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빛낸 100명의 위인 <1>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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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2016.04.07 14:22
Ernest Rutherford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이란 노래가 있다. 그렇다면 뉴질랜드를 빛낸 100명의 위인이 있다면 누구일까? 뉴질랜드를 빛낸 100명의 위인을 시리즈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Ernest Rutherford – 물리학자로 뉴질랜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다.
100불 지폐의 인물로 유명하다. Ernest Rutherford는 세계 박람회 기념 장학금을 받아 영국 캠브리지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0여 년 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러더퍼드는 뉴질랜드인 최초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원소 붕괴 및 방사성 물질의 화학에 관한 연구’(Disintegration of elements and the chemistry of radioactive matters)로 상을 받았다. 어네스트 러더포드가 ‘핵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는 ▷방사선 물질의 붕괴와 변환 ▷라듐으로부터 나오는 입자들 ▷원자구조에 관한 이론 ▷인위적 원소 붕괴 등에 관해 탁월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Kate Sheppard
2.Kate Sheppard –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한 여성운동가이다.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시작된 나라가 되는 것에 큰 기여를 하였다. 10불 지폐에 나오는 인물이다.
케이트 세퍼드는 전국 부인회(National Council of Women)의 초대 회장을 역임한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 운동가 이다. 1891년부터 뉴질랜드 여성의 서명을 받아 여성의 투표권 획득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기 시작하였다. 1891년 탄원서에는 약 9000 명 이상이 서명하였고 1892년에는 약 2만 명이 서명하여 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남성 의원과 보수적인 상원 의원들의 방해로 법안 통과에 실패하였다.
1893년 서명이 계속되어 전국에서 뉴질랜드 백인 성인 여성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명 이상이 서명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아 9월 8일 의회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이 20 대 18로 통과하였다. 이후 잠시 논란을 빚다가 9월 19일 총리인 글래스고(Glasgow)가 법안에 직접 서명함으로써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고, 전세계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뉴질랜드에서는 1919년 여성에게 피선거권이 주어졌으며 1933년에 첫 여성 의원이 선출되었다.
Sir Edmund Hillary
3.Sir Edmund Hillary – 등반가&탐험가이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뉴질랜드 산악인이다. 5불 지폐의 인물이다.
에드먼드 힐러리는 등산가이자 탐험가로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오른 산악인이다. 이후 뉴질랜드의 히말라야 원정대 대장을 하였고 뉴질랜드의 남극횡단 원정대에서도 활약하였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탐험가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힐러리 경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뉴질랜드 알프스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1951년 뉴질랜드의 가르왈 원정대에 참가, 처음으로 히말라야산맥을 접한 이래로 1952년에 초오유산 원정에 참가하였다. 1953년에는 영국의 에베레스트산 원정대원으로 선발되어 5월 29일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산을 처음으로 올랐다. 그 공로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4.Sir George Grey – 총독&총리 정치가 이다. 와이탕기 계약을 체결한 윌리엄 홉슨초대 총독과 다음 총독인 Fitzroy 총독 이후 부임한 뉴질랜드 총독이다.
1862년 조지 그레이 경(卿)은 카와우섬 [Kawau Island]을 사서 개인적으로 이용했다. 그레이 경은 광산 관리자의 집을 개인 저택인 맨션 하우스(Mansion House)로 만들고 주위에 식물원과 동물원을 조성해 많은 동물과 식물을 들여왔다. 현재 맨션 하우스, 옛 구리 광산, 섬의 10% 정도가 역사유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Kupe
5. Kupe – 뉴질랜드를 최초로 발견한 마오리이다. 쿠페는 마오리의 카누인 와카호루아 를 타고 별과 바닷물의 흐름을 따라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천 년 전 쿠페가 처음 도착한 곳은 노스랜드의 호키앙아 항구로 추정되고 있다. 쿠페는 그들의 땅에서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하여 ‘Te Ika a Maui’(마우이의 물고기)라고 불린 이 땅을 발견했다. Kupe는 그의 항해사 Reti와 함께 전통적인 항해 법을 사용하여 약 60여명의 선원들과 아내, 아이들을 데리고 이 땅에 도착했다. Kupe 일행을 태운 카누가 육지에 다다를 즈음, Kupe의 아내 Hine-Te-Aparangi는 멀리 길게 뻗어있는 구름을 보고 ‘He ao! He ao!’ (A cloud! A cloud!)라고 외쳤다.
Kupe는 이 땅을 ‘Aoteroa’라고 이름 지었고 이 이름은 ‘길고 흰 구름의 땅’ 이라는 뜻으로 현재 ‘New Zealand’와 함께 마오리 공식 국가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6. Sir Apirana Ngata – Māori 정치가이다. 최초의 마오리 대학 졸업자이고 하카의식을 보급 시켰다. 50불 지폐 인물이다.
아피라나는 장학금을 받고 캔터베리대학에 입학했다. 1893년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마오리로는 최초 대학졸업생이었다.
그 다음해에는 정치학 석사 학위를 땄다. 3년 후엔 오클랜드대학에 입학, 법학 학사를 따냈다. 그리고 법조인이 됐다. 아피라나는 마오리들의 경제적, 사회적 개선에 무엇보다 앞장을 섰다. 각종 모임에 나가 마오리들이 인간답게 제대로 대접받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신문 매체 등을 통해 마오리의 권익을 주장하기도 했다. 1900년 초, 아피라나는 내무부장관 제임스 캐롤과 함께 법안 작업에 들어갔다. 바로 마오리토지관리법과 마오리위원회법이었다. 이 법안 제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아피라나는 국회에 들어갔다. 1905년 서른 한 살의 나이였다.
국회에서 그는 돋보인 의정활동을 벌였다. 초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꼼꼼한 자료 조사를 통해 지역구 주민은 물론 국민들에게 ‘뛰어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피라나는 마오리들도 스포츠를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 주었고, 오늘날 마오리의 춤을 대표하는 하카를 대중화시켰으며, 마오리 카빙(손 조각)을 국가 차원에서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