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계신가요 <최초의 아시안 이민 >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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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14:28
알고 계신가요 <뉴질랜드 역사이야기> 최초로 뉴질랜드에 온 사람들 <2>
<950년경> 뉴질랜드에 도착한 최초의 사람, 마오리 쿠페(Kupe)
<1642년> 뉴질랜드를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 아벨 타스만
<1769년> 뉴질랜드를 점령한 영국인, 제임스 쿡
<1861년> 최초의 아시안 이민 – 중국인 남섬 금 채굴로 이주
<1960년대> 한국인 이주 역사
최초의 아시안 이민 – 중국인 남섬 금 채굴로 이주
184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1850년대 호주 퀸스랜드에 이어 1860년 뉴질랜드 남섬 오타고에서 노천광이 발견되어 국내인은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Gold Miner들이 모여 들면서 골드러시를 이루었다. 특히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영국은 중국인들을 뉴질랜드로 끌어드려 금광 노동자로 참여 시켰다.
당시의 수도는 오클랜드(Auckland)였지만 남섬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남섬에서 너무나 먼 수도를 가까운 곳으로 옮겨달라는 남섬 경제인들의 요구가 있어 1865년 지금의 수도인 '웰링턴(Wellington)'으로 수도가 옮길 정도로 남섬 오타고의 경기는 좋았었다. 이때 많은 수의 중국인이 오타고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이 최초의 아시안 이민자들이다.
골드러시로 인해 중국인의 수가 늘어 났는데 1874년 인구 센서스에 의하면 Westland 인구의 6.06%, Otago 인구의 4.19%가 중국인들로 그 당시 이 두 곳을 제외한 뉴질랜드 그 어디에서도 중국인들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금광에서 정착한 중국인들은 다시 상하이 등지에서 다른 중국인들을 불러들였다. 중국인들은 초기 광부로 이 땅에 들어 왔지만 후에는 주로 요식업을 통하여 정착했다. 인도인들은 1930년대에 이주해 온 것으로 알려 졌다.
한국인 이주 역사
뉴질랜드 인구조사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1911년 이전에 1명, 1931년 이전에 3명, 1945년에 4명, 1961년에는 52명 (이들 중 42명은 원양어선 선원으로 추측, 그러므로 거주자는 10명), 1966년에는 30명, 1976년에는 86명, 그리고 1986년에는 162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본격적인 거주는 1960년대 부터 시작된다.
이민법이 개정되기 전 한국인의 뉴질랜드 유입은 주로 취업, 결혼, 연수, 입양 등의 목적이었는데 초기에는 남태평양에 진출한 원양어선 선원들이 많이 입국하였고, 1950년대 부터는 콜롬보 플랜에 의하여 입국한 한국유학생이 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플랜에 의하여 공부하고 후에 뉴질랜드에 정착한 사람이 많이 있다. 한국과 공식 외교관계는 1962년 수립되었고, 1971년 뉴질랜드 수도인 웰링턴에 한국대사관이 개설되었다. 한인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오클랜드에는 1996년 대사관 분관 형식으로 공관이 개설되었다.
한국인 중 누가 언제 처음으로 시민권을 받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962년 6살로 입양된 김성미가 2년 후인 1964년 시민권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1968년에 참전 용사와 결혼해 오클랜드에 정착한 Mrs. Morton, 1969년에 크라이스트처치 링컨 칼리지 연구원으로 취업해 온 정재훈 박사 가족, 1969년에 오클랜드에 정착한 김영이 씨 가족 등이 초기 이주자로 파악되고 있다.
1987년 이민법이 개정 되어 투자이민제도가 실시되며 1992년에 한인동포가 1,762명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고, 체류자가 978명, 원양어선 선원이 309명으로 총 3,049명의 한인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1992년 이 후의 한인 이민은 점수제에 의하여 1994년에 4,167명, 1995년 3,394명의 한인이 영주권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 장기사업비자 등으로 한인 인구는 급속히 증가하여 2006년 인구조사에는 영주권자와 시민권자가 17,600명, 일반체류자가 5,400명, 유학생이 10,000명으로 한인인구가 총 33,000명 정도로 나타나 있어 당시에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번째로 큰 아시안 커뮤니티를 형성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