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긴 江

손바닥소설


 

이 세상의 긴 江

일요시사 0 1621
며칠 동안 혼자, 긴 강이 흐르는 기슭에서 지냈다
티브이도, 라디오도 없었고,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없었다. 
있는 것은 모두 살아 있었다. 
음악이 물과 바위 사이에 살아 있었고, 
풀잎 이슬 만나는 다른 이슬의 입술에 미술이 살고 있었다. 
땅바닥을 더듬는 벌레의 가는 촉수에 사는 시, 소설은 
그 벌레의 깊고 여유 있는 여정에 살고 있었다. 

있는 것은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물이, 나뭇잎이, 구름이, 새와 작은 동물이 쉬지 않고 움직였고, 
빗물이 밤벌레의 울음이, 낮의 햇빛과 밤의 달빛과 강의 물빛과 
그 모든 것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는 세상이 내 몸 주위에서 나를 밀어내며 내 몸을 움직여 주었다. 
나는 몸을 송두리째 내어놓고 무성한 나뭇잎의 호흡법을 흉내내어 숨쉬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내 살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숨쉬는 몸이, 불안한 내 머리의 복잡한 명령을 떠나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어깨가 가벼워지고 눈이 밝아지고, 나무 열매가 거미줄 속에 숨고, 
갑옷의 곤충이 깃을 흔들어내는 사랑 노래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였다. 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크고 작은 것의 차이에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차이에서 떠나고, 
살고 죽는 것의 차이에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내게는 어려운 결심이었다. 
며칠 후 인적없는 강기슭을 떠나며 작별 인사를 하자 강은 
말없이 내게 다가와 맑고 긴 강물빛 몇 개를 내 가슴에 넣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강이 되었다. 

저자 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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