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25편] All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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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25편] All the same!

일요시사 0 2209

엉겁결에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가 여성 테이블을 가리키며 종업원에게 말했다.

매 한가지로. All the same! 다시 옆 좌석을 바라보자 여성이 윙크를 보내왔다. 

그 때서야 여성의 풍채가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글래머 몸매를 가진 금발의 여성이었다. 유러피언인가? 

기침 한번 크게 하면 하얀 브라우스가 툭 터질 듯 풍만해 보였다. 

어찌 저렇게 혼자서도 맛있게 잘 먹지? 

 

오클랜드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진 헌베이 스테이크 레스토랑. 미리와 기다리던 피터가 시계를 다시 봤다. 집을 내놓아볼까 하고 통화했던 부동산 에이전트 여성, 함께 만나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한 시각이 한참 지났는데도 기척이 없었다.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냈다. 오다가 별일이라도 생겼나, 전화 배터리가 다 됐나? 20 여분이 지나도 깜깜무소식.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레스토랑에 예약은 해놓고. 피터의 기분이 영 그랬다. 다시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다. 옆 테이블을 보니 한 여성이 혼자 앉아 풍성한 스테이크 음식을 잘라서 잘도 먹고 있었다. 피터 쪽 테이블을 힐끗 쳐다보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피터도 답례로 겸연쩍게 미소 지었다.

 

뭘 주문하시겠어요? 종업원이 다시 와서 물었다. 더는 미룰 수 없어 피터가 잠시 주춤했다. 그때였다. 옆 좌석에서 맛있게 먹던 여성이 자기 접시를 가리켰다. 그걸 주문하라는가. 엉겁결에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가 여성 테이블을 가리키며 종업원에게 말했다. 매한가지로. All the same! 다시 옆 좌석을 바라보자 여성이 윙크를 보내왔다. 그때서야 여성의 풍채가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글래머 몸매를 가진 금발의 여성이었다. 유러피언인가? 기침 한번 크게 하면 하얀 블라우스가 툭 터질 듯 풍만해 보였다. 어찌 저렇게 혼자서도 맛있게 잘 먹지? 벌써 레드와인도 반병을 비운 상태였다. 여성 특유의 직감은 망설임 없이 즉각 응답을 보내왔다.

 

“기다리는 사람이 안 왔어요? 저도 바람맞았어요. 안 와서 내가 2인분 시켜 먹는 거예요. 이 켈리를 나 아닌 누가 챙기겠어요?”

 

그냥 스치듯 던지는 행동과 말로 봐서 여성 성격이 쿨해보였다. 피터라고 뭐 주춤거릴 게 있겠나. 초면인 숙녀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는걸. 피터의 마음에 호기심이 일어났다. 잘 받아 신사답게 고이 보내주고 싶은 기분. 탁구 칠 때, 상대가 시원스레 공을 넘겨주면 받는 쪽도 받기 좋게 넘겨주기 마련. 처음 만난 이한테서 공이 넘어왔는데. 친화도가 빠른 여성한테서 온 그 공을 치기 좋게 보냈다.

 

“아~아~ 그렇군요. 저, 피터도 이참에 켈리 씨를 따라 해보렵니다. 배도 출출한데 혼자라도 즐겨야겠어요.”

 

“남자 변호사랑 식사하며 비즈니스 문제 상담하기로 약속했는데, 약속 시각 5분 전에 못 온다 연락받았어요. 약속까지 깬 사람에게 뭐 기댈 것 있어요? 다른 사람으로 바꿀까 해요. 이번에는 여성 변호사로요. 제가 주인이잖아요.”

 

“저랑 똑같네요. 여자 부동산 에이전트 만나 집 파는 것 이야기하려고 했거든요. 약속시각 반 시간이 지나도 연락 없어요. 저도 당신처럼 바꿀 생각입니다. 남성 에이전트로요. 맞아요. 제가 주인공입니다.”

 

우연이란 참 묘했다. 식사하기로 약속하고 왔다가, 각 테이블에서 홀로 동그마니 남고.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어쩌다가 동병상련 입장이 되어 말을 섞고. 혼자가 아닌 둘이 만나고. 세상사 그런 게 아닌가. 지금 여기를 즐겁게 만드는 일. 그게 남는 장사지. 켈리가 엄지를 들어 올렸다. 피터도 같이 응답했다. 묘한 동료애가 생겼다. 피터의 눈에 켈리는 꽤 여유 있고 자신을 소중히 하는 사람 같았다. 켈리가 스테이크를 먹으며 입을 오물거리느라 못다 한 이야기가 입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남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고요? 그럼 딱 건너뛰고 다음으로 넘어가 버려요. 뭘 미련 같고 그런 사람에게 매여요? 방법은 얼마든지 또 있어요. 훌훌 털고 일어나 나 자신부터 챙겨요.’

매력 있는 여인의 포스 같은 게 느껴졌다. 피터에겐 또 다른 문화체험이었다. 있는 자리에서 나를 최대한 찾고 돌보는 것. 약속에 바람은 맞았어도 켈리 같은 여성의 마음을 가져보게 된 것. 종업원이 풍성한 음식을 내왔다. 큰 스테이크 접시에 여러 사이드 접시가 나왔다. 레드 와인 병도 올라왔다. 혼자 잔을 채웠다. 크리스털 잔에 와인이 핑크빛으로 가득 찼다. 옆 좌석 켈리가 건배 뜻을 보였다. 글래머 켈리가 조심스레 일어났다. 피터에게 다가와 와인 잔을 살짝 부딪쳤다.

