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뉴 수교 50주년 기념 친선 음악회’ -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

손바닥소설


 

한뉴 수교 50주년 기념 친선 음악회’ -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

일요시사 0 1989

뉴질랜드의 7월 겨울 밤, 오클랜드 타운홀이 고국의 토속적 음악 정취와 서구적 오케스트라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한껏 달아 올랐다.
‘한뉴 수교 50주년 기념 친선 음악회’ 이름 그대로 한국과 뉴질랜드의 국교수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부산 시립 관현악단의 심금을 울리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소프라노 박미혜씨의 다이나믹한 목소리. 뉴질랜드의 테너가수의 열정 무대. 한인 뉴질랜드 혼합 합창단의 홀을 압도하는 하모니 공연!

그 중에서도 가슴 울리는 한국의 혼(魂)을 노래한 장사익 소리꾼의 무대가 압권이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소리꾼! 장사익 ! 그동안 TV 와 언론에서만 보다가 눈앞(3M 거리)에서 직접 보니
그 폭발적인 에너지에 완전 매료되었다. 하얀 모시 옷에 흰 고무신 그리고 반백의 머리 소리꾼!
언뜻 보기엔 모시 삼베처럼 깔깔한 듯했다. 정갈하고 감칠 맛나게 가슴을 파고드는 소리였다.
우리 고유의 가락과 가요의 애잔한 정서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창법이 독특했다.

45세(1995-) 늦깎이 나이에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고 한다. 그리고서 17년째 선 무대 소리꾼이다. 
인생의 구비구비를 어렵고 힘들게 돌아서 살아온 삶이었다. 그런 경험으로 무정형의 자유스러움으로 진솔하게 노래를 부르게 됐다. 한이 서린듯한 목소리이면서도 폭발적인 클라이맥스가 듣는 이의 가슴을 뻥 뚫어 놓았다. 군더더기 없이 흐느끼는듯한 창법은 시골아저씨 같은 포근함을 주었다.
관객에게 익숙한 서양 음악과 우리 소리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한국의 감성을 잘 전달했다..

그  향기에  취하고, 그 가시에  찔린 밤.
그의 대표곡〈찔레꽃〉을 들으면서 가슴에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이 노래가 나오게 된 배경을 생각하며 직접 들으니 찔레꽃 향기에 취하고 그 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그는 이 '찔레꽃'을 부르면서 울기도 한다고 했다. 이 노래가 바로 오늘날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곡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 만들 때 그는 삶의 맨 밑바닥에 있었다. 내려 갈래도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 졌을 때다. 우연히 장미꽃 속에 피어있는 찔레꽃을 보게 됐다. 어디에선가 향기가 나오길래 당연히 장미꽃에서 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단다.
그건 장미 뒤에 숨어 있는 듯 마는 듯 피어있는 찔레꽃에서 나오는 은은한 향기였다. 그 모습이 바로 볼품없는 자신 같았다. 그 자리에서 한바탕 울고 와 시를 쓰고 가락을 붙여 만들어 낸 곡이 바로 찔레꽃이라고 한다. 자연스레 그 초심으로 몰입하게 되면 눈물이 나올 법하다.

우리네 이민 생활에서도 눈에 잘 뜨이고 남 보기에도 좋은 장미 꽃에만 마음이 쏠리지는 않았던가.
때론 그게 내 모습이고 내 몫이려니 여겼다. 어느 정도 좌충우돌한 뒤에야 마음을 비우게 됐다. 찔레꽃에서 오히려 나름대로의 편안한 마음과 여유를 느끼게 된 것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찔레꽃" 가사들이 기대치 높은 욕망의 벽을 뻥 뚫어 주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당신은 찔레꽃’

지난 옛 시절의 고단한 인생살이를 견뎌온 어르신들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 들었다. 

