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벗기기

손바닥소설


 

옥수수 벗기기

일요시사 0 1770
어느 분이 보내준 옥수수 한 자루. 검푸른 옥수수들이 금방이라도 주머니의 망을 찢고 튀어나올 것처럼 싱싱하다. 보기만 해도 실팍하다. 얼른 한 개를 꺼내 든다. 손에 전해 오는 느낌이 제법 푹신하다. 이미 시들어 누릿해진 한 겹 겉껍질 아래 진한 초록색 잎맥의 결은 거칠다. 마치 갑옷이라도 두른 듯 단단하다. 껍질을 벗겨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도톰한 그 질감에 끌려 벗겨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야무지게 여민 품이 여간해서는 속을 내주지 않을 기세다. 어디서부터 공략할까. 색다른 긴장감이 서늘하게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내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치미를 뚝 떼고 제 몸을 맡긴 양이 천하태평이다. 어차피 내줄 요량이면서 끝내 모르쇠 하는 것 같아 앙큼한 맛도 있다. 

성급하게 벗기려 드는 이쪽 심보도 그다지 곱상은 아니다. 천천히 벗겨내도 결국은 보게 될 것을 웬 조바심인지 모를 일이다. 원래 꼭꼭 닫혀있는 방문 저쪽이 더 궁금한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벗긴다든가 깐다는 행위는 그 안에 들어있는 실존을 향한 욕망의 첫걸음이다. 

조심스럽게 빈틈을 탐색한다. 처음의 시든 잎은 간단히 떼 낼 수 있다. 벗기는 즐거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다. 몸피를 감싼 두껍고 질긴 초록빛 잎의 단단함에 오히려 바싹 구미가 당긴다. 억센 외피는 최전방 지킴이답게 완강하다. 뚫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나선형으로 몸을 싸고돌며 이파리들이 마침내 한 정점에 모인다. 그곳 뾰족한 원추형 꼬투리에 비어져 나온 수염이 보인다. 여기다. 여기서부터다. 잎의 끝자락을 단단히 잡아 한 풀 더 벗긴다. 여전히 어림없다. 그것 가지고는 벗었다는 흔적도 없다. 가늘게 골이 진 잎들이 엇비슷하게 차곡차곡 덮여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벗기는 재미가 있는 법. 

몇 겹이든 다 벗겨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영근 속살은 그만큼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터. 성급하게 순서를 건너 뛸 일도 아니다. 그 촘촘함이야말로 옥수수가 마음 놓고 익어가기 위한 보루였을 것이다. 정복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참을성은 마지막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갈무리해둔다. 왕의 손길도 그러하지 않던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성급한 내 손놀림이 문득 어떤 은밀한 손길을 연상케 한다. 가끔 사극을 본다. 양념처럼 꼭 등장하는 장면, 왕과 왕의 여자. 빤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떤 스토리일지라도 그 순간 왕의 손놀림은 매번 비슷하다. 여자의 저고리 고름을 푼 다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매 순간을 즐기듯 한 겹씩 옷을 벗긴다. 애써 누르는 조급증은 마지막 정점을 위한 기폭제일 뿐이다. 

하필 그런 그림을 연상하다니. 벗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여운이 묘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파리들은 어슷비슷 지그재그를 이루며 겹쳐 있어 좀처럼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다. 한 잎, 또 한 잎 들출 때마다 더 부드럽고 연한 촉감이 전해져온다. 촉촉하면서도 따스하다. 여린 속잎들은 포개져 서로 밀착한 채 떨어지기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깨고 싶지 않은 단꿈이라도 꾸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망설임 없이 나머지 얇은 이파리를 사정없이 벗겨버린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무언가 남아있다. 살짝 보랏빛을 띤 흰 수염, 겹겹의 속옷으로도 모자라 가늘고 반짝이는 주렴이 보일 듯 말 듯 드리워져 있다. 아까의 야릇한 연상은 공연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잠깐 속이 환하게 드러난 속적삼을 걸친 여인을 본 것 같은 착각이 인다. 공연히 겸연쩍다. 미안한 마음도 든다. 

껴입기와 벗기기, 이 묘한 함수는 기다림과 내주기의 다른 모습이다. 겹겹의 껍질에 갇혀 어둡고 답답한 시간을 견뎌내며 키웠을 그 오연한 기운의 정체는 기다림이다. 가끔은 벗어나고도 싶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새겨진 유전자의 비밀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신윤복의 풍속도를 보면 그 시대 여인들의 치마폭은 유난히 부풀어 있다. 부푼 치맛자락에서는 수줍은 척 살짝 내보이는 모종의 도발이 느껴진다. 감춘 것처럼 보이지만 넌지시 틈을 내보이고 있다. 무언의 암시다. 기다림과 내어주기는 어쩌면 유혹의 은유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침내 옷을 다 벗고 드러난 연노랑 알갱이들, 건강하고 고르게 열을 지어 빈틈이 없다. 세상에 처음 드러내는 순결함으로 알알이 빛나는 모습이 진주알 못지않다. 야무지게 영근 모습은 이런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당당하다. 그런가 하면 이제 할 일을 다 했으니 어찌 되어도 좋다는 듯 무심해 보인다. 

오롯이 영근 알갱이들을 보자 불현 듯 내 안이 궁금해진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키우고 있었을까, 그 무엇을 위해 나는 얼마나 단단히 자신을 여미며 살아왔을까. 내 안에는 과연 야무지게 숙성된 그 무엇이 있기나 한 것인가. 

하긴 내게도 비와 바람의 시간, 뜨거운 햇살을 견뎌내며 키운 열망의 씨앗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옥수수 알갱이만큼도 여물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겉 볼 속이라고 그동안 내 겉모습 또한 얼마나 허술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제 껍질은 남김없이 벗겨졌다. 수북하게 쌓인 빈 껍질들에서 좀 전의 결기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때가 되어 버려지는 것들은 차라리 아름답다. 껍질이 있어 안이 존재하며 안이 있음에 껍질의 본색은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잘 영글어 입안에서 탁 터질 것 같은 옥수수 알갱이는 눈부신 관능이다. 그러나 옥수수의 관능은 벗음으로써 완성된 것은 아니다. 무던히 참고 기다렸을 생장의 시간을 고스란히 내어놓을 줄 아는 온전한 보시에 있지 않았을까. 자웅동주 식물, 옥수수는 뜻밖에 섹슈얼한 작물이었다. 

저자 이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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