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도시의 역사

손바닥소설


 

뉴질랜드 도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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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최초의 수도 러셀

러셀(Russell)은 북섬 북동해안의 16km에 걸쳐 펼쳐진 베이 오브 아일랜즈(Bay of Islands)의 짧은 반도 끝에 있다. 1800년대 초에 유럽과 미국 배들이 뉴질랜드를 찾아오기 시작하자 마오리족은 이방인들과의 무역을 위해 식량과 목재를 제공했고 이런 과정에서 이 지역은 발전을 거듭했다.

당시 상업의 중심지이자 고래·물개잡이에 필수적인 기지였다. 1840년 와이탕기 조약으로 뉴질랜드 식민지가 성립된 후 오키아토(Okiato)에 러셀이라는 도시가 조성되어 수도로 정해졌다.

수도가 오클랜드로 이전 할 때까지 러셀은 9개월 동안 뉴질랜드의 수도 역할을 했다.

 

 

오클랜드 경 이름을딴 오클랜드
초기 오클랜드는 크라이스트처치 웰링턴 더니든과 같이 계획된 도시는 아니었다. 500명의 스코트랜드 이민자들이 도착 하면서 계획이민이 시작 되었다.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금화 55 파운드와 담요, 의류, 항아리, 설탕과 밀가루 등을 주고 마오리로 부터 오클랜드 땅을 매입하게 된다. 

1840년 홉슨 총독에 의하여 도시가 설립되었고, 베이오브아일랜드의 러셀로부터 나라의 수도를 옮겼다. 1865년 웰링턴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오클랜드는 25년간 뉴질랜드의 수도로 존재 했다.

오클랜드는 당시 인도를 정복해서 국민영웅으로 추앙 받는 오클랜드 경(Sir Auckland)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1861년 남섬 오타고 지역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 되면서 오클랜드는 쇠퇴 하게 된다. 정부는 남섬을 배려할 겸 수도를 남 북섬의 중간 지점인 웰링턴으로 옮기게 된다.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

웰링턴 지역에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전에는 나이 타라(Ngai Tara)와 랑이타네(Rangitane)라는 마오리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웰링턴에 도착한 첫 배는 1839 9 20일에 도착한 토리(Tory)호였다. 1840 1월부터 연 이어 도착한 정착 배들의 이름[오로라(Aurora), 쿠바(Cuba), 오리엔탈(Oriental), 록스버러(Roxbuugh), 애들레이드(Adelaide), 글렌버비(Glenbervie), 볼튼(Bolton), 코로만델(Coromandel) ]을 따서 웰링턴 주요 거리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웰링턴의 지명은 웰링턴 공작 1세 아서 웰즐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1841년 윌리엄 홉슨(William Hobson)이 수도로 정한 오클랜드를 대신하여 1865년 웰링턴이 뉴질랜드의 수도가 되었다. 1863 11, 알프레드 도메트(Alfred Domett)가 의회에 "정부의 소재지를 쿡 해협 연안의 어느 적합 한 장소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안을 제출하였다. 남섬이 금 광맥의 존재를 배경으로 별도의 식민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고, 호주에서 파견된 판무관도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웰링턴이 수도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1865 7 26, 의회는 공식적으로 웰링턴에 설치되었다. 당시 웰링턴 인구는 4900명이었다. 웰링턴은 뉴질랜드 최고 법원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제일 부유하고 가장 세력이 큰 도시 더니든

더니든(Dunedin)은 스코틀랜드의 문화가 짙은 도시로, "남반구의 에딘버러"로 불려진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더니든은 대규모 금광 발견으로 인해 뉴질랜드에서 제일 부유하고 가장 세력이 큰 도시였다.

더니든은 1846년에 스코틀랜드 자유 교회의 정착자들을 위해 설계되었다. 1848년에 첫 344명의 정착자들이 도착했다. 그 당시에 지명은 "뉴에딘버러(New Edinburgh)"였고, 후에 그 켈트족의 말인 더니든으로 고쳐졌다. 그래서 더니든은 스코틀랜드의 문화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으며,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스의 동상이 세워지고, 위스키 증류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더니든 시민의 대부분은 장로교에 속하는 편이다.

1861년에 중부 오타고에서 금 채굴이 일어나자, 중국인들이 정착하였다. 1865년에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2,000명에서 10,000명으로 늘어났다. 더니든은 그 당시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상공업의 중심지였다. 1869년에 뉴질랜드의 첫 대학교이자, 의학 교육의 중심인 오타고 대학교가 세워졌다.

 

가장 오래된 도시 크라이스트처치

크라이스트처치는 식물원과 해글리 공원 등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 많아서 "정원 도시"라고 불리고 있고 전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정원도시 1위에 올랐다.

1839년에 뉴질랜드 회사가 런던에서 설립되어 유럽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유입의 역사가 시작된다. 크라이스처치는 1850년부터 영국에서 첫 이민자들이 정착 하면서 뉴질랜드의 최초 도시가 되었다. 그 해에는 캔터버리 협회가 결성되었다. 처음 크라이스처치를 설계할 때 뉴질랜드에 앵글리칸교회를 새로 창조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처음 목표는 사라지고, 캔터버리 협회도 1855년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고딕 건축물인 앵글리칸 성당(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1864년에 시작하여 1901년에 완공)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 건물은 크라이스트처치의 상징이 되어있다.

1856 7 31일 영국 국왕의 칙령으로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탄생한다. 초기 정착민들의 대부분이 영국 옥스포드 대학 크라이스트 칼리지 출신이었기 때문에 크라이스트처치로 명명된다. 영국인 건축가 벤자민 마운트호트가 설계한 네오고딕 양식의 건물이 시내 중심부에 건설된다. 영국인 이주 역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영국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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