‘어머니’란 말이 히브리어로 ‘일꾼’이란 뜻
이어지는 ‘꽃구경’ 노래를 듣자니 또 마음을 붙들어 매게 했다.
그 옛날 자식이 어머님을 ‘고려장’하러 가면서 따뜻한 봄날
꽃구경 가자고 거짓말 한 채 먼 산에 버리러 먼길 걸어 간 걸 모르랴.
그래도 자식 돌아갈 때 길 잃을까 걱정돼 솔잎뿌리는 어머님의 지고한 사랑에
눈시울이 붉게 물든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 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 하시나요 솔잎을 뿌려서 뭐 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가슴 절절하게 사무치는 관조적인 절규가 있었다. 응얼진 한(恨) 속에 인생과 사랑이 녹아 내렸다.
건전한 비틀림속에 텁텁한 슬픔의 뚝배기 맛이 우러 나왔다.

어머니 산에 내려놓고 집에 내려온 것이 그 당시 풍습으로 ‘고려장’ 이라면,
어머니 고국에 두고 뉴질랜드에 온 것이 현재 시류로 ‘이민’일수도 있지 않은가.
장사익씨 의 " 어머니 꽃 구경가요 "라는 애절한 노래를 듣다 말고
‘고려장’과 ‘이민’이란 말이 왜 그리 서로 교차한지 모르겠다.
순간 고국 병상에 계신 어머니의 연로한 모습이 가엽게 겹쳐오니 참…
흘러 내리는 눈물을 훔쳐내는 분들이 눈에 띄였다. 특히 중년의 여성분들…
누가 말했나.’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어머니’란 말이 히브리어로 ‘일꾼’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땀 흘리고 수고하고 애쓰는 분이다.
자식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쏟아 온갖 고생을 하신다.
뉴질랜드로 떠나와 고국의 어머님께 전화 걸면 꼭 이렇게 다독거려 말씀하신다.
" 여긴 괜찮다. 너희들 잘 있으면 됐지 뭐. 부디 건강들 혀.”

나이가 들면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이 보인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한 가수  장사익 소리꾼! 나이 들수록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한다..
'20대 빅뱅이 부럽지 않다' 는 장사익씨.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가수가 진정한 마음을 담아 노래하면 인종과 나이에 관계없이 가사를 몰라도 그냥 좋아들 한다. 좋은 사람과 함께 밥 먹으면 반찬이 없어도 밥이 꿀맛이다. 밤새껏 이야기 해도 피곤치 않다.
마음을 서로 주고 받기 때문이다. 장사익씨의 표정이 정말 겸손하고 참 소탈해 보였다.
살아온 인생이 고단했을지라도 긍정적으로 살아온 모습같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그 터에 한국인의 '한(恨)'을 잘 표현해서 '소리꾼'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구성지지만 애절하고, 거짓없는 목소리가 여운을 남겨서 좋다. 반쯤의 흰 머리칼과 웃는 표정 그대로 주름잡힌 모습이 이야기 잘해주는 옆집 아저씨 같아 천상 '소리꾼'이다.

‘봄날은 간다’를 부르자 흥에 겨워 한인들과 뉴질랜드 키위들 모든 관객들이 박수를 치니 한마음 축제였다. 즐거운 에너지가 팍팍 전달되는 한뉴 수교 50주년 기념 친선 음악회다웠다.
6. 25 한국전에 참전한 관람석의 뉴질랜드 용사들을 향해 ‘Great  Soldiers ! Stand up Please ! ‘
외치자 노병들이 곳곳에서 의연한 기품으로 일어났다. 우뢰와 같은 격려와 감사의 박수소리!!! 
타운홀이 떠나가는 듯 했다. 우리 서로 함께 한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참 감사했다.

공연에 와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장사익씨의 말이 너무도 고향스럽다.
‘외국에서도 늘 정붙이고 즐겁게 사는 곳이 고향이지요. 이곳 뉴질랜드에 사시면서도
내내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 되세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즐거웠습니다.’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