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옥 칼럼; 청출어람

손바닥소설


 

유종옥 칼럼; 청출어람

일요시사 0 1665

“학생, 청출어람이 무슨 뜻 인가 ?”

필자가 평소 잘 알고 있는 한 교민의 자녀가 뜻한 바 있어, 수년 전 서울 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 원서를 내고 일반 상식과 품성에 관한 인터뷰를 할 때 담당 교수가 던진 말이었다. 
유년기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뉴질랜드에서 생활했던 아이가 이 같은 교수의 질문에 엄청 당황하여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지만, 합격 여부를 가리는 최종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처지였다. 

“듣기는 했지만 그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청출어람에서 ‘어’는 한자어로 말씀 ‘어’인가 ?”
“………”
“나도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네 나이 때는 그 뜻도 몰랐고 한자는 더욱 몰랐어.  신경 끄고 나 보다 더 훌륭한 의사가 되길 바래요”
교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아이는 하얀 머리 속이 금새 안정되었다.  현재 이 아이는 큰 문제없이 서울대학교 본과 과정을 수료하고 있다. 

우리는 매우 푸른 바다를 보면 쪽빛 바다라는 말을 쓴다.  
쪽은 풀의 이름인데 여기에서 선조들은 청색 빛의 염료를 얻어 의복의 염색에 많이 사용
하였다.  그런데 염색한 후 그 푸른 빛을 보면 원래의 쪽 풀보다 더 진하고 아름다워서
‘청출어람’이란 고사성어가 나온 것인데, 예를 들면 스승보다 스승의 제자가 뛰어나거나
아버지보다 자식이 뛰어난 즉, 선대보다 후대가 뛰어난 것을 말한다.  사실 얼음은 물에
서 나온 결정체인데 물보다 더 차고, 우리 속담에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는 말도 이
에 상충하리라. 

과년한 딸 아이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십중팔구는 이렇게 말한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이 말을 듣는 엄마는 내심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 속
에서 나온 딸이 본인보다 더 잘 살겠다는데 기분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한국의 푸른 숲 교회의 최한주 목사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시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구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자고 힘주어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가? 
아니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넘겨다 볼 분이 아니라면 일단 제껴두고, 우리에게 기독교를 가르쳐준 선배 선생들은 어떠한가? 베드로와 바울은 어떠한가? 우리는 그들의 신앙을 넘어서고 있는가? 마틴 루터, 존 칼빈, 손양원, 한상동, 한경직, 그분들 정도는 뛰어넘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도 그들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 돈이나 명예에 자신을 팔지 않았다.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주를 위해서는 아끼지 않았던 분들이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어떻게 된 게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고 고백한다면 나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소위 선생이라고 하는 목사들은 어떠한가? 걸핏하면 교회를 떠나는 조건으로 수억 수십억 원을 요구한다. 헌금을 횡령하여 법정에 불려나가고 여성문제로 물의를 일으킨다. 명예를 돈으로 사는 일을 하여 한국교회를 먹칠하면서도 나는 떳떳하다고 큰소리친다.”
최한주 목사의 현실 기독교에 대한 결론은 모두가 청출어람을 외치는데 적지 않은 수의 교회는 청출어퇴(靑出於退)하고 있다는 회의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승려 생활을 했던 하버드 대학 출신 엘리트 외국인이 한국을 영원히 떠난다고 했다.  불교의 원천이라고 일컫는 한국 불교 지도자의 물질 우선주의 행태가 이제는 보편화되어, 부처님의 자비와 무욕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 벌어져서 떠난다는 것이다.   

요즘 기독교나 불교가 예수 및 부처로 부터 나오긴 나왔지만, 오히려 후퇴하고 있어 스승을 욕보이고 있는 현실이며, 지금이 종교개혁을 해야 할 때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에게 개혁이라는 말은 하나의 구호에 지나지 않는 소나 개나 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지만 개혁자의 후손에게서 개혁자를 찾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제 청출어퇴를 청산하고 청출어람으로 돌이키는 진정한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사실 세상 이치와 역사상 모든 학문에서 그래왔다. 제자가 스승의 업적을 딛고 더 뛰어난 학문을 보였기에 문화가 발전하고 정치과학이 발전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문화적으로나 정치, 경제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이 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 이로 보건데 세상은 제자가 스승보다, 아이들이 부모보다 뛰어난 역사를 계속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뉴질랜드의 자연 풍광은 푸른색이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면 산천도 푸른 녹색으로 계절이 무르익어 여름으로 갈수록 진하기까지 하다.  간밤 때맞춰 흠뻑 내린 폭우로 산야는 야무지게 세수를 했다. 푸른 하늘 아래 건물들이 맑게 웃는다. 푸르디푸른 산야의 녹색을 보다 갑자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고사성어가 머릿속에서 입으로 기어 나왔고, 얼마 전 후배 교민인 그 딸의 인터뷰 이야기가 나와  이 글을 쓴다.   (2016년 8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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