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옥 칼럼; 물어볼걸 ...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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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09:37
휴식 시간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광 버스에 돌아 온 아이와 엄마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유쾌한 기분으로 관광버스를 타고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의 갑작스런 화난 모습과 차디찬 눈총이 아이와 엄마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버스 기사는 신경질적으로 제 손목에 찬 시계를 두들기며 눈을 흘기면서 뭐라고 쏼라 대며 연거푸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조금 늦어서 그러나?’ 생각하고 “쏘리”를 하며 웃어주었는데 오히려 차 안의 분위기는 더욱 험상궂은 상태로 정적을 이어간다. 영문을 모르고 당하기만 했던 모자는 큰 죄인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아오테아로아.
뭉게구름이 가을 하늘을 화폭 삼아 빼곡히 그려놓은 천혜의 뉴질랜드 자연 풍광을 보니 가슴부터 확 트인다.
뉴질랜드에 유학 온 아이가 보고 싶어 한국에서 날아온 40대 중반의 엄마는 맑고 청정한 날씨에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고, 복잡한 한국에서 쌓여 누적된 스트레스가 깔끔히 사라진 자신을 느꼈다. 그리고 유학 초년생의 아이보다 엄마의 기본 영어가 더 잘 통하는 것 같아 외국인으로 펼쳐진 신세계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고, 더군다나 아이에게 멋진 엄마의 새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상승했다. 여기에다 찐한 검정색 선 글라스를 쓰고 보니 한국에서 보여왔던 그 엄마가 아니었다.
내친김에 한국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뉴질랜드 북섬 꼭대기에 위치한 베이 오브 아일랜드 관광을 신청하고 나니, 여행 떠날 기분에 아이와 함께 엄마는 나날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40여명의 관광객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실은 엄마는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버스에서 내려 귀족처럼 잘 생긴 유람선에 몸을 실었고 생전 처음 망망대해에서 유영하는 돌고래들을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해상에 우뚝 선 거대한 바위의 중간에 큰 구멍이 생긴 곳을 보아 신기했는데 더욱 기찬 것은 그 구멍으로 마술사 같은 선장이 큰 유람선을 통과시키는 묘기도 체험했다. 더 이상 좋을 수 밖에 없는 여행은 이튿날에도 90마일이나 되는 해변가를 달리면서 행복감이 고조되었다가 뉴질랜드 북단의 케이프 레잉가 등대에 발을 딛는 순간 ‘다 이루었다’라는 성취감으로 엄마와 아이는 행복한 모정을 느끼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버스는 다시 방향을 돌려 달리다가 2시경 한 휴게소에 멈춰 섰다. 버스기사는 ‘투 피프티’에 출발하니 화장실 갈 사람은 가고 휴식을 취하라고 말한다. 엄마는 돌아갈 길이 먼데 화장실 다녀 오라면서 50분의 시간을 주는 운전기사의 여유에 ‘서양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하고 아이와 함께 자연 경관을 구경하러 화장실 뒤 잔디 밭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시계를 보니 2시45분이 되었기에 아이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관광버스에 탑승하자, 엄마와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살인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모자는 집단 린치를 당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운전 기사가 말한 출발 시간 ‘투 피프티’는 2시 50분이 아니고 2시15분이었던 것이다.
금년 10월 중순인 2주전, 필자와 함께 베이오브 아일랜드 코스를 다시 찾아 동행했던 그 엄마는 15년 전의 일을 상기하며 이야기 하다가‘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는 오클랜드 돌아오는 4시간이 40시간처럼 길었고, 일행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도 못 드는 악몽이었다’고 했다. 심지어는 다른 휴게실에 버스가 서도 모자는 내리지 않고 버스 안에 머물렀다. 이에 필자는 외국 생활 30년이며 정부 일을 컨설팅하는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15와 50, 13과 30이 항상 혼동된다고 위로했으며, 이럴 경우 반드시 상대방에게 아라비아 숫자로 확인한다고 말했다. 영어 실력이 모자란 경우라고 보기에 아시안들이 듣기에 문제가 있는 숫자들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금도 후회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그 운전기사에게 물어 보지 않은 것이란다. 물어볼 걸….
그런데 요즘 조국 대한민국의 심각한 정치 사태를 보면 물어 보는 것도 사람 보아가며 물어 봐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을 최순실에게 물어 본 것이 국기 문란 오십보였다면 문재인 차기 유력 대권자가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 표결 결심 여부를 북한에 물어본 건 국기 문란 백보라고 한 류근일 언론인의 최근 의견에 동감한다. 대한민국의 국정을 물어본 상대가‘대한민국 최순실 언니’의 박근혜와‘적국의 김정일 어버이 장군님’의 문재인이라면, 아무리 자비로운 부처님 마음으로 봐도 사안의 중대성은 문재인의 행보가 더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 문재인 스캔들이 신문, 방송에서는 ‘최순실 효과’로 덮이고 있는 것을 오인하여, 이미‘똥에 묻힌’문재인은‘겨 묻은 박근혜’에게 대통령 하야 및 국정운영에서 손을 떼라고 괴성을 질러대고 있다. 이 같은 말은 문재인이 할 말이 아니다. 그 역시 대선 때는 반드시 수면으로 올라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류근일씨의 의견에 동감한 필자는 그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교민들께 펼쳐 드린다.
‘어처구니가 없다. '최순실 언니' 하나 때문에 나라 꼴이 진도(震度) 8 지진이다. 대통령의 영(令)이 서지 않고 청와대 비서실이 개점휴업이고 정부가 속수무책이고 여당이 빈 깡통이 되었다. 통치도 없고 정치도 없고 깃발도 없고 리더십도 없다. 국가 운영이 흐트러지는 데 단 며칠이 안 걸린 셈이다. 일각에선 "이 참에 갈아엎자"고 한다. 어찌할 것인가? 파국을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그럴 순 없다. 통치 시스템의 변동이 불가피하다 해도 그걸 순리적인 방식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파국적인 방식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분명치 못한 사안은 반드시 물어 확인해야겠지만, 이제는 물어 보는 것도 상대방 구분하여 물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