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상추 사랑 이야기

손바닥소설


 

꽂상추 사랑 이야기

이 정희 0 2183

새벽에 잠이 깨어 농장으로 가는 동안, 서쪽 바다의 물안개가 장관을 이룬다 고속도로 옆의 산들이 물안개 속의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어스름한 저녁은 먼동을 트일 준비를 하고 있다. 하나 둘씩 전등불이 켜지고 외곽의 정적은 평화스런 행복의 꿈나라 그대로다.
 
이 고요 속에 마음껏 걸어도 누구의 간섭도 없는 이곳. 소리질러 먼동의 달빛을 업고 가도 말리지 않는 외곽의 이 고요. 누가 네활개 활짝 펴고 다리 밑에 앉아 바위 위에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아도 말하는 이 없는 이곳! 자유스런 사색과 폭포 같은 연정도 구속 받지 않는 이곳, 일하면 벌고, 잘살고 못사는 것도 노력에 달린 이곳,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이곳. 이곳이 나의 타향살이요, 삶의 질이 높다는 내가 사는 뉴질랜드다.
 
고향이 따로 없으니 정들고 자식들 정착하여 성공하면 이곳도 고향 못지 않으리라 위안을 삼으며, 물안개가 솟아 오르는 다리 위를 지나다 보니, 찌들은 내 마음 내려서 쉬고 싶은 마음도 든다.
다리를 건너서 십여 분만 지나면 농가로 접어 드는 길이다. 새벽 풀밭 위에 뽀얗게 이슬 같은 서리 들이 앉아 있는, 이른 초봄의 새벽은 정말 상쾌하고 농부들의 가슴을 설레게도 한다,

얼마 전 뉴질랜드 칼 바람이 스치고 간 적적한 농장 가의 과목엔 군데 군데, 얼마 안 있어 꽃 피울 싹눈을 살찌게 하고 긴 동면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고, 매년 우리들의 애를 태우고 성가시게 굴었던 청벌레며 온갖 잡충들도 어디론가 숨어 지내다가 이 농장가로 또 올 것이다.  어제 심어 놓은 상추가 시들어 농사경험이 적은 나로 하여금 아연하게 했는데 남편은 태연하니 내 경험에 비해 더 많은 경륜이 있다고나 할까.

그 동안 뽑아 먹든 하우스 안의 상추가 거의 끝물이고 양도 적었다. 올해 유난히 상추 모종을 많이도 했었다. 새 상추를 심어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수확할 조급한 마음에 이번에는 비바람 치는 밭에 상추를 심었으나, 비닐을 너무 일찍 벗겨줘서 흰서리가 밭 이랑에 뽀얗게 내려 앉아 상춧잎은 삶아 놓은 것 같고, 군데 군데 자생한 호박잎은 그 기능을 마비하고 말았다.
 
식물의 성장을 중지 시키고 동면상태로 전환시키는 자연의 순리 앞에 나는 무릎을 꿇었고,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심은 상추이다. 상추는 밤이슬을 맞고서야 원상을 찾아 완전복구가 되어 있었고, 발육이 부진 한 것은 널부러져 있어 보는 우리를 안타깝게도 했다.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3명의 일 도와주시는 분들 과 우리 식구 6명의 대가족들, 푸짐한 한국상추를 먹기는 쉽지 않았다. 비싸고, 양도 작고, 특히 한겨울이 되면 파는 데가 거의 없고 또 값도 아주 비쌌다. 고기 먹을 때 마다 상추와 깻잎을 그리며 군침만 삼키며 그리든 옛 시절도 생각난다. 농사 첫해 늦가을, 애 어른 할 것 없이 이번 겨울에는 상추를 심어 겨울 내내 실컷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잠재하고 있을 당시, 한국종묘상에 겨울배추.무 씨앗을 주문 했었는데 얼마 후, MAF(뉴질랜드 검역소)에서 통관에 문제가 있다는 편지가 왔다.

