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그늘

손바닥소설


 

여름날 그늘

오문회 0 1564
서울의 명동 성당 격인 오클랜드의 Patrick 주교좌 성당. 평일 미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미사를 집전하시던 현지인 사제께서 미사를 함께 드리던 신자들에게 양해 말씀을 구하셨다.

“오늘 이 미사를 마치면서 이 시간에 남 달리 특별한 의미가 있는 두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55년 전 오늘, 우리가 들어왔던 저 성당 앞문을 통해 신랑 신부로 입장해 혼배 미사를 치렀던 젊은 청춘 남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께한 세월 55년 후, 오늘도 같은 문을 통해 두 분이 들어와 이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이 그들에게는 감회가 깊은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자, 두 분 일어서지요. 그리고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궁금증으로 가득 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팔순의 노부부가 다정히 손잡고 제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성당 안에서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일제히 축하의 박수를 쳤다. 두 분이 사제 앞에 서자 사제께서 두 분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해주셨다. 55년을 함께한 부부의 인연, 그분들은 세상의 온갖 풍파와 우여곡절의 고개를 담담히 넘어와, 황혼의 기운을 잔잔하면서도 은은하게 전해 주고 계셨다.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기도가 끝나자 두 노부부가 신자들을 향해 공손히 인사로 답례했다. 다시금 우렁찬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그러자 사제께서 다시 한 말씀을 하셨다.

“이 두 분이 혼배 성사로 부부의 인연을 맺은 뒤 11년 뒤 낳은 아들도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44세가 되었나요? 그 아들도 인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지켜보듯 궁금해하는 모습으로 신자들이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였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사제가 두 노부부 앞에 나왔다. 조금 전 노부부처럼 신자들을 향해 더욱 공손하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였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모든 신자가 벌떡 일어나 사제와 두 노부부를 향해 힘찬 기립 박수를 보냈다. 무더위를 피해 폭포수 아래 들어선 순간, 내리쏟아 퍼붓는 폭포수처럼 시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박수소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신자들에게 자애로운 눈인사를 하였다. 이어서 사제께서 말씀하셨다.

“이 두 분이 바로 저의 어머니이시고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이 자리까지 저를 키워주시고 보살펴준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지혜로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사제의 길을 잘 인도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바칩니다”

다시금 우뢰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그러자 세 분이 함께 답례의 인사를 신자들에게 했다. 돌아서서 제대와 십자가를 향해서도 더욱 정성스레 인사를 올렸다. 가슴 뜨거운 벅찬 감동의 물결이 온 성당 안에 가득 차고 넘쳤다. 평일 미사는 그것으로 끝났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평상으로 되돌아갔다. 보이는 행사를 위해 특별 소품이나 꽃다발이 준비되지도 않았고 자연스레 마쳤다. 진심을 그대로 가슴에 안겨준 단순한 진행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무엇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한 단계 더 나아가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감동을 안고 사는 우리 삶을 생각해본다. 생활 곳곳에 감동의 씨앗이 이렇게 배어있어서 고맙게 느껴진다. 자연 속에 그대로 간직돼 있는 깨달음의 진수들이 가슴을 두드리곤 한다. 그때마다 그 소리에 다가서는 열린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 사람 사는 낙이려니 싶다.

눈에 보이는 빙산이 그 빙산의 본 모습 전체는 아니다. 보이는 빙산 1%가 전체인 양 거기에 머물고 마는 경우가 많다. 머리로 인식하고 머무는 게 바로 안다는 것이고, 입으로 말하고 공감하는 것은 이해한다는 상태일 것이다. 이해한 것을 자기 생활 속에 기쁨으로 표출해내는 것이 깨닫는다는 단계이려니 싶다. 살짝 드러난 행동에서도 그 내면의 본 모습을 읽을 수 있다면, 쉽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고 배려 있는 다가섬이 따를 것이다.

택시 손님들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면 가끔 묻곤 한다. 뉴질랜드, 무엇이 좋나. 그때마다 자연스레 나의 입을 통해 나오는 대답이 있다. 지능 지수(IQ-Intelligent Quotient)보다 감성 지수 (EQ-Emotional Quotient)가 높아서 좋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해 보여도 가슴을 적셔주는 것이 많다. 은은한 꽃향기처럼 다가오는 기운이 편하다. 곱게 세월을 다져온 노부부처럼, 여름날 그늘 드리워주는 한 그루 나무로 서고 싶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다가가는 향기가 되고싶다.

수필가 백동흠

에세이 문학 등단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