 

“살루드!”

 

“위하여!”

 

스페인과 한국의 건배사가 헌베이 스테이크 레스토랑 분위기를 띄웠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켈리가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피터도 따라 했다. 피터가 스테이크에 포크를 대고 나이프로 썰어보니 속이 빨갰다. 스테이크에 핏물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그동안 피터 입맛에는 적당히 구운 미디엄(medium) 상태가 제격이었다. 맛있게 먹는 켈리를 보고 똑같이 주문한 게 날 것(rare) 수준이었다. 힐끔 쳐다보던 켈리가 피터 표정을 읽었다. 척하면 착 이었다. 말을 또 툭 던졌다.

 

“고기가 빨갛게 보여도 속살은 아주 연해요. 스테이크는 역시 rare로 먹어야 제 맛이지요. 한 번 먹어보세요. 스페인에서 어릴 때부터 이런 타입의 스테이크를 즐겨 먹었어요. 다 습관 나름이지만요.”

 

“네. 좀 보기가 그렇습니다만, 기왕 나온 것. 눈 딱 감고 켈리 씨처럼 맛있게 먹어보겠습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해가며 피터가 연한 고기를 씹었다. 소금 양념과 후추가 촉촉하게 배어있어 육즙이 정말 부드러웠다. 구운 양파랑 버섯 그리고 깎지 콩 등을 곁들여 먹으니 입에서 술술 녹았다. 거기에 레드 와인까지 마셨다. 화룡점정이 따로 없었다. 피터는 눈을 감았다. 그대로가 딱 좋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켈리가 호호 웃었다. 얼추 시간이 되자 켈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예약 손님을 위해 자리를 비워주는 마음 씀씀이인가. 계산대로 가면서 피터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다시금 건배라도 한번 하고 싶었는지 여운을 남기고 떠나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홀연히 사라지는 켈리. 피터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려. 만나기로 하고 안 나오고. 예기치 않게 만났다 떠나가고. 결국은 홀로 남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법을 알려주고 떠나간 집시 같네. 인생은 우연찮은 만남의 연속이려니. 꼭 계획대로 되는 것만도 아니지. 불현듯 날아온 씨앗이 메마른 돌 틈새에 싹을 틔우기도 한다더니. 묘령의 여인으로 잠깐 눈앞에 나타났다 간 켈리. 그 얼굴에 그려진 인생지도. 마음에 걸리는 일을 만나도 훌훌 털고 일어날 줄 아는 자유스러운 성격. 바깥 세상과 안 세상을 하나로 잘 엮는구먼.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친구네.’

 

피터는 음식을 꼭꼭 씹어가며 이 생각 저 생각에 푹 빠졌다. 켈리가 일어서서 나갈 때 식탁 상태, 그대로 피터 식탁도 닮아갔다. 레드 와인 병은 다 비워지고. 음식 접시도 깨끗해지고. 홀로 앉아 이렇게 음식을 제대로 먹은 적이 있었던가. 신기했다. 한 번 경험은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자가 된 듯 했다. 어떤 포만감 같은 게 목까지 은근히 차 올랐다.

 

피터가 스테이크 집을 나오자 약간 몸이 덥고 붕 뜨는 느낌이었다. 거리는 저녁 풍경으로 흔들거렸다. 폰슨비 로드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줄 지어선 가게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이 반짝거렸다. 피터 가슴에도 어린 시절, 고향 교회에서 맞이했던 성탄 추억이 깜박거렸다. 뉴질랜드의 한여름 12월 크리스마스 저녁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어갔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오클랜드에서 가장 독특한 행사로 자리매김한 폰슨비 프랭클린 로드의 크리스마스 장식물 들이 형형색색으로 불빛을 발했다. 도로 양쪽 집과 건물들 지붕과 창에 조형 장식물들이 기상천외했다. 

 

붉은 옷을 입은 산타가 굴뚝에서 선물을 메고 내려오는 모습, 푸른 강보로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가 보여주는 평화, 동방 박사가 세 가지 예물, 황금 예향 몰약을 들고 별을 찾아가는 여정, 루돌프 사슴코가 썰매를 끄는 광경,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풍경 등등… . 어린아이 손을 잡고 구경 나온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잔잔히 울려 퍼지는 성탄 캐럴~ 밤거리 분위기는 더욱 농밀하게 고조되었다. 신비스러운 크리스마스 그날의 풍경이 재현된다는 건 그들만의 전통이자 문화였다. 

 

때 되면 함께 모여 집마다 성탄 조형 장식물을 설치하는 주민들. 좋은 것은 똑같이. 매한가지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되돌아보고 새해를 꿈꾸는 가족들의 발걸음도 똑같았다. 오늘 저녁과 밤 풍경.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좋은 것은 닮아갔다. 옆으로 퍼졌다. 걸어 내려가던 피터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의아스럽고 놀라웠다. 아니, 저 글자는 스테이크 집에서 주문했던 단어가 아닌가? 오선지 색 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한 네온사인 글자가 지붕 꼭대기에서 별처럼 반짝거렸다. 

 

All the same! * 

 

LYNN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9-01-02 21:16:19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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