에서 미사 후 점심을 먹으며 한 형제가 물었다. 바둑에 아마추어지만 온통 신경이 쓰였다. 첫 대국부터 마지막 다섯 번째 대국까지 일 마치고 다 섭렵해 봤다.세기의 바둑대결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울에서 펼쳐진 ‘인간과 컴퓨터’ 대결. 인류대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의 불꽃 튀는 접전이 펼쳐졌다. 결과는 이세돌이 1승 4패로 졌다. 이 대결은 그야말로 일대 혁명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항의까지 나왔다. 인간의 감(感)과 기계의 계산(計算)이 외나무 다리에서 맞붙은 셈이었다. 바둑 기사 한 사람이 보이지 않은 컴퓨터 1,202대와 외롭게 싸운 것이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알파고에 맞선 쎈 돌 이세돌은 혼자였다. 상대는 보이지도 않았다. 숨소리 하나 없었다. 차디찬 철제 로봇의 냉랭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한 수를 두면 그 수를 근거로 다음에 둘 위치를 찾아 1,202대의 컴퓨터가 계산 하는 알파고. 당연히 확률적으로 가장 승률이 높은 곳에 착 점을 했다. 어떤 어려운 장면에서도 알파고는 2분을 넘기지 않았다. 인간으로서는 상상 못 할 냉정함을 발했다. 바둑을 두는 어느 누구도 승리를 위한 계산이 첨예화한 장비 앞에 그동안 속수무책이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결에 앞서 기보 3,000만 건을 입력해 익혔다. 수많은 기보를 통해 승리에 유리한 수를 찾아 나갔다. 매 순간 확률적으로 최적의 수를 택해 승률을 높인 것이다.

20수 앞을 내다보는 프로 바둑 기사들은 악수(惡手)라고 여겼던 알파고의 수가 40수나 지난 후 묘수(妙手)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둑 3만 판을 두는데 알파고는 하루밖에 안 걸리지만, 인간은 평생 두어도 불가능한 한계를 지녔다. 

사람이 만든 기계, 알파고는 사람과 달리 걱정도, 초조함도, 피로도 느끼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영역이 침범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세돌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진화는 예상을 깨고 훨씬 더 깊숙하게 학습되고 있었다. 보통 상식을 뒤흔드는 착점과 대세 관으로 종횡무진 공격하는 두 살짜리 알파고. 이 기계가 수천 년의 역사를 쌓아 올린 바둑의 패러다임까지 바꿔 놓았다. 

5국 가운데 3국까지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계속 연패를 하자, 세상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무모한 게임이라고 더 할 필요가 있나 회의를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이세돌은 겸손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소회를 밝혔다.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심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낀 적이 없는데, 그걸 이겨내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했다.” 

그 후, 이세돌은 밤잠을 새워가며 알파고와 둔 바둑을 수차례 복귀하며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고 결의를 스스로 다졌다. 급기야 4국에서 눈물겨운 첫 승리를 건져 올렸다. 세상은 환호하며 대반전이 일어났다. 지고도 이기게 된 이세돌을 향해 사람들은 인간의 영역을 지킨 자랑스러움에 찬사를 쏟아냈다.

 무섭게 발전한 인공지능의 공포감에 대한 패닉상태가 다시 희망으로 일어선 것이다.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하고 우뚝 일어선 이세돌의 끈기와 적극성에 박수를 쳤다. 결국, 상대 수의 결점을 꿰뚫고 승기로 몰아간 무서운 집념과 학습력에 모두 놀라게 되었다. 이번 세기의 바둑 대결은 천하무적 인공지능보다 인간의 무한한 창조 능력에 대해 더 주목하는 기회가 되었다. 완패 후 겸손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세상 인식에 흔들림 없이 다음 대국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한 이세돌의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돌아보게 해줬다. 지고도 지지 않는 방법을 보여준 이세돌, 천하제일 컴퓨터 알파고라도 이런 자세는 결코 학습하지 못할 것이다. 

구글 창업자는, 처음에 컴퓨터가 인간의 영역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능력을 과시했다. 이 딥러닝 기술 제품을 홍보하고 싶었던 구글로서는 뼈아픈 패배였다. 알파고가 3승 후 예기치 못한 실수로 무너지는 모습이 세상에 생중계되고 말았다. 이어 거센 질문공세까지 따랐다. 묘수인 줄 알고 인공지능에 따랐는데 실수한 것이라면 파장이 큰 것이다. 의학에 적용했을 때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지 않겠느냐?

세기의 대결은 1승 4패로 이세돌이 알파고에 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승패에 관계없이 이세돌은 이번 대결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세상에 빛을 발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엔 알파고는 갖지 못할 고수의 품격이 배어 있었다. 열정과 집념, 그리고 처절할 정도로 끝까지 투혼을 불사르는 모습에 세상 사람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20년 가까이 따라다녔던 센 돌이라는 별명 외에 여러 풍자가 따랐다. 바둑에는 세 가지가 돌이 있는데, 흑 돌과 백 돌과 이세돌이라고 했다. 알파고의 생뚱맞은 수에
세리둥절(이세돌+어리둥절)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했다. 이세돌은 1승 4패로 바둑엔 졌지만, 인간의 영역을 지켰다. 우승상금을 못 받았다 해도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폭발적 사랑을 받았다.

이민사회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고통 속에도 분명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할 묘수가 있을 것이다. 눈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바위 벽을 대하고서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 이세돌처럼 문제에 대면해서 집중하다 보면 길이 열리리라 본다. 이세돌이 한 말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자기 분야에서 심취하고 몰두하다 보면 깊이를 더해갈 것이고 즐기게 될 것이다. 세상에 주인공은 자신이니까 이세돌처럼 웅얼거리는 것도 좋다. 가치 있는 일에 전념한다면 지지 말고 멋지게 이겨 봄 직하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 

“마음껏 즐겼어요” 

백동흠 칼럼니스트

한국수필, 에세이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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