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로의 초대

손바닥소설


 

카페로의 초대

일요시사 0 1266
오클랜드 서북쪽, 코우츠빌 동네가 고향 같은 정취를 자아낸다. 택시에서 내린 할머니가 사립문을 여는 순간, 비숑 강아지가 할머니 품에 펄쩍 뛰어 안긴다. 손바닥 모양의 빨간 단풍 잎들이 오후 녘 햇살에 빛나며 찬란하다. 가게 안내 팻말 위쪽에 걸린 <Palms Cafe> 간판이 바람에 그네처럼 흔들리고 있다. 정겨움이 물씬 풍긴다. 쉬어가고 싶은 곳, <Palms Cafe>에 들러 부드러운 라테 한잔을 마신다. 멀리서 노을이 하늘에 붉은 영토를 확장 중이다. 노곤함이 스르르 풀리며 가슴에도 단풍이 물든다. 가을이다.

카페 창밖을 보니, 찰랑찰랑 황금 물결이 달려온다. 훤칠한 아가씨의 금발 머리가 가을을 흔들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빨간 운동화를 신고, 까만색 반바지 차림에 하늘색 티를 입은 아가씨의 짙은 선글라스가 압권이다. 기품 있는 진격으로 내딛는 발끝마다 힘이 넘친다. 코우츠빌 산골 마을에 생동감 넘치는 젊음이 에너지를 확확 품어내고 있다. 외진 곳 누가 보아주는 이 없어도 자신의 보폭과 속도로 유유히 사라져간다. 가을의 전설이 깊어가고 있다. 산골 고향 같은 카페에서 대자연 가을 책을 읽는다. 다소곳이 마시는 커피 맛이 가슴에 단풍으로 붉게 물든다.

흔들리는 <Palms Cafe> 간판이 생각의 그네를 저어 올린다. 카페(Café)라는 말이 고전 속으로 나를 끌고 간다. 카페 여행으로의 초대다. 카페의 어원 자체가 흥미롭다. Café는 커피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며 카페 하면 커피를 파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프랑스에서 17세기 무렵, 처음으로 카페가 생기면서 마시며 먹고 나누는 문화가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당시 여성들에겐 파격적인 문호개방의 물결이었다. 집에만 있다가 집밖에 공공연한 만남의 장소가 생겨난 셈이다. 사교 장소로 대중화되는 가운데 여성들의 일상이 자유의 날개를 달았다. 처음에는 커피 음료와 간단한 요식거리로 샌드위치와 케이크를 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차츰 서로의 이상과 철학을 나누는 문화적 터전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카페 초기 배경을 미루어 짐작해보니 꽤 낭만적이다. 중세 프랑스의 사교 문화를 꽃 피운 만남의 장소로서 의미가 크다.

카페와 관계가 깊은 이들이 있다. 지성과 더불어 계약 결혼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보부아르이다. 그들은 거의 매일 저녁, 카페에 들러 글을 쓰고 철학을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혼인이란 법적 기반 없이도 평생 계약을 유지했다. 죽어서는 한자리에 나란히 묻혔다. 그 비결이 뭐였을까? 핵심은 바로 같은 목표를 가진 것. 그리고 같은 길을 걸어간 것. 둘은 서로를 존중하는 동반자 관계였다. 구속하지 않고 소유하지 않고 존재를 인정한 사이였다. 카페에서의 그들 역사가 가을 단풍처럼 빛이 난다.

카페에서의 만남, 커피, 독서, 대화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본다. 최근 들어 카페가 참 많이 진화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나누는 오프라인 카페에서, 쓰고 읽고 나누는 온라인 카페로까지 공감 영역을 넓혀가는 세상이다. 이민 와 사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문화 쉼터가 온라인 카페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블로그와 카페에서 같은 철학과 취향을 지닌 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 사진 애호가들의 모임 방, 트램핑 등산가들의 쉼터, 낚시 모임의 장, 글을 읽고 쓰고 나누는 이들의 글 카페, 그림 그리는 이들의 나눔터, 바둑 동호인 모임, 여행자들의 휴게소들이 저마다의 사귐과 나눔으로 하나 되고 있다. 한국,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 국적을 넘나들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좋은 모임들이다.

세월에 힘입어 나도 다움 카페를 하나 오픈 하였다. 여러 해 공들여 조성한 나만의 쉼터, 블로그를 정리했다. 블로그와 카페의 장점을 살려 카페형태로 조합해 새로운 온라인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카페를 선보였다. 700여 편의 공감 글이 준비되어있다. 매일 여러 편의 이야기들이 새롭게 선을 보이는 중이다. 포토 갤러리, 인문 종교, 역사 문화, 문학상 작품, 한국 문단 기고 글, NZ 생활체험 글, 수필집 원고 글, 좋은 글쓰기, 옛 글 향기, 밑줄 쫙~,공감 수필, 공감 시, 공감 소설, 공감 글, 시사 칼럼, 해외 교민 글, 울림 여운… . 쓰고 읽고 공감하는 나눔터다.

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며 들러보는 방이다. 일을 마치고 나서도 들어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애환을 보고 듣는 쉼터. 다양한 생각과 가슴 적시는 사람들의 정서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주고 새 힘을 실어준다. 내밀한 나만의 이야기도 털어놓고, 남들의 고백성사 같은 정성 담긴 이야기도 듣는다. 현대를 살아갈 힘을 주는 원천이다. 생활 이야기, 에세이를 읽고 쓰고 나누는 카페의 대문 그림을 바라본다. 가을 풍경 속에 생각의 잎들이 손짓해온다. 세상은 아름다운 시라고. 자신을 매일 쓰라고. 고전과 현대의 만남. 글과 책과 사람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이다.  

오픈 한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카페에 장 폴 사르트르가 추억 한 소절을 격려사로 들려준다. 왜 옛 시절, 저녁에 야외 카페 나와서 시몬 보부아르와 글을 쓰고 철학을 이야기하였는지를. 존재의식이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한 것은 오직 쓰기 위해서였다.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쁨을 알았다. ” 

뉴질랜드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며 그 삶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들에게 가을에 초대장을 보낸다.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카페로의 초대다. 가을이 곱게 물들어가고 있다. 

백동흠: 수필가. <에세이문학 >등단
블로그•카페: <뉴질랜드 에세이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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