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한국 TV 보기(1)

손바닥소설


 

뉴질랜드에서 한국 TV 보기(1)

일요시사 0 1835

바보상자의 반란

하루 TV 시청시간이 몇 시간이냐에 따라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을 염려하기도 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에는 더욱 TV에서 멀어질 것을 경고한다. 언제인가 부터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텔레비젼, 하지만 나는 TV를 좋아한다.

도저히 싫어 할 수 없는 바보상자의 매력은 아마도 견고하게 서있는 네 발의 다리에 문까지 달려 있는 텔레비젼이 우리 집에 들어온 40년도 더 된 그 날 부터 였던 것 같다. 흑백의 시절 온 국민을 울리고 웃겼던 드라마 ‘여로’와 ‘아씨’가 있고, 코미디의 전설이 되어버린 ‘웃으면 복이와요’ 그리고 동네 꼬마들까지 흥분시킨 프로 레슬링이 있었던 그 시절의 소박했던 TV속 세상은 지금까지도 내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온갖 프로그램을 섭렵하던 나의  TV시청 습관은  어린시절을 지나고 청소년을 지나 오면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 엄마는 내게 늘 이렇게 걱정을  늘어 놓으시기 일쑤였다. 

‘맨날 하루 왼종일 테레비만 끼고 살다가 뭐 먹고 살래?’ 그렇게 엄마의 호통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꿋꿋하게 TV를 보던 나는 결국 방송작가로 입문하면서 TV 때문에 먹고 살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배불리 먹을 정도로……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한국으로부터 건너오는 TV방송은 내게 힘이 된다. 가끔은 지치고 힘이 들때 그들이 전해주는 웃음과 감동이 고단한 이민 생활에 활력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TV 속에 비친 한국은 더이상 내가 떠나올 때 그 모습은 아니다. 학창시절 주 활동무대였던 대학로,  짜릿하게 매운 그 맛까지도 생생한 신당동 떡볶이집도 너무 달라져 있어서 생경하기만 했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한국의 거리와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그 시절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한국 TV 덕분은 아닐까 한다. 많은 교민들은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이유로 한국 TV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분들이 있다. 집에서도 한국말은 금지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민 온지 10년, 우리 집은 반대로 집에서 영어를 쓰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오히려 아이들이 우리말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그게 더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처럼 다양한 책을 읽기도 어렵고 따로 우리말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집에서 부모와 나누는 대화가 우리말 교육의 전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국 TV는 우리에게 좋은 교재가 되어 주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예능 ‘무한도전’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되새김질 까지 하면서 애청하는 프로그램이다. 평균 이하의 출연진들의 말장난이라 치부해 버리고 그저 웃고 넘기면 될 예능이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로 독도를 얘기하고, 신사참배가 무엇인지, 위안부 문제를  논하면서 아이들과 근현대사까지 토론하게 만드는  것도 한국 TV를 보면서 벌어지는 우리 집의 풍경이다. 그리고 해피투게더의 야간 매점에 등장하는 메뉴를 야식으로 해먹으며 새벽까지 프로야구를 시청하는 나는 뼈속까지 한국인이다. 그래서 나는 바쁜 일상속에서도 한국 TV를 놓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오자마자 이렇게 한국 TV와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디오를 빌려서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는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휴일이면 마음먹고 비디오를 빌리러 갔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하지만 요즘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인터넷 속도 덕분에 실시간 방송은 물론 메이저 리그의 류현진 경기도 볼 수 있으니 정말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 스타로 떠오른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아직까지도 부르고 다니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우리말 가사에 가슴이 찡해지는 경험을 한번씩 해보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온통 영어 뿐인 세상에서 간혹 들리는 우리 노래를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한국인임을 내세우고 싶은 것이 나혼자만의 생각은 아닐것이다. 게다가 K-POP열풍에 힘입어 한국 드라마 까지 날로 인기가 더해져서  태평양의 섬나라에 까지도 방송되어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아시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 까지도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날로 높아져 가는 한국TV방송의 위력이라 하겠다.

이렇게 잘 나가는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도 요즘의 가장 큰 이슈는 종횡무진 세계를 누비고 있는 H4 꽃할배와 두번 군대 간 진짜 사나이들의 찐한 전우애 그리고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드라마 ‘굿닥터’의 주원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의 포탈을 점령하고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이 들에 대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뉴질랜드에 살면서 현지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 생활만 그리워하며 한국 TV프로그램만 끌어 안고 살아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한국 TV가 지치고 힘든 당신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살면서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고, 더이상 바보상자가 아닌 텔레비젼을 스마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 편에서는 그 첫 번째로 영화 ‘레인맨’ 이후 다시 주목 받고 있는 서번트증후군과 더불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 ‘굿닥터’를 낱낱이 해부해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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