 늘 통관되던 배추.무 씨앗이 이번에는 웬일일까? 그 이유는 한국 종묘상에서 서비스를 한답시고 꽃상추 씨앗 3봉을 같이 보냈는데 상추씨앗에 학명을 써서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여 곡절 끝에 손에 찾아 쥔 씨앗을 들고 집으로 오는 기쁨 이야말로, 씨앗을 들고 “아! 상추를 실컷 먹겠구나!” 먹거리의 군침을 흘려보는 우리들의 이 외국 땅의 고달픈 생활을 그 누가 알까?


Nursery(모종을 키워 주는 회사)에 배추씨앗 과 한 봉지의 상추 씨앗을 맡긴 후 6주 뒤에 모종 배달이 되었는데, 큰 대형차 에서 Kiwi아저씨가 8,000여 포기의 어마 어마 한 양의 상추 모종을 밭에 내려 놓고 가버렸다. 분명 한 봉지의 상추씨였는데 이렇게 많은 건가? 혹시 남의 것이 오질 않았는가? 키위 상추는 아닌가? 그것은 분명 우리 것 이였고 한국상추였다. 한 봉지 씨앗의 양도 가늠치 못했든 이런 무지 속에서도 우리 부부는 배추를 심고, 두 딸은 시험기간 인데도 마다 않고 몇 일간 100M 5고랑의 그 많은 상추를 난생처음 심어주고 난 뒤, 심한 열이 나며 끙끙 알았다.



지나고 보니 얼마나 미련 곰탱이 같은 짓이 었는지…. 얼마 후 두 딸들이 밭에 와서 외친다 “와! 상추가 꽃 같이 예쁘다” 그 5고랑의 상추는 잘 자라 줘서 정말로 꽃밭같이 예뻤었다. 상추 잎을 따지 않고 포기채 뽑아도 뽑아도 끝도 없는 채로.. 농사가 처음이라 야채가게에 팔 생각도 못하고 공짜로 이웃과, 농장 옆 Kiwi집들과 교회들과, 심지어는 김치 납품 거래처들과, 마주치는 사람들 마다, 그 많은 상추를 마구 마구 퍼다 줬다.


 비싼 상추를 받아 들고 행복해 하는 그 많은 이웃 얼굴들이 떠오르며, 빈손 들고 가야 될 인생길에 나누고 베푸는 마음만큼 흐뭇하고 행복한 것이 또 있을까?도 느껴본다. 상추씨 몇봉으로 얻은 은혜였고, 한국의 종묘상 사장님께 상추 잘 나누어 먹었다는 인사도 빠트리지 않았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Nursery에 모종 키워 주는 값도 절약 할 겸, 모종도 튼튼하게 키울 겸, 이제는 우리 가족들이 직접 모판에 각종 씨앗을 넣는다. 씨앗을 넣는 날이면 각자의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옹기 종기 둘러 앉아 밀렸던 얘기들을 나누며 그렇게 각종 씨앗을 넣다 보니 이제는 다들 숙련된 솜씨가 아닌가? 일을 마치고 나면 용돈 주는 셈 치고 삼겹살 파티를 해준다. 물론 상추와 깻잎을 곁들여서 먹는 맛 이란 꿀맛 이다.


이제 민가에도 봄이 왔다. 텃밭이 있는 사람은 텃밭에, 텃밭이 없는 사람들은 화분이라도 좋고 스티로폼 박스라도 좋겠다. 상추 몇 포기, 고추 몇 포기, 깻잎 몇 포기씩 이라도 심어 식물을 심는 재미와, 크는 재미와, 따먹는 달콤함을, 즐겨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김치공장을 방문하는 지인들과 고객분들께는 으레껏 상추 한 봉투씩은 무조건 선물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겪었던 옛적 그리운 상추 이야기 에, 그분들을 위한 정성인 “작은 상추 사랑”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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