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ure! -할 일과 쉴 곳

손바닥소설


 

Pleasure! -할 일과 쉴 곳

오문회 0 1814
아침 됩니다 한밭 식당 /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낯 검은 사내들 / 모자를 벗으니 / 머리에서 김이 난다 

구두를 벗으니 / 발에서 김이 난다 / 아버지 한 사람이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 밥 좀 많이 퍼요

가정식 백반이 눈에 선하다. 시인(윤제림)의 마음 따라 식당 문지방을 넘는다. 한밭 식당. 대충 대패질해 투박한 나무 식탁과 길쭉한 평상 모양의 의자가 펼쳐져 있다. 평범한 이야기, ‘가정식 백반’ 시 한 편을 들여다보면, 할 일과 쉴 곳이 조화롭다. 할 일을 한 후에 몸에서 나는 열기가 김이 되어 훅 끼친다. 쉴 곳에서 밥을 먹는다. 잔잔한 즐거움이 더운 밥을 풀 때 나오는 김처럼 물씬 솟아오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곰삭은 질문을 얼핏 생각해본다. 할 일과 쉴 곳이 우리의 일상이고 보면, 뭐니뭐니해도 움직이고 쉬는 것으로 산다. 할 일과 쉴 곳이 없으면, 우리 삶은 물 없이 먹는 고구마처럼 팍팍할 것이다. 무력한가? 할 일이 없어서이다. 

무능력해지는가? 쉴 곳이 없어서이다. 하고자 하는 의욕은 많은데 할 일이 없으면 맥이 빠지는 법이다.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면 쓰러지고 만다. 할 일도 쉴 곳도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로스트 포크 온 라이스?”

“옙!”

택시를 운전하다가, 점심 무렵 아시아 푸드코트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카운터 아가씨가 주문도 안 했는데 대뜸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메뉴를 외친다. 이거 먹을 거지요? 즉각 화답송을 한다. 그래 맞다, 그거 먹고 싶어서 온 거거든. 가끔 한 번씩 먹는 음식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살짝 피어난다. 단골 되어가는 발길이 아예 굳혀지기로 들어선다. 고객 입맛을 알아내고 인사하는 아가씨가 미덥다.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 올리자, 아가씨가 Pleasure! 하며 하이파이브라도 할 자세다. 일할 때는 일속에 전념하고, 밥 먹을 때는 맛있게 먹는 일. Pleasure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 하는 모든 일, 지금 여기에 있다.

“자, 커피 한잔 들어요.”

“아! 고마워요.”

“Pleasure!”

웬 퍼포먼스인가? 이른 아침 출근 시간이다. 택시 손님이 노트북을 펴놓고 뭔가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다. 살짝 고개 돌려 바라다보니 뭔 그래픽이 다양하다. 아침에 프리젠테이션이라도 있나? 손님의 직장으로 가는 중에, 한 카페 앞에서 손님이 잠깐 내려 달란다. 그리고 잠시 후, 커피 두 잔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하나는 내가, 또 하나는 당신이! 하며 건네준다. 멋쟁이 신사다. 이럴 때 Cool 하다고 하는 건가? 

이런 일상이 자기에게는 즐거움이라니, Pleasure! 가 생활에서 벚 꽃처럼 피어 흩날린다. 할 일을 준비하며, 잠깐 쉼을 즐기는 여유와 배려가 근사하게 느껴진다. 분명 직장에서 좋은 역할을 할 터이고, 화합하는 소통 속에 일도 잘할 것 같다.

“정말 고마워요.”

“Pleasure!”

몸이 다친 ACC 환자 손님. 경사진 길 끝에 있는 집 앞까지 조심스레 부축해준다. 차 안에서 가방과 보따리를 꺼내 날라준다. 퇴근 중에 유치원에서 태운 꼬마애도 번쩍 들어 방문 앞에 데려다준다. 작은 도움에 손님은 밝은 표정으로 감사인사를 한다. 나도 저번 택시 손님한테 배운 Pleasure! 가 그대로 입으로 나오고 만다. 손님 이마에도 Pleasure! 가 쓰여있다. 손님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미풍 같은 즐거움을 샘솟게 한다. 몸은 비록 아프고 불편해도 마음은 구김살 없는 옥양목 같다. 기쁨과 평화는 자기 입에서 나온다. 다른 여건에 비교할 것도 없다. 지금 여기다. 살아있는 곳, 그 순간이다.

“나도 형님처럼 해봐야겠어요.”

“이렇게 밥 사는 일, 나도 배운 거야.”

좋은 것은 따라서 해볼 일이다. 상대에게 고마움과 편안함을 주면 응답이 온다. 밥을 사는 일이 내 취미 중 하나다. 할 일을 마친 이에게 소박한 음식을 대접하는 일. 이 역시 나에게는 Pleasure다. 공동체나 단체에서 맡은 임기를 마친 이와 식사를 하는 일은 참 흐뭇하다. 봉사하는 중에 겪은 애로사항을 듣고 격려도 해주며, 그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내가 전에 어려운 일을 마쳤을 때, 어느 분이 그런 대접을 해 주었다. 무척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그 후 좋아서 따라 하게 된 것이다. 마음이 통하는 이와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일.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할 일 + 쉴 곳 = Pleasure! 다.

“부족해도 한번 힘써 볼게요.”

“누구한테 말도 못 했는데….”

사람이 사람인 것은 서로에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뿐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여기에 진정한 즐거움이 있다. 내 사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도, 세상일이 어렵고 내 몸이 불편해도 작은 할 일과 쉴 곳이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 그럼, 가난하지 않고 부자다. 어느 누군들 어렵지 않고 힘들지 않겠는가? 지금에 살고, 과거에 감사하고, 미래에 희망을 두는 것이 바로 Pleasure다.오늘따라 고단한 일이 많은 날이다. 쉴 곳에서, 편안히 집 밥을 먹을 시간이다.

밥 좀 많이 퍼줬으면 좋겠다. 

저자 백동흠

2014년 한국수필, 2015년 에세이 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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